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지역과 시민의 역량이 중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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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유행으로 번질까 아슬아슬하다. 하루 확진자가 천 명을 넘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형편이다. 대학입시 등 유행을 억제하는 데 불리한 조건들이 겹쳐 있는 때라 더 불안하다.

 

화끈하고 확실한, 그동안 숨겨둔 묘책이 있을 리 없다. 모두가 다 알고 이제는 평범해진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다. 이 <논평>을 통해 여러 차례 주장한 것처럼, 문제는 방역단계를 올리니 마니 하는 것보다는 예방 방법을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는 지다. 9시에 문을 닫게 하면 조금 낫겠지만, 실은 낮이든 밤이든 옳은 방역지침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이 시기에 특별히 ‘분권형’ 방역과 ‘시민주도형’ 방역을 (다시) 촉구한다. 이 정도 규모로 확진자가 나오고 중환자가 늘어나면 중앙정부가 모든 상황을 관장하기 어렵다는 것이 핵심 이유다. 겉으로 보기에 또는 양(量)으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지원, 지휘, 조정, 감독, 관리, 정보 등 모든 기능에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피해가 커지기 쉽다.

 

 

먼저, 분권형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만 가리키지 않는다. 시도와 시군구 정부의 책임지는 역할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지역별 진료체계에 대해서는 한 주일 전 논평을 참고할 것(논평 바로가기).

 

이보다 더 넓은 의미의 분권화란 학교, 병원, 종교시설, 공공기관, 작업장과 업체 등등이 방역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때로는 자구 노력으로 또 어떤 경우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준비하고 실천하자는 원리이니, 이런 분권은 곧 참여이고 민주주의이며 공화주의적 실천이다.

 

개별 주체가 중앙 행정이나 당국이 전달하는 규정, 지침, 요구, 요청, 또는 규제에 따르는 것 이상이어야 할 때, 우리 형편에 이런 ‘체계’가 잘 돌아갈까. 아마도 비현실적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더 많으리라. 경험은커녕 논의와 시도도 부족한 마당에 갑자기 분권형이라니. 리더십과 민주주의라는 토대 또한 허약하기 짝이 없다.

 

다만, 지난날을 탓할 여유가 없으니 이 상황을 지렛대로 삼자고 제안한다. 병원이든 학교든 또는 물류센터든 전체 상황을 고려하여 섬세하지만 담대하게 논의하고 결정해주기 바란다. 가보지 않은 길이 여럿이겠으나, 이번이 아니어도 또 만날 수 있는 상황이다. 곳곳에서 맞춤형 지침을 만들고 실천하는 ‘능동적’ 주체가 태어나고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지침을 따르는 수준을 넘어 협력하고, 한 걸음 더 나가 시민이 방역을 주도해야 한다는 사정도 비슷하다. 각 개인이 실천 주체이고 개인 각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감염병의 특성상, 종국에는 각 개인이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관건이다.

 

시민주도형 방역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는 8월 중순 2차 유행 때 주장한 그대로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겠다(논평 바로가기).

첫째, 이미 정해진 방역지침과 수칙이 모든 곳에서 제대로 실천되기를 바란다. 위반과 처벌, 강제와 공권력, 비난과 차별로 가기 전에 기존 방침이 원활하게 작동해 더 큰 유행으로 번지지 않아야 한다. 지식과 정보를 얻어 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각 개인과 조직이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참여와 협력의 첫 단계다.

 

둘째, 그래도 곳곳에 수많은 틈과 구멍이 남을 터, 이는 개인과 집단으로서 시민의 역량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해보지 않던 것을 갑자기 할 수는 없으니 이미 있는 토대를 활용하는 정도라도 시민참여형 방역을 만들고 실천해야 한다. 주도와 참여를 말할 형편이 아니면 협력 수준이라도 괜찮다.

 

경계하는 말도 그대로 옮긴다.

 

협력과 참여를 정치적으로 소모하는 것, 주로 개인화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경향을 경계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개인이 행동을 바꾼다고 모두 될 일이 아니라 정부가 개입하는 경제와 노동의 체계와 떨어지기 어렵다.

 

주민주도형 방역 또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동의한다. 다만, 주민주도형이란 우리 스스로 수동적 주체로부터 능동적 주체로 전환하자는, 말하자면 일종의 관점 전환이자 생각 바꾸기의 기획이다. 당장 무슨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출발로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방역의 주체인 정부의 대응은 못내 아쉽다. 분권과 시민주도 측면에서 정부의 대비가 충분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그중 하나. 여유가 있을 때 미리 병상과 인력을 준비해야 한다고 내내 주장했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 방안을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 또한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 말하는 준비도 거의 ‘푼돈’에 가까운 재난지원금이 최대치인 모양을 보니, 아직 멀었다.

 

지난 일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과 몇 달을 내다본 준비가 현재진행형으로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유행이 얼마나 더 갈지 가늠할 수 없다니 무작정 낙관할 수는 없는 노릇. 정부는 지금 이때가 당면 과제는 말할 것도 없고 곧 닥칠 미래 과제를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시기, 즉 ‘이중 부담’의 시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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