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백신 민족주의’를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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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지나간 토요일,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백신을 추가 확보했다고 밝혔다. 정부 발표를 따르면 이제 한국은 모두 합해 약 9,900만 명분(1억 9,200만 회분)의 백신을 들여올 수 있다. 집단면역 형성에 필요하다는 3,600만 명을 기준으로 하면 2.75배(!) 물량에 해당한다. 이 정도면 한 가지 불안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그래도 백신 정치는 아직 결판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내는 듯하나, 언론은 계획대로 들어오는지 지켜봐야 한다면서 압박을 풀지 않는 모양새다. 다들 불확실성이 크다는 사실을 뻔히 알 텐데, 백 퍼센트 확실한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 정치인가 싶다.

 

이와 함께 단순하지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해야 한다. 막 확보했다는 그 화이자 백신 2000만 명분은 어디서 왔을까? 무슨 분양 아파트도 아닌데 ‘기업 소유분’을 내놓은 것은 아닐 터, 배분해야 할 우선순위를 바꾸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결과이다. 지금 백신은 세계적으로 정해진 파이를 나누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을 하는 중이 아닌가.

 

그 어느 나라도 ‘백신 민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니, 한국도 국가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와 경쟁하고 이기는 것이 당연한 행동 원리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나라 어떤 정권도 국내 정치의 압력을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백신 최강국(!) 미국이 앞장서 ‘각국(國)도생’을 부추기는 형편이다(☞관련 기사 바로보기1, 바로보기2).

 

환호하고 그 성과를 칭찬해야 할까? 현실을 이해하면서도 그 ‘확보’가 못내 찜찜하고 우울한 것은 인류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공감각과 그를 지탱하는 윤리 의식 때문일 것이다. 모든 나라에서 해결되기 전에는 팬데믹이 끝나지 않으며 우리의 정치·경제적 이익이 또한 그들의 생명과 안전에 연결된다는 지식도 영향을 미치리라.

 

이 막다른 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백신의 국제 정치를 모르지 않음에도, 국내에서는 탁상공론 또는 말뿐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음에도(어떤 이들은 ‘위선’이라 할지도 모른다), 결과로는 거의 영향을 미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다시 백신의 글로벌 정의를 주장하려 한다.

 

구체적 내용은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4월 5일 <논평>을 그대로 되풀이해야 하나, 길게 말하기보다 여기서는 결론 부분만 옮긴다. 전체 논지는 해당 글을 봐주시기 바란다(☞논평 바로보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간접적으로 국가와 정부에 촉구하고 떠미는 일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2월 말에 발표한 요구 안 중 몇 가지를 강조한다(☞성명 바로보기).

 

1) 코로나19 백신의 공급량을 최대로 늘리기 위해 코로나19와 관련된 의료제품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을 일시 유예하자는 제안에 찬성을 요구합니다.

 

2) 전 세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개발한 백신 및 치료제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WHO의 기술접근 풀(C-TAP)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요구합니다.

 

3) 백신 생산을 최대화해야 합니다. 국내 위탁 생산시설의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한 노력에 정부의 지원을 최대한 확대하도록 요구합니다.

 

공허한 주장이 아니라 현실론임을 다시 강조한다. 특히 글로벌 정의와 한국 사정이 같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백신과 관련 지식을 세계적인 ‘공유재(common good)’로 바꾸는 것이 그 어떤 대안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윤리이며 도덕이다. 무수한 생명이 스러지고 손상되는 마당에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는 상황은 말이 안 된다. 이미 글로벌 정의라는 가치를 말하는 것은 충분하다. 문제는 정치와 경제, 그러나 그것 또한 만고불변도 신성불가침도 아니다.

 

국제적, 국가 간 논의구조를 회복하는 것도 한 가지 길이지만, 때로 지식과 여론을 통한 방법도 국제 정치경제의 철옹성을 허물 수 있다. 여러 나라의 영향력 있는 정치인과 학자들이 나서서 국제적 공론을 조성하는 것이 마중물이 되기를 희망한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욕심을 내자면 한국이 조금 더 나갔으면 좋겠다. 첫째, ‘선진국’을 따라가기보다 앞장서 글로벌 정의를 주창하고, 둘째, 우리보다 더 급한 나라 사람들이 백신을 가질 수 있도록 직접 지원하거나 재정을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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