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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와 차별은 재난 이후의 회복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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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시민건강연구소 영펠로우)

 

 

최근 기후위기와 관련되어 전례없던 규모의 홍수, 산불, 폭염 등이 잦아지며 재난 대비 및 대응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재난 이후 회복 과정은 앞으로 재해에 덜 취약한 사회로 바뀌어 나가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때 회복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나 물리적인 복구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재난으로 인해 사회 및 그 구성원의 특성 자체가 변화하는 속에서 재건과 새로운 사회의 형성을 동시에 해나가는 장기적인 과정이다. 또한 회복의 과정은 새롭게 사회에 편입된 이들, 그리고 재난에 대해 서로 다른 취약성과 민감성을 지닌 이들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회복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우선순위를 달리하는 사회적 차별이 재현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오늘 소개할 논문은 국제학술지 <재난위험감축>에 실린 사회적 결속과 배제가 장기적 재난 회복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연구이다 (논문 바로가기 :<재난 이후 회복과 사회문화적 변화 새로운 사회 구조를 위한 사회 자본 개발을 다시 생각하기). 연구가 이루어진 곳은 1995년부터 2010년까지 화산 폭발로 인해 나라 전반이 심각한 피해를 입어온 카리브해의 영국령 몬트세랫(Montserrat) 섬이다. 이 섬은 300년 간 비활동 상태이던 남부의 한 화산이 1995년 처음 크게 폭발하면서 수도 플리머스를 포함해 국가 인프라의 90%가 파괴되는 재앙을 겪었다. 재난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몬트세랫 주민의 3/4이 영국 혹은 카리브해 인근 국가로 해외 이주하였고, 남아있던 주민들도 화산 폭발을 피해 원래 거주하던 남부에서 상대적 저개발 지역인 북부로 이주하였다. 2010년 이후로 심각한 화산 활동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활화산 상태라 위기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지역이다.

 

인구의 75%가 떠나가면서 몬트세랫 정부는 인구 및 경제 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이주노동자 유치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몬트세랫 섬의 인구 구성은 비교적 동질적인 집단에서 다양한 구성원들이 포함된 형태로 급속히 변화하였다. 연구자들은 이런 인적 구성의 변동과 함께 재난 회복 과정의 복잡성이나 새로운 형태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갈등적 요소 등을 살펴봄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 회복의 답을 찾고자 했다. 연구자들은 2015~2017년 사이에 총 9개월 간 몬트세랫 섬에 체류하면서, 문화기술지와 사회 각계각층 130명에 대한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우선 화산폭발이라는 재난 직후 몬트세랫의 상황을 살펴보면, 기존 사회적 관계(혹은 사회적 자본)의 현저한 붕괴라고 할 수 있다. 이웃은 물론 심지어는 가족마저도 해외나 타 지역으로 이주해감으로써 남아있던 주민들은 결속적인 사회적 유대 관계가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겪었다. 그것은 또한 공동체 차원에서 이루어져 오던 행위들, 가령 어린이와 노인에 대한 사회적 돌봄의 수행 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와 더불어 정부의 적극적인 인구 유입 정책으로 이주민의 비중이 커지며 사회적 가치 및 유대에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조건에서 몬트세랫의 문화적 규범과 경제적 안정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사회통합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몬트세랫은 재난회복을 위한 상충되는 목표와 우선순위로 인해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몬트세랫에서 회복을 주도한 주체들, 특히 정부는 스스로가 적극적인 이주민 유입 정책을 통해 사회문화적 변화를 촉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회복의 목표를 ‘과거로 돌아가기’로 설정하면서 이주민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정주민’의 안정과 안전을 강조하는 방식의 복구 정책을 펼친 것이다.

 

우선 심리·문화적 회복 정책으로는 몬트세랫 정주민들의 정체성 강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크리스마스나 성 파트리치오 축일 같은 국가적 축제에서는 재난 이전의 삶의 모습을 재현하거나 재난으로 사라진 마을을 기리는 등 정주민 정체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가득한 반면, 이주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정주민에 대한 우선순위가 높아지면서 이는 사회경제적인 차별 정책으로 이어졌다. 가령 정부는 노동정책에서 정주민 보호를 위해 이들을 우선 고용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로 인해 이주민은 그들의 전문성이나 실력 등에 상관없이 공공부문에 접근이 제한되면서 국적에 따른 노동시장의 분리가 발생하였다. 또 정체성과 결속력 확보의 일환으로 몬트세랫 난민의 귀환을 촉진하는 정책을 폈는데, 반대로 이것은 몬트세랫에 온 이주민들에 대한 노동 허가·비자 갱신·귀화를 엄격히 규정하여 이들이 섬에 계속 사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처럼 이주민들은 몬트세랫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요한 사회 구성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정체성 및 유대 형성의 과정에서 배제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주변화되고 취약한 상태에 노출되었다.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 집단의 차이를 고려하여 집단간 유대 형성과 신뢰 구축에 노력하지 않은 정부의 정책이 재난회복의 과정을 방해하고 지체시킨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주민들이 재난 회복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제한함으로써 사회통합 수준이 낮고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며 회복을 위한 진전을 더디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화산폭발과 코로나19는 전혀 다른 성격의 재난으로 보이지만, 몬트세랫 섬의 교훈은 우리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방역과 백신 접종 등 대응과정에서 보호의 우선순위가 된 이들이 있는 한편, 이주민과 같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으며 감시와 관리의 표적이 된 이들도 있었음을 안다. 거듭 말하지만 재난으로부터의 올바른 회복은 단지 기존의 사회 질서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재난을 기회로 형형하게 드러난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인 차별과 배제의 규범과 제도들을 바로잡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공적 정책결정에 참여하여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이 진정한 회복일 것이다.

 

*서지정보

Monteil, C., Simmons, P., & Hicks, A. (2020). Post-disaster recovery and sociocultural change: Rethinking social capital development for the new social fabric. International Journal of Disaster Risk Reduction, 42, 101356.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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