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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에 성공과 실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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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5명. 2022년 2월 26일 현재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다. 4,429명. 2021년 마지막 5주 동안 과거 3년 최대 사망자 수를 초과하여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다. 한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도 초과사망자 수도 세계적으로 보면 낮은 편이다. 이를 두고 두 가지 평가가 대통령 선거의 주변을 맴돈다.

 

하나는 ‘성공론’이다. 초기 방역은 환자 발생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는 정책이었다. 한 명, 한 명 환자에 대한 역학 조사를 두텁게 하고, 밀접 접촉자를 찾으려 힘썼다. 대부분의 보건소를 총동원해서 역학조사를 했고, 확진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의 공공병원 병상과 인력을 동원해서 환자를 치료했다. 실제로 확진자 수는 적었고 사망자 수도 많지 않았다. 이런 관점의 성공이라면 성공일 수도 있겠다.

 

그럼 지금은 성공인가?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확진자 수가 연일 최고치를 찍고, 재택치료로 방침을 바꾼 후 공중보건체계가 취약한 곳곳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오미크론 변이의 특성이 전파력은 높되 치명률은 낮다는 사실이다. 그 덕분인지 국무총리는 낮은 사망자 수를 근거로 정부의 방역 성과를 자부했다.

 

다른 하나는 ‘실패론’으로, 이는 ‘비과학적’ 방역을 바꾸겠다는 약속으로 이어진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확진자 수와 감염 확산 수준은 논외로 하자. 다른 나라는 방역을 다 풀었다는데, 한국만 제한 조치를 유지하는 것이 실패의 근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부 방역 조치를 두고 비과학적이라서 실패라는 주장은 가당치 않다. 이들이 주장하는 과학적 방역은 무엇인가? 물론, 방역패스는 개인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백신 접종이 불가능한 사람을 배제하고 차별한다. 하지만, 인권과 건강권에 충실한 다른 대안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인권 중심적 주장과 ‘음모론’에 기초한 포퓰리즘적 주장은 거리가 멀다.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는다. 아니, ‘성패’를 다투는 논의의 틀 자체를 거부한다. 방역이라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실체를 두고 굳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려는 세력, 그리고 그 동기는 명확하다. 사람들의 고통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잘못된 성패론은 시민들의 고통을 더 키울 뿐이다.

 

대통령 선거까지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말들이 더 기승을 부릴지 모른다. 다음에 말하는 것은 그 병폐다. 마땅히 주의하고 피할 일, 논쟁의 물꼬를 바로잡아야 한다. 방역에 대한 평가를 ‘사람 관점’으로 바꾸는 데도 이런 점을 짚어야 한다.

 

 

먼저, 코로나19 방역은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의제가 되지 못했다. 방역의 성공과 실패를 숫자로 환원해 버리면 현실 정치는 필연적으로 경제의 수치로 지난 2년을 평가한다. 그 결과 남아있는 코로나19 관련 의제는 소상공인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지금까지 소상공인의 고통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정책이라면, 지난 2년 우리가 목격한 수많은 차별과 불평등은 어찌하라는 말인가.

 

둘째, 방역 과정에서 학습한 공중보건체계의 문제는 더는 의제가 되지 못한다. 오미크론 대응 과정에서 전국의 보건소에 과거보다 두 배는 더 큰 천막이 들어섰다지만, 이들의 방역 대응 역량이 두 배로 개선되지는 못했다. 아직, 우리 동네 확진자가 동네 병원의 비어 있는 병상을 두고 다른 동네 병원에 입원한다. 중앙 집권적 병상 배정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병상 배정 지연은 더 심해진다. 역학조사가 사라진 자리에 ‘환자 중증도 분류’가 비슷한 정도의 업무량으로 보건소에 새로 들어왔다.

 

공중보건 인력을 어떻게 확충할지, 전달체계는 무엇을 개선하면 좋을지, 정보체계는 무엇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 지난 2년간 고통을 겪었으나 답을 제시하고 주장하는 정치는 없다. 방역의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대신, 공중보건체계를 어떻게 개선하고 방역 역량을 어떻게 키우겠다는 주장과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셋째, 코로나19를 둘러싼 다양한 피해와 희생자들의 고통에 침묵한다. 2020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빌어 코로나19 희생자들에게 유감을 표시한 적이 있다. 그 후로 2년, 한국의 정치는 성공과 실패의 평가를 위한 정쟁에 매몰되었을 뿐, 코로나19 피해자와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의 마음을 보인 적 없다. 코로나19 확진 후 사망한 분들뿐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다양한 이유를 생을 달리하신 분들은 그냥 ‘사라졌다.’

 

넷째, 각자도생의 생존 방역은 모양만 바꾸어, 방역지침 완화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시장형’ 방역이 되었다. 정부 주도의 동선 정보 수집과 보편적 PCR 검사는 사라졌지만, 환자 수가 늘어나면서 많은 직장이 음성 증명을 요구한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논란이라면, 방역에 성공과 실패란 존재할 수 없다. 방역은 모든 과정이 감염병 위기와 고통을 최소화하는 과정이다. 문제점을 찾고 이를 바로잡는 것이 방역의 요체라면 늘 성공이고 또한 실패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숫자로 등수를 따지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 무슨 소용이 있나.

 

지금 현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방역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고 치적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이는 불가능하다. 과거와 현재 과정을 살피고 다음을 준비하는 데 집중하라. 그러지 못하는 현재의 정치가 가장 큰 실패라는 사실을 인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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