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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사태가 야기한 콜센터 상담사들의 무기력한 슬픔, 무너지는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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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리(시민건강연구소 회원)

 

 

강력한 전파력을 지닌 오미크론의 등장으로 연일 코로나 확진자 수가 갱신되는 가운데, 매일 아침 오늘의 날씨를 챙겨보듯 그 수치들을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간혹 보도되는 집단감염 사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몇 명’이 더 확진자 통계에 추가될 것인지에 집중되어 있다.

 

2020년에 발생했던 ‘구로 콜센터사태’로 명명되는 콜센터 상담사 집단감염 사태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태가 보도되었을 때, 주요 논점은 상담사들이 집단적으로 코로나에 감염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대한 관심보다는 몇 명이 발생했는지 였고, 콜센터 상담사들은 집단감염의 잠재적 위험군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다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콜센터 상담사들이 코로나19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사태 이후 강화된 방역조치 아래에서 이들의 삶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하여, 의료인류학자인 덕성여대 김관욱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콜센터 상담사들이 점차 무기력해지고 신체적 심리적 건강이 무너지는 과정을 연구하였다 (논문 바로가기 ☞ 과일바구니, 식혜, 붉은 진드기 그리고 벽”:코로나19 사태 속 콜센터 상담사의 정동과 건강 어셈블리지). 저자는 2020년 콜센터 조직화 워크숍에 참석하여 여러 콜센터 노동조합의 대표들을 심층 면담하였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속 콜센터 운영의 현주소와 콜센터 상담사들이 현장과 맞지 않는 방역 조치, 과중한 업무 분담과 하청업체를 통한 불공정 계약, 열악한 업무환경 등이 맞물려 지치고 무기력한, 불건강한 상태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저자는 철학자 질 들뢰즈가 제시한 어셈블리지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된 다양체(배치, assemblage)- 라는 개념으로 건강을 “건강-어셈블리지”로 재해석한 카메론 더프(Cameron Duff)의 논의를 기반으로 콜센터 상담사들의 건강상태를 해석했다. 그 중에서도 정동이라는 개념을 통해 상담사들의 상태를 정의하는데, 정동이란 외부에 표출되는 관찰 가능한 감정이자 만남에 의해서 발생하는 느끼고 행동하고 지각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들임을 고려할 때,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상담사들의 행동능력과 건강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관욱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들이 경험하는 주된 정동은 “무기력한 슬픔”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과일바구니,” “식혜,” “붉은 진드기” 그리고 “벽” 으로 상징되는 네 가지 사례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속 콜센터 상담사들이 마주하는 슬픔의 정동과 불건강한 상태를 재조명하였다.

 

과일바구니

 

2020년 구로콜센터 사태가 코로나19 대규모 집단감염의 첫 번째 사례로 대두되면서, 콜센터 상담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등이 재조명되었지만, 정작 이후 콜센터 상담사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후속조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크지 않았다. 집단감염으로 근무를 할 수 없게 된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임금삭감 통보를 받았다. 자가격리 및 확진으로 입원하면서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상담사들은 성과 수당 일부를 받지 못하였다. 이는 1인당 월 수십 만원의 임금이 삭감되는 것으로, 생계유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 사태 발발 이후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모두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만 하였고, 공식적인 사과 또한 없었다. 집단 감염이 발생하기 전 하청업체는 마스크를 제공하기만 하였을 뿐 별다른 방역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아크릴 판도 설치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원청기업은 어떠한 공식 사과도 없이 확진자들에게만 위로 차원의20만원 상당의 상품권과 과일바구니를 전달했다. 하라는 대로 비좁은 공간에서 마스크를 끼고 일했던 상담사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임금이 삭감되어 생계를 위협받고 아무런 사과도 조치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억울하다”고 표현하였다. 저자는 이들이 받을 수밖에 없었던 과일바구니가 위로가 아니라 모욕스럽지만 생계를 위해서 억울한 상황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재확인 시켜주는 무기력함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식혜

 

코로나19 사태가 직접적으로 집단감염 형태로 영향을 미친 것 외에도, 앞선 어셈블리지의 개념처럼 다양한 방면에서 직·간접적으로 콜센터 노동자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다. 공공기관 민원안내 콜센터 센터의 경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업무량이 급격하게 증가했고, 이 때문에 상담사들은 과도한 업무량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로 만성통증, 잦은 병가 및 응급실 방문이 증가하는 상황을 겪었다. 업무량 자체가 증가한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상담사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현장에 배치되는 일이었다.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짧은 브리핑이나 서면 자료, 계속 추가되는 쪽지 또는 동영상교육이 전부였다. 일을 정확하게 전달받지 못한 상담사들은 그로 인해 민원인에게 폭언을 듣거나 광범위한 양의 정보들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였다. 과중한 업무에 힘들어하던 중 민원처리를 일방적으로 하달했던 부서에서 콜센터 상담사들에게 ‘잔칫집 식혜’를 돌렸는데, 콜센터 상담사들은 “지금 콜센터는 초상집인데 식혜가 왠 말이냐”며 불만을 토로하였다. 공공기관의 불충분한 교육자료로 인해 민원인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고,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콜을 하루에 120개 넘게 받으면서 상담사들은 점차 무기력한 슬픔 속에 잠식되어가고 행동할 능력 또한 잃어버린다. 제대로 된 교육 없이 떠넘기기만 하는 원청업체인 공공기관과 위에서 지시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하청업체 사이에서 숨막히는 업무량과 민원인들의 쏟아지는 불만까지 감내해야 했던 상담사들에게 식혜는 앞선 과일바구니처럼 응원의 선물이 아니라 모욕적인 대우일 뿐이었다.

 

붉은 진드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집단 감염을 우려했던 대전의 한 콜센터는 기존에 한 공간에서 근무하던 500명의 상담사들에게 갑작스럽게 이동 통보를 하고 30분 만에 분산하여 임시 근무지로 배치하였다. 갑작스럽게 마련된 임시 근무지는 기본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당히 열악한 환경이었고, 이는 장시간 앉아서 근무하는 콜센터 상담사들의 건강에 치명적이었다. 보다 큰 문제는 임시 근무지에서 붉은 진드기가 나타나 알레르기나 피부발진을 겪는 상담사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콜센터 업체는 이를 방관했고, 노동조합 차원에서 방역 할 수밖에 없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해야만 하는 현실은 상담사들에게 행동능력 감소로서의 슬픔을 겪게 하였다. 이에 더하여 콜센터 업무 증가와 민원인과 대화를 해야 하는 특성상 하루종일 마스크를 끼고 상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재택근무자체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콜센터 노동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잦은 부인과 질환, 하지정맥류부터 방광염까지 다양한 질환에 노출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상시 착용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 생활의 일상으로 자리잡았지만 콜센터 근무환경에서는 그렇지 않다. 공간 활용을 위해 노동자 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업무 공간만을 부여해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근무자 배치 간격이 일반적인 콜센터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마스크 착용시 일차적으로 발음이 명확하지 않아서 민원인들이 잘 듣지 못해 말을 할 때 평소보다 크게 해야 하고, 상담 시 마스크 안에서 열이 나 피부발진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자주 들이마셔 호흡곤란과 구토 증세를 보인 상담사들도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휴식시간을 줄 것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자리를 이탈하면 콜을 놓치게 되고 인센티브가 줄어들어 화장실 조차 자주 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저자가 한 상담사의 하루 업무기록을 살펴본 결과 하루 113통의 통화를 하였고, 총 8시간의 노동시간 중 화장실은 단 4회, 휴식시간은 0분이었다.

공간적인 갑갑함 외에도 콜센터 상담사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정규직 직원들이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정규직 직원들은 쉽게 하대를 하며, 상담사들이 정규직에게 콜을 넘겨주는 호전환(call transfer)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했다. 민원인들에게 정규직 전화번호를 절대로 넘겨주지 않고, 민원인이 연결을 원할 경우 상담사가 정규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가 4번 울릴 때 까지 기다리고, 안될 경우 2회 반복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개인평가 점수가 차감되어 월급이 삭감 당한다.

 

저자는 대다수의 콜센터에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센터 출입구, 근무 공간을 쪼개는 파티션과 자리 이탈을 막는 전자출결 시스템, 그리고 코로나 19 사태로 추가된 마스크와 가림막까지. 존재하는 물리적 벽 외에도 콜센터에서 상담사들 자체가 끝까지 민원을 막고 정규직원들을 보호하는 벽으로 기능한다. 벽으로서 과중한 업무를 떠안은 채로 기본적인 노동권을 침해하는 도처의 벽들에 둘러쌓여 이러한 시스템에 순응할 것을 강요받는 모든 상황들이 콜센터 노동자들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비단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 뿐 아니라 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여러 요소들로 구성된 열악한 건강(상태)-어셈블리지라고 표현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코로나19는 기존의 열악한 근무환경, 기본적인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과 복잡하게 얽혀 콜센터 상담사들에게 무기력한 슬픔이라는 정동을 만들어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로 인해 나타나는 열악한 건강상태는 능력부족이나 사기저하로 여겨질 뿐 의학적으로 입증 가능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합법적’인 질병, 즉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고 유급 병가와 보상 또한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상담사들이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심신의 고통을 겪고 있다.

 

저자는 본 연구를 통해서 아픔을 경험하고 이을 입증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 즉 슬픔의 정동 또한 불건강의 상태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상담사들에게 건강의 상태는 기존의 열악한 환경에 순응함으로서 얻는 것이 아니라 ‘저항’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물론 그 저항은 임금 삭감이나 퇴사 같은 현실적인 위험과 직결되기 쉽지만, 특정한 이들에게 불평등하게 가중되는 불건강의 위험이 옳은 것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인식의 틈을 벌이는 것으로 저항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서지정보

 

– 김관욱. ““과일바구니, 식혜, 붉은 진드기 그리고 벽” : 코로나19 사태 속 콜센터 상담사의 정동과 건강–어셈블리지.” 한국문화인류학 53.3 (2020): 37-83.

– Duff, Cameron. Assemblages of health: Deleuze’s empiricism and the ethology of life. Springer, 201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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