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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의료서비스가 미등록 이주민을 배제할 때 – 스페인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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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바이러스는 평등한데, 바이러스 대응은?

 

중앙 정부와 서울특별시, 경기도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안산시를 빼고는 지원 대상에서 미등록이주민은 물론 등록이주민도 제외되었다. 인권단체와 이주민들은 지난 3월 26일, 이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관련기사: “이주민 제외한 재난기본소득은 인종차별”). 재난은 인종과 국적을 가리지 않지만, 재난 지원은 가려서 하겠다는 지방정부들의 방침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이보다 앞선 20일에는 ‘코로나가 드러내는 인종차별의 민낯 증언대회’가 열렸다. 한국인 노동자에게는 마스크를 지급하면서 이주노동자에게는 마스크를 주지 않는 회사, 이주노동자를 바이러스 취급하며 2개월째 공장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고용주, 코로나 감염예방 때문이라며 출입을 거부당한 이주여성, 지역사회에서 고위험군으로 취급받는 중국 출신 이주민…. 이날 증언에는 한국사회 구성원으로 기여하며 살아왔음에도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과 분노가 담겨 있었다 (관련기사: “중국인 혐오와 차별, 내 아이에 옮아갈까 겁난다”). 공적마스크를 구입할 때도 외국인은 건강보험 가입을 증명하고 외국인등록증을 직접 제시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니, 이주민에게 의료이용은 멀게만 느껴진다. 등록이주민의 상황이 이럴진대, 미등록이주민들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보편적 의료서비스와 이주민 : 스페인 사례

 

미등록이주민에게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난달 국제학술지 <유럽공중보건학회지>에 발표된 스페인 바르셀로나 연구팀의 짤막한 논문(바로 가기: 보편적 의료서비스에 이주민을 포함하는 근거)은 그 차이를 알아보고자 했다.

연구가 이루어진 스페인에서는 1986년 일반의료법(General Health Law). 2011년 공공보건법(Public Health Law)에 따라 모든 스페인 거주민이 무상의료를 받을 권리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2012년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스페인 정부는 ‘의료제한시행령’을 이용해 이 권리를 크게 축소시켰다. 이주민과 의료관광객 때문에 발생하는 재정낭비를 없앤다는 구실이었다. 의회를 거치지도 채 시행령으로 이주민의 의료접근을 제한하자, 미등록이주민은 응급의료서비스만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아동과 임산부는 예외). 뿐만 아니라 강제추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주민들은 허용된 응급의료서비스조차 꺼리게 되었다. 그러다 2018년 7월에 상황이 바뀌었다. 국민당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 총리가 부패스캔들로 물러난 다음, 새로 선출된 사회노동당 정부는 모든 미등록이주민에게 스페인 국민과 동일한 조건으로 의료서비스접근을 보장하는 새로운 시행령에 서명했다.

 

이주민 배제는 공동체에도 도움 안 돼

 

연구팀은 2012년 도입된 의료제한시행령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카탈로니아 지역의 1차의료기관 이용자료를 활용하였다. 스페인 지방자치정부는 관할 지역에 상당한 수준의 자율권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 카탈로니아 지방정부는 특별조례를 마련해 의료제한 시행령 도입으로 배제될 미등록이주민 일부를 구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제한 시행령 자체를 무력화시키지는 못했다. 연구팀은 2010년 12월 말 기준으로, 1차의료기관에 배정된 모든 미등록이주민 집단(58,345명)의 자료를 추출했다. 이들은 카탈로니아 조례에 의해 구제된 일부 예외가 있겠지만 스페인 중앙정부의 의료제한 시행령으로 보편적 의료서비스에서 배제되었을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성별, 연령, 사회경제적 지위 등이 비슷하도록 짝짓기를 하여 스페인 내국인과 등록이주민으로 구성된 비교집단(58,345명)을 추출했다.

연구팀은 우선 2010년 12월 말 시점에 두 집단의 만성질환(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심부전, 우울증, 만성폐쇄성폐질환, 흡연 및 음주 수준) 유병률을 비교했다. 미등록이주민 집단에서는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뇨 등의 유병률이 가장 높았다. 반면 비교집단에서는 우울증, 만성폐쇄성폐질환, 이상지질혈증, 심부전, 고혈압 등이 높은 유병률을 보였으며, 미등록이주민집단보다 더 높은 유병률을 보이는 질병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감염병 발생률은 달랐다. 2011년 1월~ 2013년 12월까지 HIV, 결핵, 매독 등 감염병 발생을 살펴본 결과, 미등록이주민 집단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발병 위험이 높았다. 비교집단에 비해 결핵은 4.09배, HIV는 2.33배, 매독의 경우 3.36배 높았던 것이다. 연구진은 이주민들이 만성질환보다 감염병에 더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열악한 생활환경 탓이 크다. 문제는 감염병을 적절하게 진단하고 치료받지 않으면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 보장은 이주민 환자 당사자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연구팀은 특정한 환자집단을 배제하는 것이 공동체 수준의 감염병 관리를 방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등록이주민의 보편적 의료서비스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환자에게도 지역사회에도 이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편적 의료서비스라면 미등록이주민까지 포괄해야

 

지난해 이맘 때 영국, 스페인, 타일랜드, 말레이시아, 캐나다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영국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바로가기: 미등록이주민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보편적의료보장이 아니다)은 미등록이주민의 의료이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이주민과 관련한 국가정책(노동, 안전, 거주, 교육 등), 의료 비용(국가마다 다른), 문화 차이, 언어문제,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 부족, 강제출국에 대한 두려움, 차별과 편견 등을 지적한다. 보편적 의료서비스 정책은 이러한 장벽을 없애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논문의 저자들이 원칙으로 제시한 내용을 보자. 우선 건강권이다. 국제법 뿐 아니라 다수 국가에서 중시하는 권리로, 저자들은 이주민 같은 취약계층을 포괄하지 못한다면 ‘보편적’ 의료보장이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둘째는 경제다. 이주민이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주민에 대한 적절한 의료서비스가 장기적으로 비용 절감에 기여한다는 근거들이 이미 존재한다. 셋째, 사회적 연대. 이주민과 더 많이 접할수록 적대감은 사라지고 이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이익이 된다. 이주민을 통합하는 의료시스템은 중요한 토대로 기능할 수 있다. 넷째, 의료환경에 주는 함의다. 의료기관은 환자가 강제출국이나 송환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 안전한 장소여야 하며, 이주민의 안전을 책임지려 하는 의료인은 보호받아야 한다.

 

앞서 스페인 연구팀의 논문은 세계보건기구의 결핵종식 전략(“End TB Strategy”)이 주요 축으로 보편적 의료보장 시행을 강력히 권고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핵균이든 코로나 바이러스든 사람들의 여권 색깔과 비자 상태를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감염성 병원체에 맞서는 사회도 그렇게 해야 한다. 개인은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라는 말은 결코 문학적 비유가 아니다.

 

* 서지정보

  1. Prats-Uribe, A., Brugueras, S., Comet, D., Álamo-Junquera, D., Ortega Gutiérrez, L., Orcau, À., … & Millet, J. P. (2020). Evidences supporting the inclusion of immigrants in the universal healthcare coverage. European Journal of Public Health. 2020 Feb 11. pii: ckaa020. doi: 10.1093/eurpub/ckaa020. [Epub ahead of print]
  2. Legido-Quigley, H., Pocock, N., Tan, S. T., Pajin, L., Suphanchaimat, R., Wickramage, K., … & Pottie, K. (2019). Healthcare is not universal if undocumented migrants are excluded. Britisch Medical Journal, 366, l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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