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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가스 중독의 사회사: 부주의로 인한 사고에서 사회적 질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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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通>”

 

주류 언론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기술이나 치료법을 소개하지만,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나 건강불평등, 저항적 건강담론에 대한 연구결과들은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수요일,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논문, 혹은 논쟁적 주제를 다룬 논문을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흔히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제안 부탁 드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연구논문 추천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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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국의 연탄가스중독의 사회사: 부주의로 인한 사고에서 사회적 질병으로.

김옥주, 박세홍 (2012). 의사학 제21편 제2호

건강한 사회는 어떤 곳일까?

오늘 소개하는 논문은 “질병은 사회적으로 구성(construction)”되며, 같은 건강문제라도 이를 인식하는 구성원들의 문화, 가치, 지식 등에 따라 사회의 대응이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19세기 영국 맨체스터 지역은 오랜 기간 심한 매연으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처음부터 사회적 대책을 마련했던 것은 아니었다. 매연이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생겨나고, 이것이 그 동안 대기오염을 참아오던 사람들을 변화시킴으로써 사회적 대응을 가져오게 되었다.

1960년대 한국의 연탄가스 문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국전쟁 이후 정부는 산림보호를 목표로 연탄을 보급하고 사용을 장려했다. 연탄은 가격이 저렴하고 관리가 편했기 때문에 빠르게 생필품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연탄가스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은 큰 문제였다. 일가족이 몰살하는 연탄가스 중독 사고는 많은 이들을 슬픔과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일산화탄소 중독의 발생률과 사망률은 제1, 2종 법정전염병을 합친 것보다 컸을 만큼 심각했다. 빠른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급속히 늘어난 열악한 주거환경은 연탄가스 중독을 만연하게 만드는 토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전반까지 연탄가스 중독은 “개인의 부주의”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당시 언론은 연탄가스 중독을 복어알 중독, 불발탄 폭발사와 더불어 ‘무지, 무식의 소치에 의한 3대 사고’로 부르기도 했다. 아궁이 단속을 잘 못해서 혹은 민심이 해이해서 등 각종 개인의 부주의를 탓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대책도 국민에 대한 교육, 계몽 등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무렵부터 연탄가스 중독의 분포와 원인을 규명하려는 역학적 연구들이 이어졌다. 연구 결과들이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연탄가스 중독이 빈곤층에만 국한된 “무지, 무식의 소산”은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1960년대 후반 언론의 논조는 “개인의 부주의”보다 “국가의 적극적 노력”을 요구하고 강조하는 것으로 점차 바뀌었다. 정부는 연탄을 대체할 연료를 강구하기 시작했고, 대중음식점과 접객업소에 연탄가스 경보기를 설치하고 안전 검사를 강화했다. 숙박업소에서 투숙객이 사망하면 업주를, 세입자가 사망하면 집주인을 형사 입건하는 등 처벌도 강화했다. 그러면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문제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연탄가스 중독의 사회사(social history)는 17세기 로마의 역병, 1832년 뉴욕의 콜레라 유행, 1916년 소아마비 유행의 사회사와 비슷하다. 새로운 질병의 유행의 초기 단계에서 사회는 전형적으로 소수자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인다. 20세기 중반 에이즈 유행은 “성적 문란함에 대한 벌”로 여겨지기도 했다. 오늘날 흡연,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에서도 비슷한 양상들이 관찰된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는 뒤에 숨어 개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 연탄가스 중독의 인식변화와 그에 따른 대응의 변화를 돌아보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건강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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