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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은 어떻게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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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소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작년과 올해 재난지원금을 받으면서 내가 그 전과 달라진 소비를 했던 점은 과일을 사는 것이었다. 최대한 싸고 오래 놔둘 수 있는 음식을 사는 형편에 꼭 먹어야 하는 음식도 아니면서 값도 비싼 과일을 사는 것은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년 5월 기준으로 재난지원금이 가장 많이 사용된 곳은 대중음식점(24.8%)과 식료품점(24.2%), 병원·약국(10.4%) 순으로 나타났다(기사 바로가기). 비록 적은 액수였지만, 한번쯤은 평소의 가성비를 따지는 식생활과 다른 선택을 하고, 미뤄뒀던 병원진료를 받거나 약을 구매한 사람들의 마음 또한 내가 과일을 사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이와같은 국가의 현금 지원 프로그램은 가난한 사람들의 정신건강에는 어떤 경로를 통해 영향을 미치게 될까?

 

국제 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실린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연구팀은 현금 지원 프로그램이 가난한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적고, 그마저도 현금 지원의 직접적인 효과들이 주로 보고되는 데 착안하여 현금지원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논문 바로가기: 현금 이전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 블랙박스를 열기 –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

 

그러기 위해 연구팀은 2008-201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민소득동학연구 자료를 이용하여 성인 4,535명의 우울도에 아동 지원 보조금(Child Support Grant, CSG)이 미친 영향을 살펴보기로 했다. CSG는 경제적 빈곤 상태에서 살아가며 18세 이하의 아동을 양육하고 있는 양육자에게 조건없이 주어지는 현금 이전 프로그램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행 중인 가장 큰 빈곤 완화 프로그램이다. CSG를 받는 가구는 해당 국가의 빈곤선과 거의 일치하는 소득 수준을 가졌고 보조금은 해당 가구가 얻는 월소득의 평균 20-25%를 차지한다.

 

연구팀은 우선 탐색적 요인 분석을 통해 현금지원이 우울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사회경제적 지위, 생활습관, 생활조건, 신체적 건강상태 네 개의 차원을 추출하였고 이들 중 어떤 차원을 경유하여 우울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정신건강을 측정하는 결과 변수는 역학연구를 위한 우울척도인 CES-D를 사용하였고 매개분석을 위해 도구변수 추정과 함께 계수산출법을 사용했다.

 

분석 결과, 현금 지원은 우울도를 줄이는 데 직접적인 효과가 있었다. 간접 효과 면에서는, 현금 지원을 받은 빈곤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신체적 건강과 생활습관이 개선되었고 이 개선된 신체 건강과 생활습관이 그들의 우울도를 줄이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현금지원이 우울도에 미친 전체 효과 면에서 신체적 건강 상태의 개선은 7.4%, 생활습관의 변화는 8.9%를 설명했다.

 

참고로 매개 요인으로 드러난 신체건강과 생활습관은 여러 변수를 합하여 측정한 것이어서 빈곤한 가구에게 지원한 현금이 특히 어떤 곳에 주로 쓰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연구에서 생활습관은 하루 평균 흡연 개수, 주당 평균 음주 빈도를 합하여 측정했고, 신체 건강은 교육수준, 주당 신체활동 빈도, 만성질환의 수(심장질환, 천식, 뇌졸중, 암, 고혈압, 당뇨), 지난 30일간 겪은 증상들의 수(발열, 기침, 몸살 등 12개 증상)를 합하여 측정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현금지원을 받은 연구참여자들의 흡연과 음주 빈도가 줄거나, 교육수준이나 신체활동 빈도가 높아지거나 앓고 있던 증상들의 수가 감소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조건 없는 현금 지원이 생활습관을 악화시키거나 낙인을 강화하여 그들의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빈곤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현금지원에 대한 다른 연구에서는 특히 정신건강이 가장 안 좋은 집단에서 현금지원의 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가난한 여성과 청년들의 정신건강에 인지된 스트레스 수준, 주관적 건강, 사회적 지원, 생활용품 소비, 교육 기회의 증가 등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연구결과들도 있다. 이렇게 해서 개선된 정신건강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또 다른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른바 10개 주요 ‘선진국’ 중 코로나 대응지출 절대액과 GDP대비 직접지원비율이 모두 가장 낮다(기사 바로가기). 그러나 현금지원이 빈곤 완화이자 정신건강 증진 둘 다를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다는 명백한 근거들 앞에서 한국 정부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 확대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 서지정보

 

Ohrnberger, J., Anselmi, L., Fichera, E., & Sutton, M. (2020). The effect of cash transfers on mental health: Opening the black box – A study from South Africa. Social Science & Medicine, 260, 113181. doi:https://doi.org/10.1016/j.socscimed.2020.113181

 

Ohrnberger, J., Fichera, E., Sutton, M., & Anselmi, L. (2020). The worse the better? Quantile treatment effects of a conditional cash transfer programme on mental health. Health Policy and Planning, 35(9), 1137-1149. doi:10.1093/heapol/czaa079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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