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와 같이 사람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문구를 자주 마주친다. 감염병이 유행하면 방역에는 많은 사람들의 오랜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떠올려보자. 이러한 방역 조치는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힘을 들여야 효과적이지만, 그 과정이 불편하고 번거로워서 사람들에게 장기적으로 한결같은 지지를 받기 어렵다. 따라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중 하나의 전략으로 특정 인구집단이 감염위험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연대를 촉구하는 방법을 쓸 수 있다.
그런데, 특정 인구집단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과연 그 자체로 좋은 선택일까? 지난 3월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게재된 하렐과 리버만 연구팀의 논문은 차별을 집중 조명하는 공중보건전략이 갖는 잠재적인 부작용을 다루었다(논문 바로가기 : 인종기반 건강 격차에 대한 정보가 정책선호에 미치는 영향: 미국에서 코로나19 판데믹에 대한 조사실험에서 얻은 근거). 연구진은 인종 차별이 상존한다고 여겨지는 미국 사회에서 감염병으로 인한 백인-흑인 인종간 사망불평등이 있음을 알렸을 때, 응답자의 특성에 따라 반응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사했다. 같은 정보를 듣더라도 두 가지 상반된 효과가 일어날 것을 염두에 두고 연구를 설계했다. 하나는 인종 차별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사회의 위험에 대한 논의를 일으켜 사람들의 연대를 촉진하게 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응답자에게 응답자가 인지하는 질병의 위험성, 정부 정책의 지지도, 방역 정책의 강도, 자유가 침해되는 정도, 코로나19 피해 회복을 위한 복지의 필요성을 질문했다. 또한, 이 다섯 가지 항목의 설문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전 정보를 제공하거나 사전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에게 “백인과 아시아인, 그리고 히스패닉의 코로나19 사망률은 대체로 차이가 적거나 비슷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흑인의 사망률은 백인의 2.5배다”라는 문구와 함께 이를 시각화한 막대그래프를 보여주거나, 코로나19로 인한 미국 평균 사망률을 제시하고 “백인, 아시안, 히스패닉, 흑인의 사망률을 예측해보라”는 질문을 했다. 연구진은 주된 설문 이전에 앞서 두 종류의 사전 정보나 질문을 전달했는지 여부에 따라 응답자를 네 그룹으로 나누고, 사전 대화 여부가 설문 결과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설문 결과 응답자의 35%가 수집한 데이터의 표준편차 크기의 오차 범위 내로 백인과 흑인의 사망률 차이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했으며, 나머지 65%의 사람들은 사망률 차이를 과소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측한 사망률의 크기는 인종에 따라 달랐으며 백인 집단은 흑인에 대한 친밀감의 크기가 클수록 예측한 사망률의 격차 또한 컸다. 흑인 응답자는 백인 응답자보다 사망률 차이의 크기를 평균 8% 더 크게 예측했으며, 흑인 응답자는 53%, 백인 응답자는 66%가 사망률 차이를 과소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률 격차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면 설문 결과가 달라질까? 자신의 인종과 다른 인종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정보 제공의 효과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흑인 응답자들 중 사망률 차이를 과소평가한 집단의 질병에 대한 위험 인식은 증가되었고, 백인 응답자들 중 흑인들에게 호의적이라고 응답한 집단이 보다 강력한 방역 정책을 지지했다. 하지만 백인 응답자들 중 흑인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집단에게 같은 정보를 공개했을 때는 스스로에게 위험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커지고, 강력한 방역 정책을 지지하는 정도가 감소되었다. 또한, 응답자에게 사전 정보 제공없이 사망률을 예측해보도록 하여 불평등에 관한 인식을 측정하는 것은 설문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연구진은 같은 정보라도 사람마다 상당히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고, 개인들의 해석의 방향은 인구사회적 특성과 관련이 있음을 밝혔다. 또한, 정치적 성향과 인종으로 양극화된 미국 사회에서 인종간 불평등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 일은 그 자체로 큰 도전임을 보였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취약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위협을 인지했을 때 건강에 관한 권고사항을 준수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런 집단에게 집중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활동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에게 특정 인구집단이 겪는 불평등을 알리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원인을 찾고 고쳐서, 불평등한 현 상태를 바꾸는 번거로운 과정에 더 많이 동참시키려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오늘 살펴본 연구는 특정 인구집단의 불평등한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이것이 여전히 ‘남 일’로 인식될 수 있음을 보였다. 이런 결과를 감안하면 우리는 결과적 불평등을 알리는 것을 넘어서서, 정보 전달에 있어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섬세한 전략을 준비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연구진은 공유된 위험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 ‘우리’와 ‘그들’을 가르고 서로 다른 비용과 편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성공적인 보건정책 실행에 필요한 연대를 고갈시킨다고 보았다. 당장 시시각각 접하는 ‘확진자’, ‘집단 확진’과 같은 일련의 단어들이 많은 사람에게 ‘남 일’이 아닐 수 있도록 고민하고 정제되어 공개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지금, 질병과 불건강이 ‘남의 불평등’으로 여겨지지 않게 하는 말과 글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서지정보
Harell, A., & Lieberman, E. (2021). How information about race-based health disparities affects policy preferences: Evidence from a survey experiment about the COVID-19 pandemic in the United States. Social Science & Medicine, 11388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