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홈리스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안을 복지부에 권고했다 (기사 바로가기). 시설에 3개월 이상 거주해야 지정된 병원에서만 의료이용을 허용하는 일명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가 홈리스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의료제도의 공백에 내몰린 홈리스의 현실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그들이 놓인 취약한 환경이 더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홈리스가 처인 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스스로 자가진단키트를 구입하는 것을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도움을 찾아 나서고자 해도 필요한 서비스를 원하는 곳에서 받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비의료적 측면에서도 무료급식소 등 홈리스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도움마저 감염 위험을 이유로 제한적으로 운영되면서 끼니를 때울 몇 없는 기회마저도 제한받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서울교통공사는 홈리스에게 차별과 혐오를 유발하는 조치를 취하여 홈리스 단체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기사 바로가기).
오늘 소개할 논문은 이처럼 생활 곳곳에서 차별과 낙인을 경험하는 홈리스들의 삶에 대한 연구이다 (논문 바로가기☞ 정신 질환이 있는 홈리스 차별 및 낙인, 그리고 주거, 웰빙의 종단적 관계). 캐나다와 미국을 비롯한 북미 국가는 홈리스를 위한 여러 서비스 중재 개입을 시도하는 한편 홈리스들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추적·모니터링하고 있다. 대표적 사업이 선(先)주거지원 사업(Housing first)으로 여러 삶의 문제를 가진 홈리스들에게 장기간 주거 공간은 물론, 심리사회적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이 사업이 운영되면서 홈리스에 대한 지속적 연구가 가능해졌음은 물론이고, 그들의 삶도 나아지고 있다는 연구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연구진은 2009년-2011년 토론토 홈리스를 대상으로 낙인과 차별 경험이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선주거지원사업이 그 영향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연구진은 (1) 의료서비스를 받을 당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 (2) 타인이 본인을 수치스러운 태도로 대하거나 무시하는 경우, (3) 대중매체에서 홈리스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하는 경우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낙인을 측정하였다. 그리고 차별과 낙인의 경험이 홈리스의 정신건강, 주거 안정성 등 삶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낙인과 차별 경험은 홈리스의 사회경제적 지위 그리고 건강 수준을 악화시키고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홈리스의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가로막고 있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경험의 정도가 약해지는 홈리스들은 점차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차별과 낙인을 경험하는 홈리스는 여전히 정신건강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고, 향후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머물 수 있는 가능성조차 낮아졌다.
흥미로운 점은 앞서 설명한 주거 지원 사업의 참여 여부에 따른 결과이다. 선주거지원 사업에 참여한 홈리스는 차별과 낙인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즉, 일단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에 머무는 것 그 자체가 그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다. 우선 차별과 낙인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아진 것이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며, 홈리스 스스로 자신의 의식주를 어떻게 유지하고 살아가는지를 점차 알아가게 된 것도 큰 영향요인이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 통제권이 향상된 것이다.
사실 차별과 낙인은 종종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구분짓기란 다소 모호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상처와 아픔을 남기는지를 알아차리기란 더더욱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차별과 낙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친구를 만나러 카페를 가거나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처럼) 우리가 당연시 여겨지는 삶의 여러 지점에서 누군가는 굉장히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그 경험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늘 긴장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에 오랜 기간 노출되는 것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요인 중 하나다.
서두에서 살펴본 대한민국 홈리스의 현실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들을 향한 우리의 불편하고 부당한 시선, 태도들이 코로나 사태의 홈리스를 더 궁지로 내몰고 있다. 오늘 소개한 연구는 학문적 그리고 실천적 관점에서 크게 두 가지 교훈을 던져준다. 하나는 홈리스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invisible people)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근거를 생산하고, 일반 시민의 입장에선 나와는 관계없는 타인의 삶이 아니라 이웃으로 그리고 우리의 삶으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은 그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 낙인을 제거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걸음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교훈은 “내 생존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한 거처”가 홈리스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홈리스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는 외롭지 않게, 건강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오갈 데가 없어지면서 추운 날씨를 길거리에서 맞이하는 홈리스가 2022년에는 더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연대해야 할 때다.
*서지정보
Mejia-Lancheros C, Lachaud J, Woodhall-Melnik J, O’Campo P, Hwang SW, Stergiopoulos V. Longitudinal interrelationships of mental health discrimination and stigma with housing and well-being outcomes in adults with mental illness and recent experience of homelessness. Soc Sci Med. 2021 Jan;268:113463. doi: 10.1016/j.socscimed.2020.113463.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