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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으로 일상을 되찾으려면 -백신형평성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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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 예방접종이 속도를 내면서 어느덧 한국의 1차 접종자 비율이 미국과 독일의 1차 접종자 비율을 넘어섰고,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접종을 시작한 나라인 영국, 이스라엘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관련 자료: 한번 이상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사람의 비율) 델타 변이가 우세해지면서 백신의 효과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예방접종을 통해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던 코로나가 없던 세상으로의 복귀는 아직 멀기만 하고, 한국과 달리 중저소득 국가들은 여전히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서 고통받고 있다. 그 와중에 고소득 국가에서는 추가접종이 중요한 백신 정책으로 떠올랐다. 가장 먼저 예방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이미 상당한 수의 사람에게 부스터 샷을 제공했고 그 결과를 출판 전 논문으로 내어놓기도 했다(☞관련 자료: BNT162b2 백신 부스터 샷의 보호 효과 이스라엘 전국 규모 연구). 우리는 부스터 샷이 비윤리적이고, 세계 수준의 유행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가 불확실한 탓에 백신을 개발한 제약회사의 이익에 복무하는데 그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시민건강논평: 부스터 샷, 백신 자본주의의 끝은 어디인가?). 여기에 이어서 이번 연구통에서는 부스터 샷 정책에 대한 반대가 규범적, 당위적인 주장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너른 맥락을 고려한 과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국내의 사정에서 출발하자. 지난 8월 12일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역학을 전공하는 교수와 대학원생이 추가접종으로 델타 변이의 확산을 막을 수 없음을 설명하는 글을 워싱턴타임즈에 기고했다(☞관련 자료: 추가접종은 델타 변이를 멈추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에 그를 증명하는 수학이 있습니다). 이들은 감염재생산수를 기반으로 국내 유행을 억제하는 데 추가접종으로 기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 논리를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다.

 

아무도 질병에 대한 면역이 없는 상황에서 한 명의 감염자가 직접 감염시킬 수 있는 사람 수의 평균값을 기초감염재생산수(Basic reproduction number, R0)라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초기 R0은 3 정도였지만, 델타 변이는 그보다 2~3배 높아서 R0가 6~9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숫자가 전체 상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마스크를 열심히 쓰고, 밀폐된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이고, 예방접종을 받는 등의 노력으로 이 숫자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감염자 한 명이 실제로 감염시킬 수 있는 사람 수의 평균값을 실질감염재생산수(Effective reproduction number, Re 또는 Rt)라고 부른다.

 

실질감염재생산수(Re)는 기초감염재생산수(R0)에 마스크 착용, 예방접종 등 다양한 보호 전략을 채택하더라도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을 곱해서 계산할 수 있다. 현재의 백신은 델타 변이에 85% 정도의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예방접종을 이미 받은 사람들이 추가접종을 받아서 95%의 보호 효과를 누리게 된다고 가정하면 10%의 추가적인 효과를 누리게 된다. 추가접종을 받은 사람의 수에 따라 부스터샷의 효과는 달라지겠지만 모든 사람이 추가접종을 받은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실질감염재생산수의 감소는 그리 크지 않은 셈이다.

 

이 정도 규모의 실질감염재생산수의 감소는 추가접종이 아니라 예방접종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도 얻을 수 있다. 인구 5천만 명의 사회에서 60%에 해당하는 3천만 명이 백신을 완전 접종하고, 나머지 40%는 미접종 상태인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때 기존에 백신을 접종한 3천만 명에게 추가접종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집단면역의 크기보다 백신을 1/3만 사용하여 아직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500만 명에게 2회 예방접종을 시행하여 얻을 수 있는 집단면역의 크기가 더 크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방접종을 시행한다면 더 적은 백신을 이용해 동등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림 1]은 인구집단 수준에서 백신접종의 전략에 따라 감염위험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이다. 면역이 충분히 생기지 않아 감염 위험이 큰 고위험군에게 추가접종을 제공해 이들의 위험을 낮추는 효과(진한 붉은색으로 표시된 영역의 사람들이 좌측의 연한 붉은색 영역으로 이동)보다는 전체 예방접종율을 높여 그래프 자체가 왼쪽으로 이동하는 인구집단 전략이 사회적으로 더 큰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예방접종율을 더 높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추가접종이 합리적 선택이 아니냐는 반론을 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의 여러 기관에 속한 연구자들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를 통해 그렇지 않음을 밝혔다(논문 바로가기 : 백신 민족주의와 SARS-CoV-2의 역학과 통제). 연구진은 세계화로 밀접히 연결된 세계의 상황을 토대로 백신이 충분히 공급되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를 상정하고 백신이 분배되는 방식에 따라 두 나라에서 유행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를 시뮬레이션했다.

 

결과는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이다. 한 국가가 백신을 독점함으로써 유행을 통제하려면 다른 나라와 교류가 완전히 차단된 상황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두 나라가 연결된 상황에서백신이 한 국가에만 독점된다면 두 국가 모두 더 큰 유행을 겪을 수밖에 없고, 백신을 독점한 나라도 유행을 피할 수 없었다. 반면 두 나라가 백신을 균등하게 배분하면 두 나라 모두가 유행을 조금이나마 더 작은 규모로 통제할 수 있었다.

 

[그림 1]은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 수준에서 예방접종의 효과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설명을 제공한다. 백신을 각 국가에 형평하게 배분하자는 주장은 윤리적으로 정당할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튼튼한 근거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이스라엘의 결과를 정리한 논문처럼 추가접종이 상당한 보호 효과를 제공한다는 근거가 확립되더라도 이 결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추가접종을 고려하는 고소득 국가들이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시민들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으면서도 유효기간 내에 다 맞추지도 못할 분량의 백신을 쌓아둔 상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미래의 어느 시점에 추가접종이 중요한 인구집단전략이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관련 자료1: 백신을 통한 면역 증강에서 고려해야 할 것들, 관련 자료 2:  국내에서 추가접종을 하기 전에 다른 나라에 백신을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가 거듭 강조하듯, 모두의 안전이 우리의 안전이다. 코 앞만 바라보며 연결된 세상을 부인하고, 봉쇄와 배제로 우리만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편협한 태도를 보이는 대신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코로나19 범유행이라는 고난을 같이 겪고 있는 세계의 동료 시민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민할 때다.

 

* 서지정보

 

-C. E. Wagner et al. (2021). Vaccine nationalism and the dynamics and control of SARS-CoV-2. Science. DOI: 10.1126/science.abj7364

-E. Murray and R. Barnard-Mayers. (2021.08.12.). Booster shots won’t stop the delta variant. Here’s the math to prove it. – The Washington Post. (2021년 9월 13일 접속). 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coronavirus-vaccine-booster-shots/2021/08/11/aefec5dc-fae0-11eb-9c0e-97e29906a970_story.html

-Krause, P., Fleming, T., Peto, R., Longini, I., Figueroa, J. P., Sterne, J., … & Henao Restrepo, A. M. (2021). Considerations in Boosting COVID Vaccine Immune Responses. The Lancet. DOI: https://doi.org/10.1016/S0140-6736(21)02046-8

-Schaefer, G. O., Leland, R. J., & Emanuel, E. J. (2021). Making Vaccines Available to Other Countries Before Offering Domestic Booster Vaccinations. JAMA.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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