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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건강불평등, 사회정책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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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 판데믹 자체도 큰 문제이지만, 포스트 코로나 세계에 발생할 문제들, 특히 경제 충격의 여파가 매우 우려스럽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 이후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를 보냈다. (관련기사: ‘포스트 코로나’ 세계, 네 개의 키워드를 주목하라)

 

우리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기억하고 있다. 이 때의 교훈을 짚어보는 것은 다가올 경제 위기의 영향을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 소개할 노르웨이와 캐나다 연구팀의 논문은 당시의 경제불황이 건강 불평등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논문 바로가기: “경제 불황 시기 유럽의 건강불평등: 사회정책이 중요하다”). 연구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요한 것은 경제 위기 그 자체보다, 경제 위기에 대한 사회 정책이다.”

 

연구팀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유럽 25개국에서 진행된 유럽 사회 조사(European Social Survey) 데이터를 분석하여, 국가의 경제 불황이 건강 불평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했다. 국가의 경제 불황은 네 가지 지표, ① 실업률 증가 ② GDP 하락 ③ 복지예산 긴축정책 ④ GDP 하락에 뒤이은 복지예산 긴축정책으로 측정했다. 그리고 이들 지표 중 어떤 것이 건강불평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했다.

 

분석 결과, 일반적 예상과 달리 GDP 하락과 실업률 증가는 오히려 건강불평등 감소와 관련이 있었다. GDP가 떨어진 연도와 실업률이 증가한 연도에 건강불평등은 줄어들었고, 이는 통계적으로도 의미 있는 수치였다. 경제위기의 효과가 시간차를 두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연구팀은 2년 후의 관련성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GDP 하락과 실업률의 증가는 건강불평등과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흥미로운 지표는 긴축정책이었다. 긴축정책을 시행한 해당 연도에 건강불평등은 증가했으며, 2년 후에는 증가 폭이 더욱 커졌다. 긴축정책은 GDP 하락에 뒤이어 시행된 것이든, 그와 관계없이 시행이 된 것이든, 모두 건강불평등 증가와 연관이 있었다. 특히 GDP하락 이후 시행된 긴축정책의 악영향이 더욱 컸다. 긴축정책 2년 후 건강불평등은 무려 1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긴축정책은 어떻게 건강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것일까? 연구팀은 통계 분석을 통해 긴축정책이 건강불평등을 증가시키는 경로를 탐색해 보았다. 그 결과 긴축정책 후 겪는 실업, 경제적 어려움이 경로의 주요 요인이었다. 또 다른 요인은 ‘사회적 자본’이었다. 사회적 자본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회에 느끼는 신뢰와 비공식적인 시민사회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정도 등으로 측정할 수 있다.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실업,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자본의 효과를 모두 합하면 전체 건강불평등 증가치의 약 40%를 설명할 수 있었다.

 

경제 불황 같은 위기에서 실업과 경제적 어려움은 어쩌면 피하기 어려운 결과이겠지만, 사회적 자본마저 모두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위협이 있을 때, 사람들은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고자 하기 때문에 내부 응집력이 증가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쟁이 닥치면 사회적 응집력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우리가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할 외부 위협으로 인식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 시기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취약한 인구 집단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긴축 정책을 시행했다. 많은 시민들, 특히 긴축정책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취약 집단은 정부가 이 위기를 가혹하게 다룬다고 생각했고, 이로 인해 사회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 위기의 비용을 구성원들이 균등하게 짊어진다고 느낄 때 사회적 응집력이 강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결과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리하면, 경기 불황에 긴축정책이 더해지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인구 집단은 실업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특히, 장기 실업), 이로 인해 빚을 지거나 집을 잃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 행여 실직하지 않더라도, 급여가 깎이거나 비정규직 파트타임 등 나쁜 일자리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더해 긴축 정책은 취약 계층이 그동안 받아왔던 각종 서비스, 복리 후생 등 시장실패를 완화시켜주던 많은 제도들을 없애 버린다. 취약 계층은 건강 위험요소에 더 많이 노출되는 반면, 나쁜 상황을 완화시켜주던 자원을 잃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처럼 나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신뢰가 줄어든다. 이로 인해 불평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질 수 있다.

 

한동안 진정세를 보이던 코로나는 생계 때문에 나쁜 환경의 일거리라도 받아들여야 했던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다시 전파되고 있다. (관련기사: 쿠팡물류센터에서 콜센터로 코로나19 확산…취약 노동자 직격탄). 취약한 계층의 건강은 감염병 확산, 즉 사회 전체의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건강불평등은 사회 정의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공중보건 문제이다. 앞으로의 경기 하강 국면에서 정부가 어떤 사회정책을 선택할지, 우리 모두가 주시해야 할 이유이다.

 

* 참고로, 경제 위기의 긴축정책이 건강에 미치는 여러 영향에 대해 2013년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 (데이비드 스터클러, 산제이 바수 저, 까치 펴냄) 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출간 이듬해에 [프레시안 books]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관련기사:  긴축이 불황의 특효? 건강해야 경제도 낫는다!)

 

*서지 정보

van der Wel KA et al. European health inequality through the ‘Great Recession’: social policy matters. Sociol Health Illn. 2018 May;40(4):750-768. doi: 10.1111/1467-9566.12723.)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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