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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괴롭힘, 조직은 무엇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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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1월 25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성추행 피해사실을 스스로 밝혔다(기사 바로가기: 장혜영 “왜 그럴듯한 남성조차 여성존중에 실패하는가”). 더불어 당내 사건 해결을 제안하면서 사건의 해결과정도 주목받고 있다(기사 바로가기: 장혜영 3자의 형사고발 유감또 다른 피해자다움강요). 사건해결의 궁극적인 목적이 피해자의 회복과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조직 내 공동체적 사건해결을 우선순위로 두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성추행, 성폭력 사건의 발생은 늘 피해자의 신고나 폭로로 시작되었다. 장 의원이 말했듯, ‘피해자다움’이나 ‘가해자다움’이란 애초에 없지만, 피해자는 ‘너만 다쳐’라는 공격과 회유를 넘어 자존감과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이제는 물을 때가 되었다. 피해자가 자신을 공개하고 사건해결을 위해 싸울 때, 조직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피해가 발생하기 이전에 성추행,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조직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퇴사를 고민하는 피해자

 

미국의 포드 연구팀은 2020년 <응용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발표한 논문에서 조직내 성적 괴롭힘 용납수준에 따라, 성적 괴롭힘 피해자의 피로도와 취약성이 어떻게 영향받는지 살펴보았다(논문 바로가기: 성적 괴롭힘에 대한 조직적 용인: 회복탄력성, 취약성, 괴롭힘 피로도에 대한 탐색). 2017년 10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미국에서 온라인설문조사로 진행된 연구에는 직장에서 성적 괴롭힘을 경험했으며, 주 2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23~68세까지 다양한 연령의 참여자 187명에게 성적 괴롭힘에 대한 조직내 용납수준이 어떠했는지 물었다. 응답자 중 66.8%는 ‘피해자가 성적 괴롭힘을 신고하면 직업적으로 영향받을 수 있다’, 65.9%는 ‘우리 조직 안에서 성적 괴롭힘을 신고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답했다. 이와 달리, ‘우리 조직은 성적 괴롭힘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고 응답한 이는 26.7%, ‘우리 조직은 다른 사람을 성적으로 괴롭힌 직원을 제재할 의지를 갖고 있다’는 응답 역시 26.7%였다. 미국 사례를 보면, 피해자에게 우호적인 조직적 해결의 길은 멀어 보인다. 아마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조직내 성적 괴롭힘 용납수준이 피해자의 회복탄력성이나 취약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참여자 중 46.2%는 성적 괴롭힘으로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들은 매일(36.4%), 매주(31.8%), 1-2개월에 한번씩(15.2%) 퇴사를 고민하였다.

 

성적 괴롭힘을 용납하는 조직

 

좀 더 대표성 있는 자료를 보자. 2020년 같은 해에 <행정학 연구와 이론>에 발표된 틴클러 연구팀의 논문에서는 미국 전역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직장내 성적 괴롭힘 경험을 파악하고 조직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논문 바로가기: 연방 공무원의 성적 괴롭힘 경험: 성별, 직위, 조직내 용납수준). 연구진은 미국의 전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실적제 보호위원회’(Merit System Protection Board, 공무원 권익보호 및 그와 관련한 행정제도를 관장하는 독립적 준사법적 행정기관)의 2016년 설문조사를 이용하였다. 공무원 8,899명의 응답자료를 분석하고, 조직환경이 성적 괴롭힘을 용인하는 수준을 세 범주로 나눴다. 첫째, 조직이 성적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둘째, 조직이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를 적절하게 해결하는가, 셋째, 조직이 소수자를 동등하게 대우한다고 생각하는가. 분석결과, 조직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해 충분한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응답자,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는 응답자, 소수자를 존중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에서 성적 괴롭힘을 경험할 위험이 모두 유의하게 낮았다. 저자들은 직장내 공격성 척도도 추가분석했다. 즉, 지난 2년간 직장에서 특정한 타인에 대한 공격적 행동을 목격한 적이 있는지 묻고, 이에 따라 성적 괴롭힘 경험이 달라지는지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직장내 공격적 행동을 목격한 경험이 많을수록 성적 괴롭힘을 경험할 위험이 컸다(남성 1.46배, 여성 1.42배). 저자들은 성적 괴롭힘과 같은 성적 유형의 공격이든 아니든, 모든 공격적 행동은 동시에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신고는 피해자의 결정과 선택 안에서

 

사건해결을 위해 사법적으로 처리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용기내어 신고하는 경우가 아니라, 피해자의 결정을 방해하는 사법적 해결은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앞선 논문 결과에서는 공식적으로 성적 괴롭힘 사건을 신고한 경우, 회복탄력성이 더 낮을 수 있었다(β=-2.8, p<.01). 피해자를 지원하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성적 괴롭힘을 신고하는 것은 동료에 의한 배척이나 보복 가능성을 야기할 뿐 아니라, 피해자의 직업경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들은 단순히 사건을 ‘신고하라’고 독려하는 게 사건해결에도, 조직문화 개선에도 비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공식적이고 관료적인 조직채널을 통해서만 사건을 ‘신고’하라는 권고는 피해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여타 가능한 선택지를 배제시킬 수 있다. 사법적 신고는 그 자체가 해답이라기보다, 해결과정의 일부이자 선택지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조직문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가

 

두 논문에서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건 결국 조직문화의 변화다. 조직은 성적 괴롭힘을 용납하지 않고 성적 괴롭힘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경계하고 차단하는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성폭력 사건을 ‘몹쓸 가해자’ 한 명의 책임으로만 취급하면 향후 성폭력 예방에 필요한 문화적, 조직적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성적 괴롭힘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모든 구성원이 성차별적·동성애 혐오적·인종차별적 담론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도록 장려하는 방식이 만들어져야 한다. 조직내에서 부적절한 행동은 용납될 수 없으며, 만약에라도 사건이 발생할 경우 구성원들은 적어도 조직과 동료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은 일터의 민주주의

 

두 논문의 결론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내용이다. 일하는 조직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성적 괴롭힘 피해나 피해자 회복은 달라질 수 있다. 조직이 구성원을 평등하게 대우할 때, 성적 괴롭힘을 예방하는데 적극적일 때, 차별문제에 대해 적절히 대응할 때, 조직 내 공격과 폭력가능성은 줄어줄 수 있다. ‘성폭력이나 성적 괴롭힘 사건 해결을 더 이상 개인에게만 내맡기지 말고, 이제는 조직의 역할로 무게중심을 옮기자’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관련글 바로가기: 성적 괴롭힘은 직업위해요인이다). 민간이건 공공이건 모든 조직은 성적 괴롭힘을 예방하고 민주주의와 형평성을 증진시키는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원칙, 그래서 더 절실하다.

 

*서지정보

 

-Jessica L. Ford & Sonia R. Ivancic (2020) Surviving organizational tolerance of sexual harassment: an exploration of resilience, vulnerability, and harassment fatigue, Journal of Applied Communication Research, 48:2, 186-206, DOI: 10.1080/00909882.2020.1739317

-Tinkler, J. E., & Zhao, J. (2020). The sexual harassment of federal employees: gender, leadership status, and organizational tolerance for abuses of power. Journal of Public Administration Research and Theory, 30(3), 349-364, https://doi.org/10.1093/jopart/muz037

-Oertelt-Prigione, S. (2020). Sexual harassment is an occupational hazard. Journal of Women’s Health. 29(1), 1-2, https://doi.org/10.1089/jwh.2019.8113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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