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가난하다는 생각 그 자체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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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빈곤이 건강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물질적 자원이 부족하면 건강한 환경에서 건강한 생활습관을 지키며 살아가기 힘들고, 몸이 아파도 제때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진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스트레스 역시 더 심할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빈곤이란 어느 정도 수준을 말하는 것일까.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고, 부담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정도면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일정 수준 이상의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면 빈곤으로 인한 건강문제는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실린 중국 연구팀의 논문은 빈곤이 단지 현재의 수입과 지출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며,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논문 바로가기: 객관적․주관적 빈곤과 정신건강을 연결하는 기전: 부정적 생활사건과 사회적 지지의 순차적 매개 역할). 논문은 2015년도 ‘빈곤 완화를 위한 홍콩 패널 조사(Hong Kong Panel Survey for Poverty Alleviation)’에 참여한 가구주 1,605명을 대상으로, 빈곤, 부정적 생활사건, 사회적 지지, 그리고 정신건강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여기서 부정적 생활사건은 지난 12개월간 가족의 죽음이나 만성질환, 법적 문제, 관계 문제, 재정적 어려움 등을 겪었는지 체크리스트를 통해 점수화하여 측정했다. 사회적 지지는 구체적 물품이나 서비스, 도움 제공을 의미하는 ‘도구적 지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 제공을 의미하는 ‘정보적 지지’, 급한 상황에서 돈을 빌려주는 등의 ‘재정적 지지’에 대한 문항을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정신건강은 신체화 증상, 우울, 불안, 수면 장애, 대인관계의 어려움 등의 항목을 포함한 측정도구를 활용했다. 연구에서 주목할 할 점은 빈곤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는 점이다. 하나는 홍콩의 공식 빈곤선을 기준으로 한 객관적 빈곤(가구 월 중위소득 50% 이하)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스스로 빈곤하다고 생각하는지를 기준으로 한 주관적 빈곤이다.

 

분석 결과, 객관적 빈곤과 주관적 빈곤 모두 부정적 생활사건의 위험, 더 낮은 수준의 사회적 지지, 정신적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었다. 구체적 기전을 살펴보면, 빈곤은 부정적 생활사건을 경험할 가능성을 높이고 (a1), 부정적 생활사건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 (b1). 빈곤은 사회적 지지를 덜 받게 만들기도 했는데(a2), 사회적 지지 감소는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b2). 또한 빈곤이 부정적 생활사건에 영향을 미치고 (a1), 부정적 사건은 사람들을 고립시켜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d21)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b2).

 

객관적 빈곤과 주관적 빈곤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비슷했지만, 전체적으로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주관적 빈곤이 객관적 빈곤보다 더 컸다. 또한 주관적 빈곤은 그 자체로 정신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쳤지만, 객관적 빈곤은 그 자체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c). 결국 객관적으로 가난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가난하다는 생각하는 경우 정신건강 문제를 겪을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경기가 위축되고 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시기에는 객관적 빈곤뿐 아니라 주관적 빈곤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객관적 빈곤에 빠진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빈곤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정신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연구결과가 말해주듯, 도구적 지지, 정보적 지지, 재정적 지지 등 사회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다면 빈곤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완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주관적 빈곤감을 감소시키는 조치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객관적 빈곤에 대한 대책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를 좀 더 촘촘하게 만들고 그 대상을 더 넓혀야 한다. 사람들은 현재의 수입과 지출만이 아니라 과거의 수입, 미래의 기회와 의무, 고용 상태, 교육과 건강, 그리고 주거와 필수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자신의 재정적 상태를 평가한다. 안정적 주거를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을 필요가 없다면, 부모와 자녀 돌봄을 위해 시장에서 지출하는 비용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면, 일하지 못하도 소득이 보장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빈곤을 걱정하고 정신건강을 헤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서지정보

Chang, Q., Peng, C., Guo, Y., Cai, Z., & Yip, P. S. F. (2020). Mechanisms connecting objective and subjective poverty to mental health: Serial mediation roles of negative life events and social support. Social Science and Medicine, 265(August), 113308. https://doi.org/10.1016/j.socscimed.2020.11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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