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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가 건강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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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국내 특허·상표 출원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중이다. 바이오·의료기술, 의료기기와 의약품이 가장 큰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바로가기). 국외로 눈을 돌려도 다르지 않다. 국제특허출원이 감소한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한국의 국제특허출원은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했다. 특허청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지식재산권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전환하는 긍정적 신호로 풀이”된다며 “국내 기업들이 포스트 코로나 유망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지재권을 선점할 수 있도록 지원시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바로가기).

 

전 세계적으로 146만 명 이상의 사망자, 6천 281만 명 이상의 확진자를 발생시킨 팬데믹 상황에서(2020년 12월 2일 현재), 한 나라 정부 부처가 “글로벌 지재권 선점” 운운하는 것은 아무래도 낯 뜨겁다. 특허청은 이미 코로나19 대유행 초기부터, 사람들에게 코로나19에 대응할 아이디어를 내고 특허를 출원하라고 독려해왔다(관련 자료: 코로나19 틈타 돈벌이에 골몰하는 특허청).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외교부가 여러 차례 강조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인류를 위한 공공재로서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되어야”하며 이를 위해 “국경을 넘어 협력해야” 한다는 원칙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관련 자료1: 문 대통령 코로나19 백신·치료제, 전세계에 공평하게 보급돼야, 관련 자료2: 정부, 코로나19 백신 개도국 지원에 1,000만불 공약).

 

특허청의 이러한 태도는 흔히 ‘지재권 최대주의’ 혹은 ‘지재권 교조주의’라고 불린다(관련 자료: 박원순도 몰랐고 이재명도 모르는 진보를 위한 지적재산 정책). 팬데믹 상황에서도 예외가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최근 밴더빌트 초국가법 저널(Vanderbilt Journal of Transnational Law)에 발표된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학교 아나 산토스 루츠만(Ana Santos Rutschman) 교수의 논문이 해답을 줄지도 모른다. 루츠만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개념을 빌려, 특허·상표와 같은 지적재산이 건강을 좌우하는 결정요인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논지를 전개한다(논문 바로가기: 건강결정요인으로서 지적재산).

 

건강결정요인은 사실 백신이나 치료제와 같은 의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고, 자라고, 살고, 일하고, 나이 드는 다양한 사회적 여건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러한 여건은 지역적, 국가적, 지구적 수준에서 돈, 권력, 자원의 분포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이러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은 한 국가 내 또 국가 간의 건강 불평등, 곧 불공정하고 회피가능한 건강수준의 차이를 설명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백신이나 치료제와 같은 의료기술에 대한 접근이 중요한 건강결정요인이라면, 지적재산은 이들 요인의 역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결정요인 논의에서는 지적재산 요인이, 반대로 지적재산 논의에서는 건강과 건강불평등 영향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논문은 특히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설립과 함께 도래한 전 세계적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 체제에 주목한다. 20년 이상의 특허 보호를 의무화하고, 의료제품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방법에까지 특허를 부여하도록 하는 현재와 같은 체제는 불과 25년 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참고 자료: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공평한 접근: 연구와 생산을 둘러싼 협력이 핵심이다).

 

저자는 HIV/AIDS 예방약과 코로나19 치료제, 두 가지 의약품 접근에 대한 사례연구를 통해 지적재산 체제, 그 틀과 규범이 중요한 건강결정요인이라는 주장을 논증한다. 먼저 HIV/AIDS 예방약이라고 불리는 트루바다 프렙(PrEP) 요법은 의약품의 상업화가 야기한 높은 약가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다. 한국에서는 한 달 약값이 40만원이 넘게 드는 이 약은 작년 6월부터 HIV 감염인의 파트너인 비감염인에 한하여 프렙 요법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다. 미국에서는 그 5배인 한 달 200만 원(1,750달러)이 든다. 특허로 시장독점을 보장받은 길리어드는 2004년 HIV/AIDS 치료제로 이 약을 처음 출시한 이후 15년 간 가격을 3배 인상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공적 의료보장제도가 허술하다. 보험이 없는 2천 6백만 명(전체 인구의 8%, 2019년 기준)은 의료비를 전액 자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결과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하면 99% 예방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HIV 신규 감염이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르지 않다. 지리적으로는 남부와 푸에르토리코의 빈곤한 시골 지역, 인구집단으로는 유색인종에서 신규 감염이 높다. 이들은 보험이 없거나 보장성이 낮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내 프렙 요법 대상자는 120만 명이지만, 이 중 실제 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18.1%에 불과하다. 복용자 대부분(3/4)은 캘리포니아와 같은 부유한 지역의 백인 남성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 트루바다의 특허권자는 길리어드지만, 프렙 요법을 발명한 것은 길리어드가 아닌 미국 정부라는 사실이다. 2004년 길리어드가 HIV/AIDS 치료제로 트루바다를 출시한 뒤, 미국 CDC와 에모리대학이 연방정부기금으로 수행한 연구에서 이 약의 예방 효과를 확인했다. 길리어드가 가진 특허가 새로운 혁신을 낳은 것이 아니라, 공적 기금과 공적 연구가 혁신을 이끌어낸 것이다. 길리어드는 2012년 프렙 요법에 대한 허가를 추가로 받았다. 트루바다 하나로 길리어드가 2004년 이래 15년 간 400억 원(36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동안 미국 정부는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세금을 통해 프렙 요법 발명에 기여한 시민들은 비싼 가격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에도 이 약을 복용하지 못하고 HIV 감염에 노출되었다.

 

두 번째 사례는 논란의 코로나19 치료제 렘데시비르다. 이 약의 개발사(史)는 지적재산 체제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과 공중보건위기 대비체계와 얼마나 상충하는지를 보여준다. 당초 이 약은 미국 공공부문의 지원(미 육군 감염병의학연구소의 연구, 학술연구기관에 대한 지원금 등)에 힘입어 길리어드 과학자들이 개발했다. 2014-2016년 에볼라 유행 당시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1상을 통해 항바이러스 효과가 확인되었지만, 유행이 완화되자 연구개발 진행은 지체되었다. 2020년 2월, 코로나19 대유행이 확실해지자 그제서야 길리어드는 렘데시비르에 대한 연구개발을 재개했다. 기존의 연구개발이 렘데시비르를 있게 했지만, 개발 작업을 본격화하도록 자극한 것은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심각한 공중보건위기였다.

 

그런데 이는 공중보건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에 의약품을 개발하고 비축하며, 그를 위해 투자한다는 감염병 대비 원칙과 어긋난다. 길리어드는 2015년에 렘데시비르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고, 2019년에 특허를 출원했다. 특허를 통해 다른 이들의 연구개발은 배제하면서, 코로나19 대유행이 발생하기 전까지 연구개발을 진척시키지 않았다. 특허가 혁신을 저해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2001년 11월 14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는 ‘TRIPS 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선언(약칭 도하선언)’을 채택했다. 지적재산이 공중보건에 우선할 수 없으며,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 모두에게 공평한 의약품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적재산을 제한할 수 있음을 재확인한 기념비적 선언이었다.

 

도하선언은 1995년 WTO와 TRIPS 체제 출범 이후, HIV/AIDS가 확산하던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움튼 전 세계적 치료제 접근성 운동의 결실이었다. 환자들은 물론 정부 역시 1인당 연간 1만 달러의 약값을 감당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남아공 정부는 당시 TRIPS 협정이 적용되지 않던 인도로부터 1/20 수준으로 저렴한 제네릭을 병행수입 하려했다. 39개 초국적 제약사들이 남아공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지만, 전 세계 시민사회의 저지운동에 결국 소송을 취하했다. 이후 여러 중·저소득 국가들이 강제실시를 통해 저렴한 제네릭을 생산·수입해 환자들에게 공급했다.

 

그리고 2020년 10월 2일, 인도와 남아공 정부는 건건이 발동하는 강제실시를 넘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TRIPS 협정 일부조항 유예(TRIPS 유예안)’를 WTO에 제안했다(관련 자료: TRIPS 유예안). 코로나19 백신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까지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된 것 중 가장 비싼 백신은 1인당 최대 8만 원 이상(74달러)을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소득 국가들의 백신 구매 경쟁으로 중·저소득 국가들에게 돌아올 물량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다. 지적재산을 통한 독점이 아니라 지식과 기술의 공유와 협력을 통해 백신의 제조규모를 전 세계적으로 대폭 확대하는 것만이 모두에게 공평한 백신 접근성을 보장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가장 빠르게 종식시킬 수 있는 길이라는 게 인도·남아공 정부의 설명이다.

 

WTO는 연말까지 TRIPS 유예안을 논의한다. 12월 3일 오늘 오후 6시(제네바 시간 오전 10시)에도 TRIPS 위원회가 열린다. 그간의 회의에서는 이미 백신을 사재기한 미국, 유럽, 일본 등 고소득 국가들의 반대와 중·저소득 국가들의 찬성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고소득 국가들의 반대 행렬에 합류하지는 않았지만, 찬성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2020년 판 도하선언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정부는 수차례의 ‘인류를 위한 공공재’ 수사를 실천할 것인가? 시민들의 관심과 요구가 절실하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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