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코로나19 방역은 개방형 또는 자율형에 가깝다. 의무적 자가격리 등에서 공권력을 동원하고 처벌이 따르기도 했지만, 강제보다는 시민의 협력적 행동을 권고, 요청, 촉구하는 방식 위주였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정부가 서울과 경기 지역의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올리기로 했다. 여러 사회 활동을 규제하는 정도가 강화되니 그만한 불편과 경제적 타격이 뒤따를 것이다. 다른 범죄처럼 엄격하게 처벌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강제와 공권력 개입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사정을 반길 사람이 있을까. 코로나19 때문에 직접 건강 피해를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확진자가 많아지면 전체 의료 시스템에 부담이 커지고 다른 환자까지 영향을 받는다. 경제 활동을 제한하면 여러 업종과 개인이 두고두고 타격을 받는 것도 큰 문제다.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는 이 사태가 빨리 진정되기를 기대한다. 당장 유행이 멈추고 확진자가 ‘0’이 되기는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유행을 통제할 수 있고 최소한이라도 경제와 사회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상태를 회복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몇 달 전과 비교해 사정이 크게 낫지 않고 어떤 것은 더 나쁘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시민과 주민의 ‘피로감’이 가장 걱정스럽다. 심리적 피로도 그렇지만 예외적 생활과 삶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정이 더 크다. 이른바 고위험 시설과 업종이 2단계 사회적 거리 두기의 지침을 얼마나 따를 수 있을까?
이와 대비해, 우리가 그동안 여러 차례 중요성을 강조한 정부와 사회의 ‘준비’는 크게 미덥지 않다. 그 준비란 개인과 그 생활을 결정하는 구조이자 환경과 같은 것, 예를 들어 경제 활동, 직장과 노동, 소득과 시장에 대한 것이다. 이른바 먹고 사는 일이 방역에 영향을 미치는 사정과 관련된 과제.
방역 당국은 이번 일이 어찌어찌 잘 수습되더라도 더 꼼꼼한(그리고 과감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한국 사회의 그 고질적인 풍토, 일이 닥쳐야 반응하는 방식으로는 장기적 관점에서 성공을 낙관할 수 없다. 방역의 과학을 바로,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는 토대도 이런 준비에서 나온다.
이와 함께 발등에 떨어진 불은 당장 몇 주 동안 최선을 다해 더 큰 유행을 막아내는 것이다. 개인 윤리와 행동에 의존하는 ‘개인화’ 모델은 결코 답이 될 수 없으나, 당장은 뾰족한 방법을 찾기 어려우니 각자 협력하고 행동하는 것에 출발한다.
다만, ‘각자도생’의 원리를 벗어나, 그리고 하향식 명령, 권위주의적 국가와 중앙정부, 주민동원형을 탈피해, ‘시민협력형’, ‘시민참여형’, ‘시민주도형’ 방역으로 전환할 것을 거듭 주장한다. 즉시 이렇게 바꾸는 것이 어렵고 혼합과 병행을 피할 수 없다면 후자의 실력을 키우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판단하기에 출발할 만한 사회적 기초는 이미 존재한다. 정부 방침과 무관하게 각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여론이 들끓는 것, 빠른 ‘공론화’가 대표적 예다. 방역 당국과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이해하지 못할 대규모 집회를 강행한 일부 단체와 집단에 대해 비판 여론이 비등한 것도 같은 차원이라고 판단한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이미 정해진 방역 지침과 수칙이 모든 곳에서 제대로 실천되기를 바란다. 위반과 처벌, 강제와 공권력, 비난과 차별로 가기 전에 기존 방침이 원활하게 작동해 더 큰 유행으로 번지지 않아야 한다. 지식과 정보를 얻어 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각 개인과 조직이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참여와 협력의 첫 단계다.
각 개인, 업소, 단체, 조직이 나서야 하니 겉으로는 각자도생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감염병의 특성상 각자도생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위한 협력적 행동이다. 마스크가 나에게 예방인 동시에 남(사회)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둘째, 그래도 곳곳에 수많은 틈과 구멍이 남을 터, 이는 개인과 집단으로서 시민의 역량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해보지 않던 것을 갑자기 할 수는 없으니 이미 있는 토대를 활용하는 정도라도 시민참여형 방역을 만들고 실천해야 한다. 주도와 참여를 말할 형편이 아니면 협력 수준이라도 괜찮다.
예를 들어, 도저히 사정이 안 되는 작은 교회가 있을 때, 그 교회가 소속된 교단이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아무리 ‘개(個)교회주의’가 강하다고 해도). 그 많은 직종과 직역의 연합회와 연맹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까. 시장에 있는 여러 모임은 공동 대책을 논의할 수 없나.
셋째, 1~2주 안에 괜찮아지면 몰라도 더 길어지면 정부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협력과 참여를 정치적으로 소모하는 것, 주로 개인화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경향을 경계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개인이 행동을 바꾼다고 모두 될 일이 아니라 정부가 개입하는 경제와 노동의 체계와 떨어지기 어렵다(논평 바로가기).
실직자와 비정규 노동자, 영세 자영자, 한계 상황의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꼼꼼하지만 담대한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감염병 유행의 사후 대책이 아니라 방역 대책 그 자체다.
그 누구도 ‘부채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임대료, 이자, 공과금, 건강보험 보험료 등을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정부의 가장 큰 관심사일 테니 더 말하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 연쇄 반응이 일어날 터, 정부의 진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나아가 시민참여형, 시민주도형 방역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정책 개혁이 긴요하다. 정부의 인식 전환을 촉구한다. 이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불확실하고 새로운 유행이 몇 번이나 더 있을지 모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과제라기보다 이미 당면 과제라는 점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