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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생활습관, 누구나 가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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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리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면 건강한 생활습관은 현대인에게 있어 만병통치약과 같다. 어떠한 병이든 치료를 위해서는 생활습관 관리를 기본 바탕으로 전제하고 있다. 특히, 지속적인 관리가 증상 완화의 핵심인 만성질환의 경우 생활습관의 관리는 더욱 더 중요하다. 이런 관점이 보편화되면서 만성질환이 악화되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그 책임이 환자 개인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든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칠레대학의 연구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답은 ‘아니다’ 이다. 의료인류학자인 아닉슈타인을 필두로 보건학자와 사회학자가 함께한 칠레대학 연구팀은 칠레의 국가보건사업 중 하나인 만성질환 관리정책에 참여하였던 빈곤층 여성들을 추적관찰한 후 이들이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원인을 발견하였다(논문 바로가기☞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과 물적 조건 : 칠레여성들의 건강한 생활습관에 대한 생각의 한계). 칠레는 1990년대 이후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지속적으로 건강증진정책을 실행하였는데(The Programa Elige Vida Sana, PEVS; Choose Healthy Living Program), 당시 급격하게 증가하였던 만성질환 환자들, 특히 제2형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 환자들의 위험요인을 줄이고 신체활동과 영양 증진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연구자들은 2013년과 2016년 사이에 진행되었던 PEVS 프로그램 중 성인대상 프로그램의 참여자들을 추적관찰하였고, 2013년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대상자 중 산티아고 남쪽에 위치한 도시인 페드로 아기레 세르다에 거주하는 여성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반구조화 인터뷰 및 참여관찰 등의 질적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자들은 PEVS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참여 당시에 자신의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물질적, 사회적 조건 등을 보고하지 않았음에 주목하였고, 이 누락된 부분이 어떻게 생활습관의 유지 문제와 연관되는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첫째로, 연구자들은 참여자들의 젠더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발견하였다. 경제적 취약계층에 위치한 참여자들은 외부의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동시에 가정에서 여성으로서 집안일을 전담해야만 하는 이중적인 부담을 지고 있었다. 이들은 ‘엄마’ 또는 ‘아내’로서 이러한 의무를 행하는 것을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는 일 보다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미 여성으로서 돌보아야 하는 가정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관리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을 우선하므로 자신의 건강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PEVS가 제안한 생활 운동 등을 왜 하지 않는지 연구자가 묻자, 한 참여자는 “내가 그러한 것을 할 시간이 없다. 내가 아니면 내 딸을 돌볼 사람이 없다” 고 답하였다. 심지어 건강증진 프로그램에 참여한 동기 또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이 비만이어서 관련 지식을 얻기 위해 참가했다거나, 내가 아프지 않아야 자식들을 돌볼 수 있기 때문에 참여한다는 식인 경우가 많았다.

 

둘째로, PEVS 참여자들은 지역의 상황에 맞는 인프라 부족과 경제적 제약으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흔히 거래되는 음식들은 건강하지 않지만 저렴한 음식들이 대부분이고, 근무지와 학교에서 제공하는 식사 또한 비슷한 수준이었다. 유기농 식재료 등이 판매된다고 할지라도 이를 구매하기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한 참여자는 “더 많은 돈을 쓰고 건강한 점심을 먹는 것 보다 핫도그를 사먹는 게 편하고 저렴하다”고 말하며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흥미로운 지점은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외부적 환경요인에 대해 참여자들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습관 유지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서 찾는다는 점이다. 이는 참여자들이 건강증진정책에 참여하면서 특정한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등을 가질 것을 교육받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프로그램 교육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 중 하나가 개인의 노력과 태도 변화이고, 이를 수용한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이후 생활습관 유지의 실패를 개인적인 책임으로 여기며 죄책감을 갖게 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예를 들어, 22살의 한 참여자는 그녀가 PEVS에서 배운 습관들을 포기했음을 인정하면서 그 이유를 자신의 “게으름”과 “무관심” 때문이라며 개인적인 책임으로 돌렸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그녀가 실패의 원인을 자신의 부정적인 태도로 돌리면서도 스스로가 실업자이며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한부모 여성이며, 심지어 아버지가 그녀를 학대하는 가정폭력에 놓인 복잡한 상황에 대해서는 원인으로 지적하지 않았음에 주목하였다. 그녀의 경우처럼 외부적 압박요인이 상당한 상황에서도 참여자들은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이들이 느끼는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스스로의 나약함의 문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참여자들은 건강증진 프로그램에서 자주 강조하는 “의지”나 “사고방식의 변화”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이를 건강한 생활습관 유지의 핵심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관점이 정책 프로그램에 의해 학습된 결과임을 지적하면서, 실제 이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가린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결국, 칠레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요구받는 사회적 의무와 지역의 인프라 부족 및 경제적 제약 등의 사회구조적인 환경 요인이 실질적으로 만성질환 관리에 적합한 생활습관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었다. 그렇지만, 여성 참여자들은 이를 스스로의 책임으로 여기면서 개인의 실패와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이중, 삼중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건강한 생활습관이 만성질환을 치료·완화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더라도, 이를 유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개인이 처한 경제적, 사회적 심지어 문화적 환경에 따라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고, 관련 지식을 습득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개선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건강정책을 통해 개인이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충분히 교육하는 한편,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가족, 지역사회 그리고 노동환경을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사회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필요가 여기에 있다.

 

*서지정보

 

Anigstein, María Sol, et al. “Being for Others and Material Conditions: The Limits of the “Healthy Lifestyles” Notion for Chilean Women.” Medical Anthropology (2021): 1-1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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