<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197호 ‘건강한 건강 수다’>
글: 전수경 이모, 그림: 박요셉 삼촌
전태일이라는 이름, 들어봤니?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는 책과 영화로 나왔어. 교과서에도 다루고. 예전에 고그에 연재된 만화 <태일이> 본 동무들도 있겠네. 올해는 태일이 삼촌이 돌아가신지 50년이 되는 해야.
태일이 삼촌은 열일곱부터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했어. 지금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옷을 만들지만, 예전에는 동대문에 공장이 많았어. 가난한 청소년은 학교에 가는 대신, 그곳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지. 삼촌이 옷감을 펼쳐서 모양을 잘라주면, 미싱사가 그대로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었어. 재단사는 공장마다 한두 명밖에 없는 전문가였어. 월급도 미싱사보다 많고, 오래 일하면 공장을 차릴 수 있었어. 하지만 삼촌은 다른 선택을 했어.
공장에 들어간 삼촌의 눈에 먼저 들어온 건, 옷감 먼지 때문에 폐렴에 걸린 여성 노동자들이었어. 일을 거들어 주는 사람이라는 뜻의 일본말 시다바리를 줄여서 ‘시다’라고 불렸는데, 그들의 나이는 12세부터 21세로, 창문도 거의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온종일 미싱을 돌리고 실밥을 땄어. 일주일에 98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고작 이틀을 쉬었다고 해. 그러고도 1,700원에서 3,000원 정도의 적은 월급을 받았지. 햇빛을 보지 못해서 눈병에 걸리고, 결핵을 앓는 사람이 많았어. 사정이 이러다 보니, 나라에서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았어. 우리가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것도 다 삼촌이 직접 조사한 덕분이야.
삼촌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어. ‘하루 14시간의 작업 시간을 단축하고, 시다의 수당 70원~100원을 50% 올려 달라’ ‘건강검진을 정확하게 해 달라’는 요구를 담았지. 편지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 언론사를 찾아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리고, 노동자 모임을 만들었지. 공장 사장에게 가서 제대로 된 숙소를 설치하라고, 일하는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어. 하지만 노동부는 말로만 약속하고, 이 말을 무시했어. 평화시장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모임을 만드는 등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현실은 그대로였어. 삼촌은 지쳤던 거 같아. 꿈적도 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지.
1970년 11월 13일,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근로기준법을 들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어. 그렇게 스물둘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
삼촌은 화를 내거나 분노에 차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어.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지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방법을 찾았지. 법을 공부하고, 상황을 조사해 통계를 만들고, 글을 썼어. 초등학교 졸업은 못했지만, 밥을 굶으면서 책을 샀대. 삼촌이 쓴 글을 읽으면 “글 좀 쓰는데!”하며 감탄할걸. 옷을 만들면 고객에게 바로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업장에는 탁구대와 농구대를 설치하고, 노동자에게 교양을 가르치는 회사를 꿈꿨지. 자기만을 위해 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아마 다른 삶을 선택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삼촌은 평화시장의 노동자와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랐어. 청계천에 가면 태일이 삼촌의 동상이 있어.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