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서리풀 논평을 통해 진료 수가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지 말했다(프레시안 바로가기). 수가 제도를 바꿀 때가 되었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었다. 제대로 바꾸기 위해서는 올바른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도 덧붙였다.
어떤 질문과 답이 필요할까. 지난 논평에서 주장한 표현을 다시 쓰면, 세 가지 질문 모두에 답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이 논의한 (1) 얼마나 보상할 것인가와 (2) 어떤 방법으로 보상할 것인가는 물론이고, 여기에 보태서 (3) 무엇을 보상할 것인가를 다시 설계해야 할 것이다.
병원이나 의사의 불만은 압도적으로 첫 번째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 사이 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니 한 가지만 더 언급하는 것으로 그친다. 수가의 높낮이에는 정답이 없고, 각기 처한 상황이나 시각에 따라 판단 기준도 다르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에 둔 논쟁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다음으로, ‘어떻게’의 문제는 이른바 진료비 ‘지불제도’를 뜻한다. 마침 딱 한 해 전에 서리풀 논평을 통해 포괄수가제를 다루었다(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지금 제도가 행위별 수가제니, 새로 고치려고 하는 것이 포괄수가제니 하는 것이 모두 진료비 지불제도를 둘러싼 논의다.
그러나 이 역시 자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수가의 높낮이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주어진 환경과 맥락에서 최선의 답이 있을 뿐이고, 따라서 토론과 논의,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하다.
이제 이번 논평의 본론으로 옮겨 가자. 지금까지 가장 관심과 논의가 적었던 것을 다루어야 한다. 수가가 적으니 많으니 하지만, 진료비가 도대체 ‘무엇을’ 보상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지금까지 논의는 적었지만 알게 모르게 이런 식으로 정해진 수가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번 논평에서도 지적했던, 분만이나 흉부외과의 수가를 ‘특별히’ 다르게 하는 것이 그런 예에 속한다.
이런 결정은 흔히 ‘정책적’이라고 잘못 불린다. 본래의 ‘원칙’에서 벗어나 어떤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료비를 지불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때 수가는 물건이나 서비스의 비용을 치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가와 재료가 얼마나 들었는지 따지지 않았다. 사회 전체를 위해 더 많은 의사가 흉부외과를 지원하게 하려는 것, 이것이 ‘무엇을’ 보상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되었다.
수가를 이렇게 ‘활용’하는 것은 궁여지책처럼 보이지만 동기는 분명하다. 압도적으로 민간에 의존하는 한국 보건의료에 변화를 불러 올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그나마 경제적 동기에 의존하는 방법이 남기 때문에 수가가 ‘동원’된 셈이다.
흉부외과에 더 많은 진료비를 주는 것은 특정한 사회적 ‘가치’에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보상의 원칙이 다른 수가와 다르다. 그리고, 사후에라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으니 ‘사회적’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적지 않은 다른 사례가 있다. 지금도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가를 활용하자는 움직임은 많다. 그러나 원칙이 여러 가지가 되면 전체 수가 체계는 어지러워진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누더기’가 될 수도 있다. 겉보기에 혼란스럽고 깔끔하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새로운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원칙을 확인하고 처음부터 논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여러 당사자를 설득하기도 어렵다. 수가 수준과 방법을 사이에 두고 이해당사자가 벌이는 논란도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미봉책과 궁여지책으로 수가 체계를 틀어막기 어렵다. ‘무엇을’ 보상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수가 수준과 보상방법의 새로운 대안이 무엇이든, 진료비 보상은 먼저 ‘무엇을’ 보상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틀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현재 진료비 보상의 기초적인 기준은 ‘원가’이다. 여러 가지 고려 사항이 있지만, 수가는 진료에 들어간 원가를 보상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비용을 받는 쪽이든 지불하는 쪽이든 원가에 기초한 가격 결정이 익숙하다.
병원을 짓고 인력을 고용했지만 현재 수가로는 “원가에도 못 미친다”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순전히 내 돈으로 투자했는데 “손해를 봤다”는 불만도 마찬가지다. 실제 수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원가를 계산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원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고, 모든 분야에 고루 통용된다. 건축이나 토목 공사에 들어가는 돈을 입찰이나 용역으로 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통신비와 아파트 원가를 공개하느니 어쩌니 하는 논란도 다르지 않다. 그만큼 우리의 경제와 사회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가격 결정 논리다.
특히 어떤 이유건 가격 경쟁이 성립하지 않고, ‘공정’하게 가격을 정해야 하는 경우에 원가 개념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의료 수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따로 시장에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니, 원가가 가장 설득력 있는 기준이라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원가를 기준으로 가격을 매기려면 중요한 전제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원가를 구성하는 요소 자체가 안정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생산자가 자의적으로 투입되는 비용을 좌우하면 곤란하다.
아파트를 지으면서 소비자가 필요로 하지도 않는 시설을 갖추어 놓고 비싼 가격을 지불하라고 하면? 원가가 많이 든 것은 맞겠지만 소비자가 합리적 가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정하다고 받아들일 가능성도 낮다.
현재 보건의료 서비스는 건강보험의 틀 속에 있지만, 서비스의 ‘공급’ 만큼은 시장에 가깝다. 각 개별 행위주체가 결정해서 투자하고 시설을 짓는다. 기계와 장비를 들여다 놓고 사람을 고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당연히 비용이 든다. 그런데 이것을 원가로 보고 진료비가 이를 보상해야 한다면?
원가 개념에 기초한다면, 많이 투자할수록, 많은 비용이 들수록, 비싼 인력을 많이 고용할수록 보상해야 하는 비용도 늘어난다. 더 많은 투입과 보상,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되는 투입의 증가라는 고리가 만들어진다.
더 중요한 문제는 결과적으로 어떤 사회적 가치가 산출되는지에 무관하게 갚아야 할 비용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질병을 고치고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도 들어간 비용은 모두 보상해야 한다는 논리가 생긴다.
산부인과의 분만수가, 또는 응급의료나 일차진료의 어려움은 바로 이런 수가 구조에서 만들어졌다. 응급의료의 예가 가장 적나라하다. 원가로 계산하는 한, 어떤 방법으로도 응급의료를 제대로 보상하기는 어렵다. 진료가 없는 대기 시간과 빈 공간을 보상할 방법이 없다.
이제 진료비 보상의 기준을 원가에서 ‘사회적 가치’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얼마나 비싼 기계를 쓴 것과 무관하게, 어떤 사회적 기여를 했는지를 기준으로 진료비를 결정하자.
사회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낸 의료, 예를 들어 더 인간적이고 더 충실한 진료, 예방을 강조하고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것을 돕는 의료에 더 많은 비용을 갚아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원가’가 적게 들어도 더 많은 사회적 기여를 한 진료의 수가를 높이자.
막상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구체적인 방법을 정하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그러나 어렵다고 피해갈 일이 아니다. 흉부외과의 수가를 올리듯, 어떤 진료에 더 높은 사회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지금부터 의논해야 한다.
한꺼번에 바꾸지 않아도 좋다. 꾸준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가치에 기반을 둔’ 수가 지불로 근본 틀을 바꾸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