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코로나19 백신의 지식재산권 유예를 지지하기로 했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때늦은 감이 있으나 우리는 백신 생산과 특허에 주도권을 쥔 미국의 결정을 지지하고 환영한다. 아직 망설이는 많은 나라가 흐름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때 늦은’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진작 이렇게 결정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해당 제약사들이 이제 와 기술 이전과 생산 설비, 원재료 등을 핑계로 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른 조치가 없으면 저소득국가는 2023년이 되어서야 백신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관련 기사 바로보기). 설사 제약사들이 주장하는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인류 모두를 위한 다른 방법이 있는가? 시기를 조금이라도 앞당기려면 지금부터라도(!) 그들이 나서야 한다.
물론, 갈 길은 멀다.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지식재산권 유예를 반대하는 것이 첫 걸림돌이다.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난다 해도 실제 생산과 공급을 늘리는 데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저 어느 나라, 그중에서도 외딴곳에 사는 이까지 백신이 돌아가려면 또 얼마나 큰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인가.
그래도 우리는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세계에 대한 도덕적 의무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관련 기사 바로보기), 백신을 둘러싼 글로벌 정치경제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큰 힘이 없어 보이던 도덕적 압력이 경제적 이익에 타격을 가하는 ‘역사적’ 사건임이 분명하다(실제 그 힘이 작용했는지와 무관하게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라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글로벌 흐름과 비교하면 국내의 이해와 태도는 아쉬운 점이 많다. 먼저 지적할 것은 그동안 지식재산권 유예에 동참하라는 압력을 받아온 한국 정부가 미국의 태도가 바뀐 후에도 계속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자리를 목표로 국제적 ‘무역 질서’를 논하던 국가가 취할 바는 아니지 않을까?
국내 언론의 관심은 더 ‘우리 중심’이다. 미국이 결정한 후 한국 언론이 보인 태도는 기사의 제목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생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백신 보릿고개 풀릴까“, 국내 보급까지는 상당한 시일 걸릴 듯” 등 국내용 관심 일변도다. 이런 시각은 우리의 책임에 무감각하게 한다.
국내 경제, 기업, 이익을 앞에 놓는 것도,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는 하나 전혀 편하지 않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경제지 기사의 논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보호 유예가 확정되면 국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업체들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기업들에는 큰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에 CMO 생산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데다 다년간 경험을 쌓은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이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우연이 아니라 체제적이다. 일부 언론이 뽑은 제목(mRNA 원천기술 가진 독일…”특허는 기업 혁신의 핵심”)이나 기사 내용은 ‘경제’가 팬데믹의 고통을 압도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은 도대체 어디에 관심을 두는가?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업체가 다수이며 지식재산권 보호 유예가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되기에 섣불리 입장을 밝히기 어려운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업체에 대한 지원은 지식재산권 보호 유예 논의와 관계없이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정세’가 바뀌는 중이니,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전가의 보도 ‘국익’ 관점에서도 한국이 새로운 역할을 할 때다. 지식재산권 유예를 지지하고 이를 위한 국제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또한, 위탁생산이든 바이오시밀러든, 또는 다른 관련 약품과 물자 그 어느 것이든, 특히 저소득국가의 팬데믹 대응을 최대한 지원하자.
정치경제가 아무리 힘이 세도 그것이 모든 현실은 아니다. 팬데믹과 그 대응에는 국제 사회의 도덕과 규범, 인도주의, 인류의 공존과 공영, 협력과 호혜, 정의와 평등 같은 가치가 끊임없이 힘을 미친다. 세계인권선언의 예에서 보듯 가치가 정치와 경제에 개입할 뿐 아니라 기존 질서를 바꿀 수도 있다.
국제 협력, 공조, 지원, 말이야 무엇이면 어떨까. 거듭 말하지만, 세계가 모두 안전하지 않으면 우리도 안전하지 않은 것이 팬데믹과 대응의 원리다. 인도의 대유행이 한국 교민과 한국의 경제활동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변이 바이러스 등 국내 방역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전 세계와 연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