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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대비/대응체계, 다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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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언덕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만약 제2의 코로나가 발생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지만, 이 끔찍한 사태의 현실 가능성마저 외면할 수 없다.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고투하고 있는 와중에도 ‘신종감염병 대비역량 강화’가 국제사회의 핵심과제로 제기되는 이유다. 유엔은 12월 27일을 ‘세계 유행병 대비의 날’로 선언했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국가 정상들은 미래에 닥쳐올 팬데믹을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조약을 만들자는 공동 기고문을 발표하기도 했다(☞기사 바로가기: 대통령 팬데믹 대응 위한 새 국제조약 마련해야). 국내적으로도 지난해 정부는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키면서 감염병 대응체계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감염병 ‘대비(Preparedness)’에 있어서만큼 과유불급은 없다. 관건은 가장 신뢰할 만한 ‘감염병 대비/대응체계’를 개발하고 구축하는 일이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끊임없이 다양한 신종감염병이 출현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위기감은 절대로 적지 않았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연구역량이 국제보건안보시스템 구축에 동원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막지 못했다. 2019년 국제보건안보지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미국과 영국이 코로나19 대응실패의 대표적 국가들이라는 사실은 기존 방식을 근본에서부터 되짚어 봐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성공적 방역 국가로 평가받는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제적 곤궁과 파탄이라는 후과를 남겼다. 그렇지만 언제 다시 큰 유행의 파도가 들이쳐서 방역시스템을 붕괴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방역의 고삐를 섣불리 풀기도 어렵다. 감염병 확산에 따른 건강상의 피해와 방역에 따른 사회경제적 피해라는 딜레마를 헤쳐나가기 위한 ‘지속가능한 방역시스템’이 시급한 과제로 요청되고 있는 시점이다. 계속해서 특정 직역, 특정 집단의 일방적 희생이 강요된다면 방역 당국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기 힘들고, 이는 자칫 국가방역체계의 무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

 

효과적인 감염병 대비·대응체계란, 흔히 이해하듯 역학과 의과학의 지식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과학적 예측에 기반한 방역정책을 수립하더라도 국민 다수가 믿고 따를 수 있을 때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데 필요한 사회과학적 지식과 기술 역시 감염병 대비/대응체계의 필수 요소로 포함되어야 한다. 최근 국제학술지 <비판적 공중보건(Critical Public Health)>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기존 감염병 대비·대응체계의 한계를 지적하고 대안적 접근의 필요성을 주장한 논문이 실렸다(☞논문 바로가기: 감염병 대비를 다시 생각하기: 불확실성과 지식의 정치).

 

연구진은 2016년 에볼라 발병을 계기로 구성된 ‘미래를 위한 세계 건강위험 프레임워크 위원회(GHRF)’가 내놓은 제안을 기존 ‘주류’ 접근법으로 소개한다. 이는 중앙집중적 계획과 역학적 모델링, 예측감시시스템, 빅데이터 기술, 신속대응팀, 약물/백신 연구개발과 비축, 구매협상, 그리고 보건의료시스템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코로나19 대응실패는 우리에게 그러한 접근법이 팬데믹 상황 속에서 교차하는 불확실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회, 정치, 문화적 영역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연구진은 주류 접근법의 한계를 살펴보기 위해 ‘불확실성(Incertitude)’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유형으로 구별한다. 결과와 그 발생가능성을 모두 알고 있는 ‘리스크(위험, Risk)’, 결과는 알지만 발생가능성을 모르는 ‘불확실성(Uncertainty)’, 둘 다 모르는 ‘무지(Ignorance)’, 그리고 결과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서로 엇갈리는 ‘모호성(Ambiguity)’이 그것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을 세분화해서 이해하면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질병 다이내믹스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좀 더 풍부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어서 연구진은 에볼라, 니파, 콜레라, 코로나19 감염병 사례에서 이러한 불확실성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대비/대응 계획들이 어떻게 전개(또는 실패)되는지 고찰한다.

 

사례 1: 에볼라

 

에볼라는 코로나19 이전까지 글로벌 팬데믹을 대표하는 질병이었다. 높은 치명률을 가진 이 바이러스성 출혈열이 1976년 콩고에서 처음 나타난 이래 아프리카에서 여러 차례 소규모 발병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감염병의 확산·감시·격리·통제·사체 매장·추적 등 역학적 모델링에 기반한 접근법을 통해 관리되었다. 1995년 콩고 키크위트에서 대규모로 발병했을 때도 콩고 정부는 기존 접근법을 강화하면서 ‘핫스팟(대규모 발병지역)’을 예측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대비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3~2016년 서아프리카에서의 대규모 발병은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의 깊은 불확실성과 모호성을 드러냈다. 수많은 사망자를 낸 에볼라는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의 인구가 밀집되고 유동성이 높은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그리고 수십 년간 갈등과 불신으로 보건의료체계와 국가-시민 관계가 취약해진 환경 속에서 빠르게 확산하였다. 에볼라의 치명률이 높아 대규모 발병이 될 수 없다고 가정하며 유행의 사회적 여건을 무시하였던 판단은 현명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2014년에 뒤늦게 국제공중보건위기로 선언되었지만, 후속 모델링 결과 수백만 명의 사망자가 예측될 정도로 이미 통제를 벗어난 상태였다. 그러나 역학 모델의 선형적 가정과 예측은 바이러스 전파의 ‘위험요인’으로 쉽게 포함하기 어려운, 지역의 부족적 특성과 복잡하게 얽힌 도시-시골의 거래 양상들과 정합하지 않았다. 역학 모델은 또한 마을주민과 일선 실무자의 학습능력을 과소추정하였다. 이들은 함께 감염병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면서 장례, 방문, 돌봄 관습들을 변용하였고, 그 결과 다행히도 끔찍한 모델링 예측은 실현되지 않았다.

 

모호성은 에볼라에 관한 이해에서 등장했다. 일부 지역주민들은 질병을 정치적 통제, 집단학살 또는 토지강탈을 위한 외국과 정부의 거짓말로 간주하며 폭력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러한 두려움과 불신은 구조적 불평등과 강압적 외세의 개입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생의학적 감염통제를 위한 ‘안전사체매장’ 방식은 지역주민들이 가진 사회적이고 생태적으로 통합된 건강과 돌봄에 대한 이해와 충돌했다. 또한, 국가 방역은 감염통제와 생계필요의 우선순위 간의 모호함을 노출했다.

 

이 사태를 통해 ‘배운 교훈들’은 여러 국제학술지에 보고되었다. 비록 커뮤니티에 대한 참여가 좀 더 강조되긴 했지만, 대부분 백신 개발에 초점을 맞추며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내용이었다. 갱신된 계획들은 2018~2020년 북키부에서 또다시 에볼라가 발병했을 때 적용되었지만, 오래된 복합적 갈등의 현장에서 단지 ‘커뮤니티 참여’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수한 사회적, 정치적 불확실성에 부딪혔다.

 

무장그룹이 에볼라 치료센터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방역보다 물리적 안전에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부실한 보건의료시스템 하에서 왜 에볼라가 다른 보건 이슈보다 우선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주민들의 역사적, 정치적 주변화는 정부 불신과 에볼라에 관한 음모론을 생산했다. 이러한 공포와 불신은 불순응으로 이어지며 감염자추적과 백신접종을 방해했다. 질병이 신체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과 체액 내 바이러스 잔류 기간, 그에 따른 성적 전파 확률 등은 여전히 무지의 영역에 있다. 또한, 최초 확진자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발병의 기원 서사를 둘러싸고 주민과 전문가 간 엇갈리는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무지, 모호성으로 인해 로컬 정치와 감염병 대응 간의 역동적 관계가 전개되었다.

 

사례 2: 니파

 

1998년 말레이시아에서 출현한 니파 바이러스는 역학조사 결과 박쥐에 의해 감염된 돼지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5년까지 방글라데시, 인도, 필리핀의 여러 지역에서 저마다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인 17번의 추가 발병이 있었다.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니파 바이러스의 유일한 예측 가능한 특성으로 보일 정도로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발병이 지속되었다. 복잡한 전파경로는 정확한 예측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국제 과학계는 활발한 감시와 대비 시스템, 그리고 궁극적 ‘특효약’으로서 백신 개발과 저렴한 비용의 진단, 최첨단 치료법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반면 기본적 위생 실패로 인한 원내감염과 의료자원 부족 등의 보건의료시스템 한계나 취약한 도시 환경 문제는 쉽게 간과되고 있다.

 

사례 3: 콜레라

 

콜레라 발병은 분명 예측가능하고 예방가능하며 치료가능하지만, 수많은 불확실성이 결합되어 있다. 콜레라에 대한 리스크 기반 모델은 감시와 검사, 신속대응팀 배치, 치료센터 구축, 경구수액키트와 콜레라 백신의 비축과 공급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전쟁과 갈등, 열악한 기반시설과 보건의료서비스는 콜레라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2010년 아이티에서는 대규모 지진에 뒤따라 콜레라가 발생하여 이재민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발병 기원에 관한 온갖 소문과 음모가 횡행했다. 결국, 유전자 검사를 통해 무증상의 네팔 유엔평화군 군인에 의해 균이 들어온 것으로 증명되었지만, 그전까지 그 모호성은 큰 혼란을 초래했다. 아이티 사람들은 콜레라를 외국 권력에 의한 주변화와 착취를 반영하는 재앙으로 인식하며 방역에 저항했다. 그들에게 콜레라는 저개발과 구조적 취약성이라는 ‘감춰진 아픔’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문제는 감염병 대비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6년 예멘은 극렬한 전쟁 와중에 대규모의 콜레라 발병으로 고통받았다. 치료센터와 경구수액 진료소는 군데군데 설치되었고 부문 간 협력도 형편없었다. 반란군 점령지역은 외부원조를 받지 못한 채 콜레라 발병률이 치솟았다. 서방의 후원을 받은 사우디 군대의 폭격이 이루어지는 지역의 거주민이 가장 취약하였다. 이처럼 국제적 지리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불확실성은 방역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콜레라는 불평등에 뿌리를 둔, 시민과 국가 또는 의료전문가 간의 대립을 양산하는 ‘정치적’ 질병이었지만, 기술적 위험관리에 초점을 맞춘 대비 계획에는 결코 그러한 정치적 이슈가 포함되지 않았다.

 

사례 4: 코로나19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 감염병의 전파와 신체적 영향에 관련된 많은 측면에서 무지하다. 호흡기 전파가 주요 전파 메커니즘으로 인정되지만, 공기매개나 비말 전파의 상대적 비중은 논쟁적이다. 전파의 계절성뿐 아니라 무증상 전파, 면역반응, 재감염, 유전자 소인의 역할 모두 불확실성과 무지를 드러내는 예들이다. 신체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 또한 불명확하다.

 

영국은 이 새로운 바이러스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과학적 설명을 받아들이기보다 기존의 리스크 기반 역학적 모델링을 중심으로 한 협소한 의미의 과학을 따라갔다. 물론 재생산지수와 같이 확산을 예측하는 역학적 모델링은 의료시스템이 마비되지 않도록 사회적 거리두기와 격리 정책을 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록다운, 이동제한, 거리두기 등은 막대한 경제적 손해를 끼쳤고, 그 영향은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 계급, 인종, 연령, 직업 등 사회경제적 차이는 단순 리스크 모델을 교란하면서 바이러스 노출, 중증도, 사망률 등에서 차별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또한 코로나19의 장기적 동학을 알지 못한다. 백신 등장은 특효책으로서의 기술적 해법의 반전을 의미했지만, 향후 언제, 어떻게 풍토병으로 전환될지 질문은 남아있다. 바이러스 변이, 그리고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을 달성하지 못한 국가들로부터 사람들의 이동 역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그동안 감염병 대비 노력은 불확실성과 모호성, 무지를 관리가능하고 계산가능한 리스크 수준으로 축소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리스크에 초점을 맞춘 전략들은 중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다른 중요한 고려사항이 간과되기 때문이다. 위 사례들에서 사회정치적 맥락, 병원체, 사람들의 다양성이 어떻게 발병을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끄는지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장기화된 불평등과 구조적 폭력의 오래된 역사는 표준화된 계획과 프로토콜을 무력하게 만드는 불확실성의 원천이다. 모호성은 발병의 기원과 의미를 둘러싼 지식, 해석, 가치의 경합 과정에서, 또 감염병 대응과 다른 보건학적 문제, 생계의 우선순위 간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하며 변화한다.

 

연구진은 사례검토를 토대로 감염병 대비에 적용할 수 있는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기존의 전문가 주도의 중앙집중적 방식에서 자주 제외되었던, 실제 현장과 사회문화적 맥락에 기반을 둔 대안적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비를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다양한 지식에 대한 개방성, 즉 모델링과 현장대응에 참여하는 주체들 간 학습 과정에서의 지식생산의 민주화를 의미한다.

 

두 번째, 단절적이고 확정된 리스크 기반 계산을 통해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전망을 포기해야 한다. 대신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중첩되고 연결되는 일상적 경험과 실천들에 맞게 대비/대응 시스템을 조율해야 한다.

 

세 번째, 획일적(관료적)인 하향식 관리가 아니라 지역 의료기관과 시민사회와의 신뢰와 연대를 구축하면서 유연하게 불확실성에 대응해야 한다.

 

네 번째, 새로운 감염병 대비의 윤리로서, 개입이 이뤄지는 환경에 내재된 역사적, 구조적 불평등과 부정의를 인정해야 한다. 개방적이고 투명한 숙고를 통해 이러한 사회적, 도덕적 의무와 방역 간의 어려운 균형을 잡아야 한다.

 

결론으로 연구진은 리스크 예측과 관리 위주의 통제지향적 해법에만 의존하던 기존 접근법의 한계를 인정하고 역동적인 사회, 문화, 정치적 과정으로서 감염병 대비/대응을 생각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이 제안에 동감하더라도 실제 적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고차방정식 문제를 단순화하고픈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서는 좁은 과학에만 의존하는 관성에서 벗어나, 복잡한 문제를 복잡한 채로 다루려는 과학적, 지성적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방역체계’를 만드는 힘 아닐까?

 

*서지 정보

Melissa Leach, Hayley MacGregor, Santiago Ripoll, Ian Scoones & Annie Wilkinson (2021). Rethinking disease preparedness: incertitude and the politics of knowledge, Critical Public Health, DOI: 10.1080/09581596.2021.188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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