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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화된 공중보건위기 관리,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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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경(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오랜 지방분권에 대한 요구와 정책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방분권 수준은 아직 양적, 질적으로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보건의료 영역은 국민건강보험을 핵심축으로 하여 더욱 중앙집중적 체계를 지니는데, 이는 공공보건의료, 응급의료, 감염병 관리와 같은 공중보건의 세부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뭘 더 잘 해보려고한들 해볼 수가 없다는 자조. 그 경험이 쌓이다 보면 해보려는 의지와 역량을 키우기 위한 공간에 대한 요구마저도 점차 줄어들기 쉽다. 한편 분권화가 오히려 불평등을 조장할 것이라거나, 지방의 역량이 부족하니 시기상조라는 것과 같은 반대의 의견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오히려 통일된 위계 체계를 통한 리더십을 더 많이 요구하고 명령과 통제 접근이 더 바람직하게 인식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시민건강연구소가 작년에 발간한 ‘인권중심 코로나19 시민백서’에서도 지적한 바, 국가, 전문가, 체계 중심적 대응은 빠른 초기 대응을 가능하게 했을지언정 더 광범위한 사회적 영향력과 불평등을 고려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바로가기). 복잡해진 자연적, 기술적, 사회적 위험은 더 분권화되고 상향식 접근에 기초한 새로운 위기관리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분권화된 위기관리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저 지자체에 책임을 맡기고 알아서 하게 하면 된다는 것일까?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연구진은 연방제 국가인 독일의 사례를 통해 분권화된 공중보건체계에서 판데믹을 이겨내기 위해 협력하는 방법, 협력의 딜레마와 그 극복 가능성을 구조화된 내용분석으로 정리해 <행정이론과 행위>에 발표했다(논문 바로가기: Covid-19 판데믹 시기의 공동 행동: 분절화된 권위의 독일 사례).

 

공동 행동은 특성에 따라 약한 수준부터 ‘조정 – 협동 – 협력’의 개념으로 유형화했다. ‘조정’은 공동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다른 행위자와 행동을 조율하는 것이다. ‘협동’과 ‘협력’은 함께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함께 일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협동이 상대적으로 단기간, 비공식 관계에서 일하기에 참여자에게 부담이 적고 위험이 낮은 반면, 협력은 장기간 관계를 수립하기에 높은 수준의 상호의존성을 형성하고 높은 위험을 공유한다는 차이가 있다. 문제는 죄수의 딜레마나 공유지의 비극과 같이 무임승차를 하거나 공동의 규칙을 버리고 개인행동을 할 동기가 형성되기 쉽다는 것이다. 공중보건 위기관리를 위한 공동 행동을 방해하는 딜레마는 대개 공동 행위자 간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서 기인한다. 연구진은 독일의 분권화된 공중보건체계 속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시도되었음을 보여준다.

 

독일은 16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의회 공화국으로서 독일의 공중보건 행정은 지자체 단위에 있으며, 약 400개의 지역보건당국이 감염관리 업무를 책임진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특정 지역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던 당시 연방정부는 공적 재정을 투입해 PCR 검사법과 검사 키트를 생산하고 보험자와 직접 소통하여 검사를 빠르게 보험급여에 포함시켰다. 유행이 커지기 시작하자 일부 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시작하였고, 다른 주 사이에 조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메르켈 총리는 16개 주의 대표를 소집하고 회의를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조율했다.

 

보건의료 행정체계와 의료기관 사이의 공동행동 차원의 사례로는 중환자 병상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자 가용한 중환자 병상을 두 배로 늘리는 긴급 조치에 연방과 주정부가 함께 동의하고 10일 만에 새로운 법을 통해 공중보건기금의 유동자금을 풀어 추가 병상 확보에 대해 보상함으로써 지역 병원의 협력을 끌어낸 것을 들 수 있다. 연구진은 재정적 부담을 져야하는 개별 병원들의 공익의 딜레마 속에서 초기에는 의료 전문가주의적 사회 규범에 기대었으며 이후에는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협력이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비슷한 차원에서 16개의 개별 주들이 개인 보호구를 가지고 경쟁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연방정부는 연방재난위원회를 통해 개인 보호구를 공동으로 조달하게 했고, 이는 어떤 강제나 개별 조직과 주에 각자의 구매를 막는 방식이 아니었음에도 혼란을 막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는 전문가적 가치와 집단 내 압력 외에도 지역보건당국이 가장 효율적으로 보호구를 생산, 배분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학습을 거쳐 안정화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연방과 주 정부 사이의 공동 행동 차원에서 보면, 유행 초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조율하는 단계는 유행의 억제라는 공동의 목표를 두고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자주 만나 회의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등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구조적 방법을 통해 조정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유행이 한풀 꺾이자 공동 조치를 유지할지, 아니면 경제적 부담이 큰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버리고 정치적 이익을 얻을지의 딜레마를 해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총리와 16개 주는 공통 조치를 버리고 지역의 상황에 맞춘 지역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하기로 동의했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내용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나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단지 제도적 분권화 정도, 수준에 따라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권화된 체계가 재난에 대응하여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주체들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 그 관계에서 발생 가능한 협력과 딜레마는 무엇인지, 그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와 같은 맥락적이고 관계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실천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후적 해석이 아니라 위기 관리의 계획과 실행 단계에서부터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연방 체계가 종종 이러한 유형의 위기관리에 친화적이라고 설명하면서도 모든 연방제 국가가 코로나 위기 대응에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반례로 들며 결국 어떤 분권화 수준에서라도 행위자들 사이를 신뢰와 적절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코로나19 대유행은 백신 접종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앞으로 코로나가 종식되는 순간까지 직면하게 될 여러 차원의 재난 대응과 관리라는 상황이 중앙정부로 하여금 지방 정부와 의료기관, 시민사회를 공동 행동을 위한 중요한 사회적 행위자로 인식하고 관계를 재정립하는 경험으로 축적되길 기대한다. 나아가 공중보건 위기 거버넌스를 넘어 일상의 공중보건, 보건의료 거버넌스에 적용할 수 있는 역량으로 이어지기를 또한 기대한다.

 

*서지정보

Hattke, F., & Martin, H. (2020). Collective action during the Covid-19 pandemic: The case of Germany’s fragmented authority. Administrative Theory & Praxis, 42(4), 61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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