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소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추석 연휴에 시간제, 기간제, 임시직, 일용직, 단기 알바 아니 ‘파트너’, ‘플렉스’, ‘라이더’, ‘커넥터’ 등등은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지난 몇 십 년간 이들을 가리키는 수많은 이름들이 등장했고 앞으로도 그럴듯한 이름들이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이러한 노동 형태를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본다면 ‘불안정 노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이때 ‘불안정’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불안정성은 우리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국제 학술지 <미국사회학리뷰(American Sociological Review)>에 실린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의 논문은 ‘불안정 노동’이 가진 여러 가지 불안정의 측면 중에서도 들쭉날쭉하는 근무 스케줄에 초점을 맞춰 그것이 노동자들의 심리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경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논문 바로가기: 불안정한 근무 스케줄이 노동자 건강과 웰빙에 미치는 결과).
연구팀은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의 소매업과 요식업 부문 매출 순위 80위 안에 드는 업체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광고를 냈고, 이를 통해 시급을 받고 일하는 27,792명의 서비스업 노동자들을 웹 기반 설문조사에 참여시킬 수 있었다. 연구팀은 노동자들의 업무 스케줄과 심리적 건강상태, 수면의 질, 행복도를 측정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보고자 했다.
다음과 같은 연구진의 질문은 불안정한 업무 스케줄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① 귀하의 근무형태는 다음 중 어디에 해당합니까? (답가지: 계속 변화되는 스케줄, 규칙적인 주간 근무, 규칙적인 저녁 근무, 규칙적인 야간 근무, 교대근무, 기타) ② 귀하는 업무 스케줄을 언제 통보받습니까? (답가지: 0-2일 전, 3-6일 전, 1-2주 전, 2주 이상 전) ③ 귀하는 지난 한 달간 24시간 전에 업무 스케줄이 취소된 적이 있습니까? ④ 귀하는 지난 한 달간 즉각 투입되어야 하는 대기상태로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⑤ 귀하는 지난 한 달간 마감을 하고 11시간 미만의 휴식 후 다음날 개장을 해야 하는 근무(이를 “Clopening”으로 표현했는데 Closing과 Opening의 합성어)를 한 적이 있습니까? ⑥ 귀하의 업무 스케줄은 누구에 의해 결정됩니까? (답가지: 오직 고용주가, 약간의 노동자 의견을 반영하여 고용주가, 약간의 고용주 의견을 반영하여 노동자가 또는 오직 노동자에 의해). 연구팀은 여섯 개의 질문마다 각각 점수를 부여하였고, 이를 합산하여 점수가 높을수록 그 노동자의 근무 스케줄이 불안정한 상태라고 가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업무 스케줄의 불안정성과 노동자들의 심리적 건강상태, 수면의 질, 행복도의 관계를 로지스틱 회귀분석 방법을 통해 확인하였다.
분석 결과, 근무시간 스케줄이 불안정한 노동자일수록 심리적 고통이 크고, 수면의 질이 낮았으며, 행복도가 낮게 나타났다. 들쭉날쭉한 스케줄로 일하는 노동자의 일자리는 저임금인 경우가 많을 것이고, 저임금이 그들의 마음 건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의 흥미로운 점은 낮은 소득보다는 불안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업무스케줄 자체가 심리적 건강에 더 강한 영향력을 보였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연구는 노동시간과 그들의 소득이 직접 연동되는 ‘시급제’ 노동자를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심리적 건강상태에 소득보다 근무 스케줄의 불안정성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발견이 중요하다.
연구팀은 불규칙한 업무스케줄이 심리적 건강에 어떤 경로를 통해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이 속한 가구의 경제적 불안정성, 일과 삶의 불균형 정도도 함께 측정했다. 그 결과 업무 스케줄이 불안정할수록 가구의 경제적 불안정성, 일과 삶의 불균형 정도 둘 다 높아지며, 결국 그들의 심리적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영향력의 상대적 크기를 살펴보면 일과 삶의 불균형 정도가 가구의 경제적 불안정성보다 마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두 배 정도 크게 나타났다. 즉, 가구의 경제적 불안정성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감정에 37% 영향을 끼친다면 일과 삶의 불균형은 76% 영향력을 미쳤다. 연구팀은 항상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하거나 근무 스케줄이 직전에 취소 혹은 추가되는 등 불안정한 업무 스케줄을 가진 사람들은 개인적 삶을 꾸려가는 데 큰 갈등을 겪을 것이 틀림없고 이것이 그들의 마음 건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보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그간 불안정 노동과 관련된 많은 연구와 정책들이 낮은 소득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 소득 뿐 아니라 시간적 차원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상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일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노동시간은 우리 삶의 안녕과 건강에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일하는 시간을 예측할 수 없다면 나의 삶 전체에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점에서 예측할 수 있는 근무 스케줄은 우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회적 결정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적시 조달(just-in-time) 스케줄(예, 판매 패턴 분석을 통해 어느 시점에 직원 몇 명이 필요할지 예측하고 고객이 줄어들면 직원을 집에 보내기도 하는 방식)이나 대기(on-call) 스케줄은 지난 몇 십 년간 노동수요와 관련된 불확실성을 노동자에게 떠넘겨온 기업의 주요한 전략이다. 이렇게 해서 기업은 한 푼의 손해도 보지 않지만, 그들이 절감한 노동 비용은 장기적으로 노동자의 건강에 피해가 되어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논문에서는 그간 불안정 노동의 경제적 차원에 집중했던 논의들이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 유급병가 등의 정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확장된 흐름에 덧붙여, 최근 몇 년간 미국 몇몇 지역에서 생겨나고 있는 근무 스케줄에 대한 규제들도 소개한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뉴욕시 등에서는 체인점들이 2주 이상 전에 노동자에게 근무스케줄을 공지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뉴욕시 조례는 ‘클로프닝’을 할 경우 고용주가 노동자로부터 서면동의서를 받고 추가 100달러를 지급하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외 몇몇 다른 지역에서도 노동자들이 근무 스케줄을 짜는 것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불안정 노동의 경제적 차원 뿐 아니라 시간적 차원에 대한 규제들이 점차 확산되는 중이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내가 원할 때, 달리고 싶은 만큼만”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라이더’나 ‘플렉스’를 모집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이 ‘내가 원할 때 쓰고 싶은 만큼만’ 노동을 쓰지 않을 수 있도록, 불안정한 업무 스케줄이 초래하는 건강과 안녕의 부담을 온전히 노동자들이 감내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도 시간 규제에 대한 목소리를 낼 때가 되었다.
<서지정보>
Schneider, D., & Harknett, K. (2019). Consequences of Routine Work-Schedule Instability for Worker Health and Well-Being.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84(1), 82–114. https://doi.org/10.1177/000312241882318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