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든 관심은 백신 접종에 쏠린다. 코로나19 유행의 고통을 끝낼 수도 있다는데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 관심이 협력, 연대, 참여로 이어져 그만큼 가치 있는 결과를 내기 바란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이니 한참을 더 가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자.
코로나19는 지난해부터 일 년 이상 우리 사회의 중심을 차지했고, 올 한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백신 접종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 중심이란 국민의 관심과 여론, 언론,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반응에서 나타나는 집중, 중요도, 우선순위, 그리고 때로는 ‘치우침’을 가리킨다.
‘중심화’는 모든 배분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여러 축의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코로나 때문에 영향을 받는 관심과 노력과 자원의 배분, 그중 한 가지가 코로나가 아닌 필수 서비스들이다. 보건이나 의료뿐 아니라 그 범위는 넓다. 예를 들어 교육, 복지, 문화 등.
이미 작년 경험도 있다. 2020년 6월 중순, 2차 유행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필수’ 서비스를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6월 22일자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결론은 이랬다.
“시스템을 보강하는 작업. 아마도 사람을 늘리거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작업이 먼저일 것이다. 무조건 닫거나 중단하지 않고 기초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 지역과 형편에 따라 안전을 높이는 기술, 일 부담이 커질 때 사람과 자원을 늘려 대응하는 틀을 준비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빠르고 과감했으면 좋겠다.”
아쉽게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되돌아보면 현실은 내내 그대로였으며 대응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새 기억이 바래는 중이지만, 입원과 중환자 병상을 확보하는 준비조차 충분하다 할 수 없을 정도니, 필수의료 유지는 말을 보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제 같은 문제의식에서 백신 접종을 생각할 때다. 엄청난 수의 민간 의료기관이 있으니 검사나 동선 추적, 또는 환자 치료와는 다르다고 할지 모른다. 물론이다. 하지만, 거의 국민 모두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 크고 복잡한 일, 수많은 관련 업무가 따른다. 건강한 사람까지 대상으로 삼아야 하니, 전국적으로는 사람과 조직에 더 큰 파급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니 불확실하고 어렵다. 정부는 올해 안에 약 4천만 명에게 백신을 접종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그중 3천 3백만 명이 후반기 6개월의 접종 대상자인데, 이 정도 규모는 단순 계산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사람에 두 번 접종이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휴일 없이 매일 36만 명가량을 접종해야 하는데, 이는 평시 전국 (모든) 병·의원 외래 진료의 9~10%에 가까운 수치다(2019년 기준). 공공이든 민간이든 추가로 사람, 시간, 노력을 투입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 탈도 날 것이다.
이렇게 접종하느라 필수 서비스에는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많은 보건소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아직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백신 접종을 책임져야 하니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럴 것이다.
“코로나19 대응 기간 중 지역사회 감염 확산 방지 업무를 강화하고자 보건소 일반진료 업무 등을 잠정 중단하오니 주민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지역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백신 접종 때문에 보건소 업무는 더 늘어날 것이 틀림없다. 여러 형식으로 민간에 업무를 맡긴 경우도 이미 많은 일이 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고 있던 방역 업무를 중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금방 한계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백신 접종에 참여하는 민간 의료기관도 시설, 인력, 시간 등의 재조정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문제는 구조 바꾸기는 늦었고 임시방편이 대부분이라는 점. 인력만 하더라도 새로 누구를 채용할 리는 만무하고, 있던 인력을 옮겨 채울 것이 뻔하다.
이렇게 백신과 백신 접종에 쏠리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면, 다시 문제는 다른 ‘필수’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방역 업무를 ‘차출’된 보건지소의 공중보건의, 보건진료 전담공무원(과거의 보건진료원), 다른 업무를 하던 공무원이 부지기수다. 이들이 맡았던 업무, 책임지던 일, 제공하던 서비스는 어떻게 되는가?
안타깝게도 지금은 지난 한 해 그런 일이 있었던 결과나 파급 효과도 잘 모른다. 보건소나 보건진료소 같은 보건기관이 일반진료를 중단했으면 그곳을 이용하던 환자는 어디로 갔을까 또는 어떻게 되었을까? 돌봄, 복지 서비스, 예방 조치와 서비스들은 그냥 그렇게 놔둬도 상관없는 것일까. 홈리스 지원, 가정 폭력과 자살 예방사업, 장애인 돌봄, 방문보건은?
보건소와 보건기관만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떤 민간 병원이 백신접종 센터의 위탁 운영을 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센터에서 일할 의사와 간호사 등을 확보해야 할 텐데, 여전히(!) ‘차출’로 해결하겠다고 하면 그 병원이 하던 일, 필수 서비스의 질, 노동 강도는 지장을 받고 나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대응의 궁극적 목적이 생명과 안전, 건강이라면, 세계보건기구의 권고대로 필수 서비스를 유지하는 것 또한 방역의 필수, 핵심요소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이 패러다임을 거듭 강조하는바, 가장 먼저 필수 서비스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유지, 강화해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는 상황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워 기본을 유지하도록 리더와 기획자가 책임을 다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부터 최일선 공공, 민간기관까지 모두 원리는 다르지 않다.
백신 접종과 필수 서비스 유지를 동시에 ‘제도화’하는 데 필요한 사항은 딱 한 가지만 당부한다. 여러 보건의료 인력에 더 많은 노동과 노력을 강요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더 사람을 구하고, 지원하며, 더 많이 비용을 써야 한다는 것. 당연히 정부가 일차 책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