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사회적 처방’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2,328회 조회됨

 

조상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사회적 처방’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영국 국립보건의료서비스(NHS)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처방이란 의사, 간호사, ‘자원연계 실무자’ 등 일차의료 종사자들이 환자와 지역사회가 보유한 비의료서비스 ‘자산(asset)’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질병에 대한 치료를 넘어 개인 건강 문제의 사회적 원인을 해결하여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때 제공되는 지역사회의 자산은 예술활동, 신체활동, 학습, 자원봉사, 친교 모임, 자조 모임, 사회보장 혜택, 교육 기회, 부채 해결책 탐색 지원 등 다양하다. 영국은 보편적 맞춤형 돌봄 정책의 일환으로 2024년까지 ‘자원연계 실무자’를 1천 명 이상 양성하고 90만 명이 사회적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들을 의료기관 외에도 경찰, 소방서, 구직 센터, 사회 돌봄 서비스, 주택협회에 배치하여 광범위한 의뢰 체계를 수립할 예정이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Social Science & Medicine>에는 이 정책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 연구팀은 영국 북부 살포드(Salford) 지역에서 만성 질환을 가진 65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삶의 질, 신체, 정신, 사회관계, 환경 영역에 대해 여러 차례 설문조사를 시행하고, 지역사회 자산 이용에 따라 그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하였다.

연구팀은 점수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설문 응답자를 지역사회 자산 이용 여부와 시점을 기준으로 네 집단으로 분류하였다. 우선 (1) 첫 설문에서 지역사회 자산을 이용하지 않았으나 1년 뒤 지역사회 자산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한 집단과 (2) 지속적으로 지역사회 자산을 이용하지 않은 집단을 비교하여 지역사회 자산 이용의 효과를 측정했다. 또한 (3) 첫 설문에서 지역사회 자산을 이용했으나 1년 뒤 지역사회 자산 이용을 중단했다고 답한 집단과 (4) 지속적으로 지역사회 자산을 이용한 집단을 비교하여 지역사회 자산 이용을 중단했을 때 발생한 효과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 지역사회 자산을 이용했을 때 여가와 오락 활동의 접근성 개선 효과가 가장 컸다. 이용자들은 몸에 대한 자기 인식, 기력과 피로감, 긍정적인 기분, 이동 능력, 수면과 휴식, 노동 능력이 향상되었다. 지역사회 자산 이용을 중단했을 때는 여가와 오락 활동의 접근성이 크게 떨어졌고, 전반적인 삶의 질, 이동 능력, 기력, 자기 건강 평가가 하락하였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지역사회 자산 이용이 건강과 삶의 질에 연관되어 있으며 사회적 처방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는 사회적 처방이 개인이 직면한 사회적 어려움들을 해결하여 건강 수준을 높이고 의료이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사회적 처방이 실제로 작동하는 기전과 효과를 분석한 연구가 아직 많지 않아 어떤 요소가 이 프로그램의 성공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다. 정책을 시행하려는 영국 NHS도 이를 알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사회적 처방 정책이 과연 의도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건강을 해치는 근본적 요인의 상당수는 개인 수준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임에도, 개인에게 제공되는 사회적 처방을 위안 삼아 사회구조 문제를 외면하는 경향, 또는 사회적 처방을 맡은 전문인력이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참여자 개인을 문제 삼고 타자화 하는 경향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자료 바로가기: 코로나19와 건강불평등의 ‘판타지 패러다임’ ). 사회적 처방이 불건강의 근본적 원인을 낳는 구조를 무시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정책이 가진 분명한 한계이다. 또한 기존 보건의료 체계와는 전혀 다른 전문적 역량이 필요하기에 서비스 제공 인력에게 이를 교육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영국의 사회적 처방은 사회적 결정요인이 사람의 건강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명한 인식에 기초한다. 그래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역사회 자산과 개인을 긴밀하게 연결하려 하는 것이다. 국내의  ‘통합사례관리사업’도 복지, 보건, 고용, 주거, 교육, 신용, 법률 등 필요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이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욕구 조사, 위기도 조사에 따라 신청자의 등급을 매겨 선정하기 때문에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적고, 개인이 아닌 가구 단위로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점이 다르다. 사회적 처방의 효능과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되, 지역 주민 모두가 보편적으로 ‘사회적 처방’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해 보인다.

 

* 참고문헌

Munford, L. A., Panagioti, M., Bower, P., & Skevington, S. M. (2020). Community asset participation and social medicine increases qualities of life. Social Science & Medicine, 113149.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정기 후원을 하기 어려운 분들도 소액 결제로 일시 후원이 가능합니다.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