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다시 전면에 드러났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태원 클럽이 성 소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는 것을 언론에서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방역과 관련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비난과 혐오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검사를 기피하게 만들어 오히려 방역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하고 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혐오가 의료 이용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혐오가 의료 이용을 가로막는 현상은 지금 같은 감염병 유행 국면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모습일까? 코로나19 유행이 가라앉으면 성소수자들은 마음 놓고 병원을 찾을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이들이 의료기관 문턱을 넘기 어려운 것은 감염병 유행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 소수자를 불리한 조건에 처하게 만들고 억압하는 제도적, 사회적 수준의 조건들, 즉 구조적 낙인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다보니 방역당국이 성소수자 인권 단체와 협력하여 차별과 낙인 없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낙인, 아웃팅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없던 문제를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문제를 들춰내며 증폭시키고 있는데 성 소수자 의료이용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최근 발표된 호주와 독일 연구팀의 논문은 기존의 실증 연구 결과들과 소수자 스트레스 이론을 바탕으로 성 소수자의 의료 이용에 영향을 미치는 기전을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구조적 낙인이 심리적 요인을 매개로 성 소수자의 정신적, 신체적 불건강을 야기한다. 이는 당장 의료 이용을 더 늘리기도 하지만, 사회와 의료 환경 안에서 차별이 두려워 예방적 의료서비스, 특히 성적 지향과 관련된 검진 등을 받지 않거나 늦추게 만든다. 결국 건강이 악화되어, 더 심각한 상태로 병원을 찾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구진은 호주의 센서스 연계 행정 자료와 동성결혼법 찬반에 대한 2017년 우편설문조사 자료를 이용했다. 여기서 성 소수자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 동성애자 개인으로 정의했고, 거주 지역의 동성결혼 반대 투표율을 구조적 낙인의 지표로 삼았다. 그리고 일차진료의사(GP) 방문횟수, 병리학적 검사 횟수,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포함한 신경계 약물 처방 등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사이에 어떻게 다른지, 구조적 낙인의 강도가 동성애자의 의료 이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다.
연구진은 우선 동성결혼 반대 투표율이 호주 전체 평균인 38.4%를 기록할 때,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사이의 의료 이용 차이를 살펴보았다. 동성애자 여성은 이성애자 여성에 비해 연간 GP 방문횟수가 적고, 병리학적 검사를 덜 받았다. 동성애자 남성은 이성애자 남성보다 연간 GP 방문횟수가 많고, 병리학적 검사도 더 많이 받았다. 그리고 동성애자 남녀 모두 이성애자보다 신경계 약물 처방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동성애자 여성은 의료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껴 의료 이용이 줄고, 동성애자 남성은 HIV 감염 위험 때문에 의료 이용이 증가한다고 해석했다.
구조적 낙인이 심한 지역에서 동성애자의 의료 이용은 예상대로 더욱 감소했다. 동성결혼 반대 투표율이 10% 늘어남에 따라, 동성애자 남녀의 연간 GP 방문횟수가 각각 0.19회, 0.09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신경계 약물 처방은 남녀 각각 0.07회, 0.16회씩 증가했다. 이는 낙인이 심한 지역에서 동성애자의 정신건강이 더 안 좋지만, 의료 이용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같은 결과를 두고 구조적 낙인이 동성애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형편이 좋은 동성애들이 낙인이 덜한 곳으로 이사를 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보다 낙인이 덜한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이사를 간 사람들은 이사 후 낙인이 심한 지역에 계속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GP 방문이 적고, 신경계 약물 처방을 더 많이 받았다. 지난 5년간 이사를 한 적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분석을 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편 모든 동성애자가 구조적 낙인에 대한 비슷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의료접근성이 떨어지고, 대학 교육을 받지 않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거주하는 동성애자의 경우 구조적 낙인과 관련한 GP 방문 감소 폭이 더 컸다. 신경계 약물 처방 역시 수입이 낮고, 대학 교육을 받지 않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거주하는 동성애자에게서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구조적 낙인이 성소수자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고 의료 이용을 가로막는다는 연구결과를 고려하면, 이번 코로나19 유행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소수자들을 포괄하는 보건의료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코로나19와 함께 ‘뉴노멀’이라는 용어도 유행하고 있다.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뉴노멀은 구태의연한 원격의료(비대면의료)가 아니라,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혐오와 낙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중심 가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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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Saxby, K., de New, S. C., & Petrie, D. (2020). Structural stigma and sexual orientation disparities in healthcare use: Evidence from Australian Census-linked-administrative data. Social Science and Medicine, 255. https://doi.org/10.1016/j.socscimed.2020.113027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