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수는 아직 ‘폭발’이 아니나, 비관적 전망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수도권 상황이 이대로 가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 경고의 요지다. 가능성과 무관하게 그런 일이 없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낙관이든 비관이든 예상이 얼마나 정확할지 따지는 것은 한가하다. 무릇 모든 가치 있는 전망은 현재에 개입하려는 것, 예상이 그대로 맞았다는 것은 미래로 가는 과정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역설적이지만, 정확한 예상은 반드시 틀려야 한다.
방역 당국도 사태가 나빠질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온 국민에게 경고, 권고, 당부, 촉구하는 일 빼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점에 있다. 더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지만, 사실 ‘사회적’이 아니라 ‘개인적’ 방법에 의존하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 거리 두기를 실천해야 할 주체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타보라, 백 퍼센트에 가깝게 모두 개인 수칙을 지킨다. 그래도 곳곳이 허점이니 누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개인화’ ‘규범화’ ‘윤리화’는 한계가 있다. 각자 걱정하면서도 모이고 접촉하며 사회활동을 했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주의와 일탈이라며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그것만으로는 거리 두기를 지속할 수 없다.
만에 하나, 상황이 더 나빠져 사회적 거리 두기를 훨씬 더 강하게 해야 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했던 것과 같은 자발적 거리 두기로는 ‘강화’가 가능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유럽과 미주 여러 나라에서 보았듯이, 공권력의 강제 조치 이른바 ‘록다운’을 피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자발성만으로는 더 할 수 없는 이유. 흔히 개인 심리와 행동을 말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 주체들의 ‘생존’ 문제다. 유행이 확산할 것 같으니, 각자 알아서 대부분 가게를 닫고 그 위험한(!) 직장을 멈추어 달라? 상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비난 정도가 아니라 공권력이 강제로 개입해야 가능하다.
더 큰 문제이자 과제는 그다음이다. 생계와 생활이 달렸으면 금지와 봉쇄로 끝이 아니다. 그 어떤 이도 예외 없이, 그럴 수 있을 때만 ‘순응’할 수 있다. 공권력이 개입해도 개인이 실천할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어떤 조치라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조건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가장 나쁜 유행의 시나리오에 기초하여, 결국 일시 록다운을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실행하고 실천할 수 있는 록다운 방안을 미리 준비하자는 이유다.
- 지역별로 달라야 한다
수도권 집중도가 극심한 상황이라 ‘중앙집권적’ 방역과 정부 대응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금도 지역마다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수도권과 경남, 전남, 제주가 같을 수 없다. 그 어떤 다음 조치를 하더라도, ‘지방분권적’ 접근을 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 ‘결단’이 아니라 ‘준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교를 다시 닫으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교육 당국이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 두었을 것으로 믿는다. 수능, 학기 운영, 성적 처리, 온라인 교육, 불평등 문제 등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수많은 사람의 생활과 생계 대책이 중요하다. 실직자와 비정규 노동자, 영세 자영자, 한계 상황의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꼼꼼하지만 담대한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감염병 유행의 사후 대책이 아니라 방역 대책 그 자체다.
그 누구도 ‘부채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임대료, 이자, 공과금, 건강보험 보험료 등을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정부의 가장 큰 관심사일 테니 더 말하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 연쇄 반응이 일어날 터, 정부의 진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사이 “기존 대책으로 부족하다” 또는 “특단의 대응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설마(!) 아무런 준비도 없지는 않으리라. 다른 나라가 시도한 선례도 많으니, 교훈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준비가 없으면 그 어떤 결단도 가능하지 않다.
- 과정도 중요하다
한가한 소리라도 치부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그 어떤 결단과 조치도 국민과 시민이 이해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그리고 각자의 대응이 준비되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앞서 말한 ‘준비’부터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때 민주주의는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한 수단이다. 이래야 하는 이유를 모르고, 영업을 중지하면 나와 내 가족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데. 그 어떤 강한 조치와 처벌도 각자도생을 막을 수 없다. 국가와 정부를 믿을 뿐 아니라 정책의 불가피성을 이해하고 동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내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야 같이 움직일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나? 시민 민주주의까지는 어렵다고 치자. 모든 영역과 경로, 방법으로 감염과 방역, 그리고 다음 단계 조치를 이해하고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백가쟁명’에 일사불란한 결론이 없으면 어떤가, 그 과정 자체가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다. 어떤 정책 당국자가 결단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결단하는 것이어야 한다.
공론화에는 정치 지도자와 정부 역할이 중요하지만, 특별히 언론이 구실을 해주기를 당부한다. 중계방송이나 트집 잡기가 아니라 의제를 내고 공론을 만들어가는 언론 본연의 기능에 집중할 때다. 다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결국 이 모든 준비가 불필요했다는 결론에 이르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가장 나쁜 상황을 염두에 둔 준비가 지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