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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보건의료에서 연계와 협력은 어떻게 작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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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경(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대선을 앞두고 발표된 보건의료 공약 중에는 70개 중진료권별로 공공병원을 1개 이상 확보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2021년에 개정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이들 공공병원은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되면 자체로 수행하는 의료기능 외에 지역 내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전달체계를 조정·관리하게 된다. 만일 공약이 이루어져 공공병원이 없는 30여개의 중진료권에도 공공병원이 확충되고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 모두 지정된다면 계획대로 지역마다 협력과 연계를 통한 자체 충족적 필수의료가 달성될 수 있을까?

 

실상은 조금 남루하다. 대개의 지역책임의료기관인 지방의료원(또는 적십자병원)의 규모는 200-300병상 정도로 필수의료과목을 운영하지 않거나 중환자를 보기 어려운 병원이 많고, 현재 공공의료 협력체계 구축의 역할을 맡은 인력은 일부 전담 간호사 및 사회복지사 인력에 국한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 유관조직과 필수보건의료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 외에도 협력과 연계사업을 해야 할 영역은 매년 늘어난다. 사업 지침은 상세히 지시하기보다는 영역별 모델이 몇 가지 주어지고 지역에 맞는 사업을 개발하도록 허용하는데, 이는 지역 맞춤형 또는 분권적 방향에 맞는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의료원이나 적십자병원에서 내내 환자를 직접 돌보는 일을 하다가 뜬금없이 공공부서로 발령받은 간호사들이 다른 조직과의 협력과 연계를 기획하고 수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역에서도 작은 규모의 의료원들이, 그 중에서도 일부의 전담인력을 중심으로 도대체 어떻게 지역 안에서 필수보건의료를 연결해나갈 수 있을까?

 

마침 영국 버밍험 대학의 한 연구팀이 이에 관해 상세한 내용을 정리한 연구가 있어 소개한다(논문 바로가기: 보건의료에서 조직 간 협력이 잘 작동하거나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리얼리스트 리뷰). 이 연구는 보건의료 영역에서 자주 발생하는 조직 간 협력에서 어떤 경우에는 성공하고 어떤 경우에는 실패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실재론적 문헌고찰 방식을 사용했다.

 

조직 간 협력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구조적으로는 조직의 크기·공식화의 정도·자원·재정, 과정 요인으로는 신뢰·의사소통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보건의료 현장은 훨씬 복잡해서 서로 다른 조직은 너무나 다른 환경과 맥락에 놓여 있고, 대개 협력의 성과는 맥락에 아주 민감하다. 이 연구는 어떤 요인이 결과로 이어지는 힘을 포함한 기제와 그 기제의 크기와 방향이 달라지게 할 수 있는 맥락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를 위해 공식적인 논문 외에도 보고서나 이론, 사례 등 다양한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목적에 맞는 53개의 문헌을 추려내 결과를 종합했다.

 

일단 파트너십은 경쟁적 관계나 독립적 관계에서보다 협력이 서로에게 더 이익이 될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 각 조직이 어떤 자원과 기술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파트너십 기능’의 차이가 생긴다. 이것이 각 조직의 성과를 합산한 이상의 ‘파트너십 시너지’를 일으켜 기대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 필요한 작동기제를 일부 종합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장 많은 문헌에서 발견된 핵심 기제는 ‘신뢰의 형성과 유지’였다. 협력관계를 통해 성취하는 것이 생기면 ‘관계가 진전된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신뢰가 증가하며, 이는 다시 높은 목표와 이에 동반되는 위험 감수를 높여 신뢰 형성의 선순환 고리가 강화된다. 이 과정에서 ‘관계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며 시너지가 증가한다. 이 믿음에는 파트너십으로 이루려는 ‘목표’와 파트너십을 통해 어떤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진실성’이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다양한 맥락이 작동하는데, 만일 너무 목표가 과하면 기대에 비해 성과가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협력으로 뭔가 좋아지고 있다는 인식이 감소하고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는, 더 공식적인 협정이나 협력에 대한 법적 의무가 기저에 있을 경우 양측이 마땅히 협력에 적극적으로 따르리라는 이해를 공유하므로 초기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

 

둘째, 다음으로 흔하게 보이는 기제는 ‘조직 간 갈등’에 대한 것이다. 파트너 간 갈등은 신뢰를 낮추며 ‘협력에 대한 목표’나 ‘관계에 대한 믿음’도 감소시킨다. 따라서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고 예방하는지가 파트너십 성공에 중요한 기제가 된다. 예컨대 ‘리더십’을 활용해 공동의 비전을 공유하거나 ‘거버넌스’를 통해 파트너십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상호 책무성과 갈등 해결방안을 미리 마련하는 것이 신뢰 감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파트너십을 맺는 핵심 이유는 업무 중복을 피하고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의사소통하여 일을 조율하는 것이 갈등을 피하고 신뢰를 높이는데 중요하다. 지역주민같은 이해관계자를 관여시키고 소통하는 것은 협력관계의 ‘진실성’을 높이고 옳은 목표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 원활하게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내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업무가 간결해진다는 인식을 주어 협력에 도움이 되며, 지리적으로 인접한 조직은 비공식 접촉이 많고 지역 환경과 같은 상호 이해가 높아 신뢰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기초하면 기본적으로 서로 협력하여 상호 조직이 기대하는 성과 이상을 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체적인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중소규모의 지방의료원 입장에서 파트너십을 맺는 일은 특히 다른 큰 규모의 민간병원이 공존하는 지역에서 의료원에 대한 인식이나 신뢰도를 고려할 때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연구 결과는 관련 공공기관에 정부나 지역 보건당국을 통해 파트너십에 대한 공적 지원이 있는 경우는 파트너십의 시작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체로 지방의료원은 시·도 관할로 설립되는 반면, 연계해야 할 지역 유관조직은 시·군·구 관할인 경우가 많아 연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공공의료 협력체계에 관한 많은 보고서가 발간되었고 연계와 협력의 영역을 정의하고 발굴하는 작업은 많이 이루어진 편이지만, ‘어떻게’ 연계하고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는 놀라울 만큼 부족한 것 같다. 정책을 수립할 때 가치와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현장에서 ‘실행’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는 디테일한 전략에 달려있으며, 분권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역량을 키우고 취약한 지역에서도 잘 실행할 수 있도록 중앙이 지원하는 역할 또한 중요하다. 역량의 강화 없이 목표만 제시하고 알아서 달성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지역 간 불평등 심화와 같은 분권화의 역효과를 촉진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공공의료 강화가 목표로 하는 지역 간 의료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서도 지역에 맡긴 연계와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진실성’ 있는 중앙의 파트너십을 기대한다.

 

*서지정보

 

Aunger, J. A., Millar, R., Greenhalgh, J., Mannion, R., Rafferty, A. M., & McLeod, H. (2021). Why do some inter-organisational collaborations in healthcare work when others do not? A realist review. Systematic reviews, 10(1), 1-22.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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