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 백신’만’으로 지금의 상황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지만, 현재의 고통을 벗어나는데 백신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란 점은 사실이다. 특히, 집단면역 달성은 단순하게 전 국민의 70%가 접종을 완료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관련기사), 백신 접종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전 세계인이 백신의 임상시험 과정을 지켜보고, 백신의 효과가 몇 %인지 비교하며, 부작용 소식에 관심을 나타낸다. 일부에서는 과학기술의 성과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음모론을 생산하지만, 대부분은 간절한 희망을 걸고 있다.
이 분위기는 하나의 큰 믿음에 기초한다. 백신의 연구개발 과정은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한 의약품 승인 과정 역시 합리적이며 객관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이 믿음은 대체로 옳다. 대부분의 연구개발 과정과 의약품 승인 과정은 과학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에 목격한 몇 장면은 이러한 믿음에 우려를 품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말라리아 치료제의 치료 효과를 두고 미국의 의약품 규제당국(FDA, 이후 미식약청)과 다른 국가들(한국 포함)의 의견은 달랐다. 또한 옥스퍼드대학과 아스트라제네카社가 공동 개발한 ‘코비드-19 백신 아스트라제네카’는 작년 12월 30일 영국에서 최초로 긴급 사용이 승인되었고, 올해 1월 29일 유럽 의약품청(EMA)과 2월 10일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 미식약청의 승인 소식은 없다.
이와 같은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다음에 소개하는 최근 연구에서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국제학술지 <국제 보건서비스 저널>의 최신호에서는 미국과 유럽, 캐나다 3국의 의약품 승인 과정에 대한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바로 가기 : 코로나19 시대의 규제당국, 핵심 임상시험, 의약품규제) 이 연구는 신약 승인의 결정적 근거가 되는 핵심 임상시험(Pivotal trials,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 ‘의약품안전나라’ 중 ‘임상시험의 종류’ 참고)의 결과해석과 승인 의사 결정 과정의 차이를 국가별로 살펴보았다. 미 식약청, 유럽 의약품청, 캐나다 보건부는 핵심 임상시험에 대한 정의와 해석방법,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부 차이가 있었다.
첫째, 이론적으로 규제당국의 핵심 임상시험에 대한 위치 혹은 이해관계는 중립적이어야 한다. 이에 반해 제약회사의 입장은 다르다. 제약회사가 핵심 임상시험을 설계하고 수행하는 경우, 제약회사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A라는 코로나19 치료제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사망률 감소를 목표할 것인지, 바이러스 수치의 감소 혹은 증상지속기간 감소를 목표할 것인지에 따라 임상시험의 성패는 다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제약회사가 핵심임상시험의 설계를 결정하지만, 결정을 하기 전 대부분 규제당국과 사전협의를 진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규제당국은 결과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임상시험 설계 과정에 개입하고 있다. 한국 식약처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코로나19 관련 의학기술개발 과정에는 더 적극적으로 핵심임상시험 설계 지원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뉴시스> 4월 12일 자 ‘국산 백신 올 하반기 임상 3상 진입…5개 기업에 687억+α 지원 검토‘) 물론, 정부가 세금으로 연구개발을 촉진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규제당국은 심사·승인을 담당하고, 연구개발 장려 활동은 다른 부처가 담당하는 것이 이해관계에서는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둘째, 임상시험의 결과– 치료효과– 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연구는 사라지고 없다. 임상시험의 결과가 부정적이더라도 그 결과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연구설계가 잘못되어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한, 2개 이상의 핵심 임상시험 결과가 상반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약회사가 규제당국에 제출하는 핵심 임상시험의 결과는 대부분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하는 사례이다. 1987년부터 2004년까지 미 식약청에 제출된 핵심 임상시험 결과 중 단 12사례에서만 부정적 효과를 보고했다. 규제당국에서 다양한 관점– 임상시험 결과가 좋든 나쁘든–으로 심사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핵심 임상시험 결과의 불확성을 다루는 방식은 국가마다 다르다. 항암제 신약 허가 과정에 대한 미식약처와 유럽의약품청의 차이를 분석한 한 연구에서, 두 규제당국이 신약으로 인한 위험과 효과의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식은 달랐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미식약청은 항암제의 빠른 치료 적용 위해 다소 근거가 부족한 연구도 쉽게 승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규제당국이 같은 방향의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다. 결국 임상시험의 결과 해석에는 어느 정도 유동성이 있고, 그 결과 사회별로 동일한 임상시험의 결과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이 대중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 필요하다. 높은 투명성이 이 유동적 의사결정 과정에 더 객관적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시민이 과학기술의 연구개발 과정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엄중하고 객관적 잣대로 새로운 치료제의 효과를 검증해야 할 규제당국은 이미 핵심 임상시험 설계 과정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다. 이미 오래된 관행이기 때문에 익숙함이 주는 무비판을 그냥 방치해야 할까?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규제당국인 식약처의 위치와 이해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까지 2가지 코로나19 치료제가 식약처의 심사대상이 되기도 했다. 두 가지 치료제의 제약회사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모두 코로나19 치료에 탁월한 효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하나는 항체 치료제로 식약처의 문턱을 넘었고, 다른 하나는 췌장염 치료제로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항체 치료제의 핵심 임상시험 설계에서 경증과 중등증 환자를 대상으로 두 가지를 목표했다. 첫째는 바이러스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전환되기까지의 시간 단축이고, 두 번째는 임상적 회복에 걸리는 시간 단축이었다. 첫째 목표는 달성에 실패했고, 둘째 목표는 성공했다. 절반의 성공이었으나 식약처는 이를 효과가 검증된 것으로 판단했다. 췌장염 치료제의 핵심 임상시험 설계는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가지를 목표했다. 그 목표는 28일 이내에 임상적 회복에 걸리는 시간의 단축이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일부 집단(조기경고점수가 높은 고위험군)에서는 효과가 나타났지만, 그것이 핵심 임상시험 설계의 1차 목표는 아니었다.
두 사례에서 규제당국의 위치·이해관계는 평가하기 쉽지 않다. 엄정한 잣대로 바라보자면 두 임상시험 모두 모든 일차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항체 치료제의 두 가지 목표 중 첫 번째는 실제 달성이 쉽지 않은 것이었고, 과학적으로도 치료제의 효능을 평가하기에 적절한 기준인지 논란이 있다. 그렇다면, 핵심 임상시험 설계 자체의 문제로 부정적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 책임 – 연구설계에서 일차목표 설정의 책임 – 은 제약회사에게만 있는 것일지, 규제당국과의 사전협의의 결과물일지 알려진 바 없다. 만일, 사전협의의 산물이라면, 규제당국의 최종 판단에 이 사전협의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도 생각할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임상시험 수행 과정에서 정부 지원의 차이도 논란이 된 적 있다.(☞ 관련 기사 : <조선일보> 2020년 12월 2일 자 ‘셀트리온 두달만에 코로나 치료제 임상 2상 매듭… 종근당·크리스탈지노믹스 반년째 국내 피험자 ‘0’‘) 규제당국이 아닌 연구지원 부처(질병관리청)는 이 치료제의 공동특허권자이기도 하다.(출원번호 10-2020-0034747/10-2020-0035291)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연구개발과 의약품 승인 과정은 대부분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다. 하지만, 일부의 사례에서 그 객관성과 중립성은 흐려지거나 판단에서 모호함이 확인되곤 한다. 특히, 규제당국의 위치와 이해관계도 연구설계와 의약품 승인 과정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쩌면, 어느 사회에서나 과학기술의 본질적 속성이 그러한 것일 수 있다. 이 연구는 결론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을 더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제안한다. 과학기술과 연구개발 과정에 일정 정도의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다면, 투명성은 그 과정을 보다 공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서지사항
– Joel Lexchin, Janice Graham, Matthew Herder, Tom Jefferson, Trudo Lemmens (2020). Regulators, Pivotal Clinical Trials, and Drug Regulation in the Age of COVID-19.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Volume: 51 issue: 1, page(s): 5-13
[참고]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 ‘의약품안전나라’ 중 ‘임상시험의 종류’
“임상시험의 종류에는 임상시험 목적에 따른 분류로 임상 약리시험, 치료적 탐색 임상시험, 치료적 확정 임상시험, 치료적 사용 임상시험이 있고 임상시험 실시시간에 따른 부류로 제1상 임상시험, 제2상 임상시험, 제3상 임상시험, 제4상 임상시험이 있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