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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농인의 삶 : 사회가 사람들의 말을 빼앗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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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2015년의 메르스 유행 때와 비교하면 코로나19 유행 시기에는 장애인들의 어려움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편이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많고, 그 문제들은 삶의 고통과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한국 강남대학교 연구진이 국내학술지 <한국장애인복지학>에 발표한 것으로 코로나19로 고통을 겪은 장애인, 그 중에서도 농인들이 겪은 어려움을 보여준다(☞논문 바로가기: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의 농인의 경험).

 

연구진은 연구의 내용을 설명하기에 앞서 농인과 청각장애인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듣는 데 어려움이 없는 청인(聽人)들이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 역시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聾人)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청인의 입장에서 언뜻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차이지만 촌각을 다투는 재난 상황에서는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수도 있을 정도로 큰 차이다. 연구는 2019년 4월 강원도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 사건을 알리는 긴급재난방송에서 자막 방송과 문자 서비스는 제공되었지만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은 사례를 통해 그 차이를 보여준다. 요컨대 외국어를 읽고, 쓰고, 들을 수 있어도 긴급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게, 농인들 역시 긴급한 상황에서 청인들의 언어를 해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 유행 초기에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었다. 청각장애인 단체의 문제 제기,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 성명 등 여러 가지 노력이 이루어진 끝에야 코로나19 유행 상황에 대한 브리핑에 수어통역사가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이 제공되는 것은 진전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코로나 재난방송에서 제공되는 정보만으로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헤쳐나가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 유행은 삶의 여러 면을 바꿔놓았고 그 과정에서 농인들은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연구진은 이런 어려움을 드러내기 위해 5명의 농인을 수어로 면담하고 주제분석방법을 활용하여 분석하였다. 농인들이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중에 일상생활을 하면서 겪게 된 어려움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었는데, 그 세 가지 모두가 의사소통의 단절과 어려움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첫 번째 어려움은 농인과 청인 사이를 매개하는 수어통역이 없이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수어를 모르는 청인들과 의사소통을 하기위해서 농인들은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간단한 의사소통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면서 이런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졌다. 의사소통의 실패는 물건을 사러 가는 등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물론이고 관공서에서까지 반복되었다. 이런 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하기 위해 입 모양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투명 마스크를 사용하는 때도 있었지만, 이런 투명 마스크 역시 김이 서리면서 결국 입 모양을 보는 데에 한계가 있는 데다, 일반 마스크와 비교해 값이 비싸고, 비말의 전파를 막는 마스크 본연의 기능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일상생활에서 쓰기에는 적절하지 못했다. 의사소통에 입 모양을 활용할 수 없으니 음성언어를 문자로 변환해주는(Speech-to-Text)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감염 전파를 막기 위해 가림막이 설치되면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실제로 대면해서 이루어지는 상황만 해도 이렇듯 어려운 일이 가득했는데, 선별진료소를 방문한다거나 가족 중에 자가격리자가 생기는 등의 상황에서 코로나와 관련된 여러 공공서비스가 비대면을 이유로 전화로만 이루어지면서, 농인들은 원래는 혼자 할 수 있었던 일조차도 청인 가족에게 부탁해야 처리할 수 있는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수어통역이 없으면 발생하는 여러 어려움이 수어통역이 제공된다고 해서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정부가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면서 농인들도 코로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제공되는 수어통역의 질이 고르지 못하고 그나마도 수어통역 화면이 전체 화면의 구석에 작게 송출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이후 해당 문제를 지적받은 정부는 브리핑을 수행하는 공무원과 수어통역사가 화면에 동등한 크기로 잡힐 수 있도록 조정하였다). 기존에 제공되던 수어통역 서비스가 사실상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로 수어통역센터에 직접 방문할 수 없게 되면서 영상 전화를 통해 수어통역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수어통역센터는 과중한 업무량에 시달리며 제때 수어통역을 제공할 수 없었고, 농인은 대면통역보다 낮은 품질의 비대면통역을 감내해야 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의료현장에서는 비대면 수어통역의 문제가 더 도드라졌다. 그나마도 선별진료소에서는 수어통역은 물론이고 문자통역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는 대형병원들이 외국인 환자를 받기 위해 다양한 언어를 통역하는 인력을 별도로 채용하고 있는 것과 크게 대조되는 일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역시 청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농인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수어를 통한 대화에서는 시각 정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농인들은 영상전화나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 화면에 계속 집중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농인들은 다른 농인과 의사소통하는 일조차 마음 편하게 하기 어려웠고, 이는 농인으로 살아가는 괴로움을 나누고 서로 지지할 기회를 차단하는 동시에 농인들이 기존의 정보를 재가공하여 생산하는 ‘농인의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수어 공연이나 장애인 관련 예술 행사가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상황 역시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상황에서 농인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심화시켰다.

 

논문이 다루는 이야기들은 한국을 살아가는 농인들의 고통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모든 이들의 고통이기도 하다. 예컨대 한국어나 영어로 능숙하게 의사소통할 수 없었던 사람들 역시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사회를 살아가기 어려웠고, 코로나19로 자가격리되거나 입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추가적인 어려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연구진들이 말하듯 언어는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며, 재난은 사회적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산물이다. 위기와 재난의 시대에 강제로 침묵하게 된 이들이 자신의 언어를 지킬 수 있도록 사회 모두가 애써야 할 때다.

 

* 서지정보

곽정란, 조정환, 정점희, 이기상, 이준우. (2021).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의 농인의 경험. 한국장애인복지학, 51, 265-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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