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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몸에 대해 말하는 성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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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지난 8월 26일 성평등 교육용으로 일부 초등학교에 배포되었던 7종의 책 10권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성교 자체를 신나고 멋진 일로 표현하고” “성관계를 자세하게 묘사”하며 “동성혼을 미화하거나 조장”했다는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동성애 미화’ ‘성관계 묘사’ 논란… 성교육 책 회수).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담푸스), <걸스 토크>(시공주니어), <엄마 인권 선언>(노란돼지) 등의 책들은 엄마와 아빠의 성관계를 간결한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자신이 바라본 성기 생김새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마음이 끌리는 ‘관계’에 대해 긍정하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성교육책이 문제라면 성교육은 과연 무엇을 다루어야 하나? 아이들에게 무엇이 궁금한지 직접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청소년이 알고 싶은 것을 직접 질문하도록

 

스위스 취리히대학 연구팀은 묻는 대상과 범위를 조금 달리했다 (논문 바로가기: 성교육에서 미충족된 수요: 청소년이 다른 성에 대해 알고 싶은 것). 스위스 학교는 법적으로 만11세 이상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매년 성교육을 실시할 의무가 있다. 연구팀은 2014년 1월부터 2015년 9월까지 스위스 취리히의 82개 학교, 123개 반(남학생 1,158명, 여학생 1,184명)에서 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1~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으니, 한국으로 치면 초등 5학년부터 고등 3학년까지 포함된 셈이다. 모든 교육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콘돔 사용에 대해 배우고 직접 실습하거나 그룹토론 후에 관계 지향적인 역할극 등을 하는 식이다. 연구팀은 프로그램 말미에 청소년에게 다른 성에 대해, 즉 여성이라면 남성에 대해, 남성이라면 여성에 대해 무엇이 알고 싶은지 질문 10개를 직접 만들도록 했다. 열린 토론을 통해 각 반당 질문 10개씩 추렸고, 부적절한 질문은 제외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최종 질문이 2,625개, 연구팀은 이 질문을 내용분석법(content analysis)으로 활용해 범주화했다.

 

청소년들이 던진 질문 중 가장 많은 범주는 성적인 상호관계(sexual interaction)로 35.8%를 차지했다. 남성 청소년(40.8%)과 여성 청소년(31.2%) 모두 1순위로 궁금해 하는 항목이었고, 모든 연령대에서 1순위였다. 특히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성적 상호관계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졌다. 성적인 상호관계는 구강성교, 체위 등 성적 취향, 첫 성관계, 흥분, 성적 지향, 키스, 성 경험, 피임, 성감염병 등에 관한 것이다. 그 다음은 몸에 대한 것으로 신체구조, 체모 등에 대한 질문이 15.2%, 사랑, 데이트 등 관계에 대한 질문이 13.9%, 남녀의 이상적인 모습이 10.5%, 자위 10.1%, 포르노에 대한 질문이 7.3%를 차지했다.

 

연구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성적 상호관계와 몸에 대해 가장 궁금해했다. 연구팀은 스위스 성교육이 위험한 성적 행동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그동안 성 건강, 재생산 건강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춰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성과 (애정)관계는 삶의 질에서 핵심을 차지하지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이런 관계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성교육 기본내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요즘은 포르노 매체에 더 쉽게 접근하고 왜곡된 젠더 역할에 노출되면서, 청소년들이 관계나 파트너에 대한 존중 없는 성관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나쁜 사례가 N번방 사건이다.

청소년이 바라보는 학교 성교육은 지루하기만 하다. 궁금한 걸 가르쳐주지도 않고, 일상에서 필요한 정보를 주지도 않는다. 우리보다 실용적인 성교육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스위스에서조차 그렇다. 성을 뭔가 건강하지 않은 것, 숨겨야 하는 것으로 보는 접근방식 때문이다.

 

 

학교 성교육의 경쟁상대는 인터넷?

 

스위스에서 진행된 연구 하나를 더 살펴보자(논문 바로가기: 주로 누구에게 성교육을 받는지가 중요한가? 스위스의 연구). 스위스 로잔대학과 취리히대학의 연구팀은 24-26세 스위스 성인을 대상으로 전국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성에 대한 정보를 주로 누구에게 얻었는지 묻는 조사였다. 조사 참여자 4,978명 중 친구라고 응답한 사람이 38.9%(1,939명), 부모님이 27.3%(1,361명), 학교 19.1%(949명), 인터넷 8.0%(399명), 아무도 없었음 3.5%(172명), 기타(가족 중) 3.2%(157명)이었다. 학교보다는 친구, 부모님이라고 응답한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 보급률과 속도가 세계 최정상인 한국은 아마도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을 더 클 것이다.

 

설문조사는 첫 성경험, 위험한 성적 행동(성감염병 이력 등), 원하지 않은 성적 접촉 경험에 대해서도 물었다. 학교에서 정보를 얻은 이들과 비교하면, 친구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은 이들, 정보를 받을 사람이 없는 그룹, 기타 그룹 모두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을 경험할 위험이 1.46배~1.76배 높았다. 특히 친구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은 이들은 1회 이상 성감염병 이력이 있을 위험이 다른 이들보다 더 높았다 (1.46~1.58배). 학교에서 정보를 얻은 이들과 부모에게 정보를 알게 된 이들 간에는 두 가지 모두에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반면 부모에게 정보를 받은 이들의 경우, 첫 성경험에서 콘돔 사용 등 피임을 할 확률이 다른 이에 비해 더 높았다(1.72-1.77배). 지속적으로 예방에 대해 메시지를 듣고 이를 실제 생활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성 청소년과 성소수자 청소년은 정보원으로 인터넷을 더 많이 이용했다. 학교나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는 정보를 자유롭게 묻고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성교육이 성과 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일찍,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인터넷을 이용한 성교육방식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성과 몸에 대해 말하는 성교육

 

청소년이 가장 많이 내놓은 질문은 성과 몸에 대한 것이고, 그걸 학교에서 ‘제대로’ 배울 수 있을 때 이후 성 경험이 더 안전해질 수 있다. 앞선 연구를 수행한 팀은 청소년이 원하는 지식을 얻게 되면,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충만한 관계를 갖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몸과 신체구조, 성건강이나 재생산건강을 다루는 것은 성교육의 기본값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성적인 부분뿐 아니라 관계 측면에서 충분한 지식을 갖도록, 성교육 커리큘럼이 성의 즐거움,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일, 사회적 규범과 포르노 대응까지 다루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신을 말하지 않고 출산을 말할 수 없고, 성교를 말하지 않고 피임을 말할 수 없다. 성과 몸을 말하지 않고 회피하는 성교육은 최소한의 건강과 안전, 삶의 질 어떤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서지정보

 

Max Bauer, Silvan Hämmerli, Brigitte Leeners. Unmet Needs in Sex Education-What Adolescents Aim to Understand About Sexuality of the Other Sex. J Adolesc Health 2020;67(2):245-252.

 

Yara Barrense-Dias, Christina Akre, Joan-Carles Surís, André Berchtold, Davide Morselli, Caroline Jacot-Descombes, Brigitte Leeners. Does the Primary Resource of Sex Education Matter? A Swiss National Study. The Journal of Sex Research 2020;57(2):166-176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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