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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치료받기 힘든 이주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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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2020년 9월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서 부산·경남지역 주요 이주민 지원 단체, 당사자 단체와 공공의료 관계자가 모인 회의가 열렸다. 이주민 여성에게서 선천적 건강문제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고, 수술 및 중환자실 치료로 거액의 치료비가 발생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모는 산전진찰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출산이 임박해서야 병원에 왔고, 아이는 수술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6000만원이 넘는 치료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함께, 그동안 이주민 여성들이 경험한 문제들을 드러내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의료보장제도에서 배제된 이주민을 위한 유일한 공적 의료지원 제도인 보건복지부의 <외국인근로자 등 의료지원사업>은 예산 부족으로 조기 소진되어, 병원이 미수금으로 책정 후 다음 연도 예산에 산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경상남도에서는 예산 소진 후에는 지원신청을 하지 말라는(즉, 환자를 받지 말라는) 공문을 사업대상 공공병원에 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남의 이주민 환자가 부산으로 가서 치료를 받거나, 심지어 이주민들이 일반수가보다 2배 이상 비싼 “외국인 수가”로 적용되어 진료받는 일도 발생하고 있었다.

 

이주민 지원 단체와 당사자 단체는 <외국인근로자 등 의료지원사업>이 근본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지점과 한계가 많지만 공공의료의 측면에서 적어도 관련 병원이 환자를 거부하거나 지불이 불가능한 고액의 의료비 부담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최소한 미수금으로 남기고 의료비 지원을 받는 2019년 이전 상황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공공의료기관, 도의회, 이주민단체가 이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외국인근로자 등 의료지원사업>과 별도로 이주민의 임신·출산과 아동건강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며, 산모가 내국인과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회의 이후로 공공병원, 이주민단체,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함께하는 이주민공공의료정책네트워크가 제안되었고, 외국인근로자 등 의료지원사업비의 시도별 현황 조사, 이주민 건강문제와 관련한 도의원 간담회가 진행되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다만, 일련의 모임들을 통해서 이주민 단체가 제안한 이주민 여성건강에 대한 부산·경남의 실태조사가 경남, 부산공공보건의료지원단에 의해 진행되었고, 그 결과가 2022년 3월에 발표되었다 (바로가기 ☞ 부산·경남 이주민 여성의 건강권 강화방안 모색연구)

 

이 연구의 목표는 이주민 여성의 생애과정별 건강문제와 의료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충족 의료를 파악하여 이들의 건강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하는데 있었다. 연구진은 먼저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의 이주민 여성 현황을 조사하고 이주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정책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이주민 지원 기관, 단체의 실무자 및 이주민 여성에 대한 심층면담을 통해 건강문제를 파악하고 의료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충족 의료를 조사했다.

 

이주민 여성에게 미충족 의료가 생기는 원인은 일차적으로 의료기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료시간에 맞춰 방문하기가 힘든 것, 거주하는 지역에 진료기관이 없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있었다. 다음으로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과정에서는 기관별 사업 담당자에 따라 지원기준과 절차의 상이함, 의사소통의 어려움, 서류작성의 어려움, 과다한 진료비용, 의사의 설명 부족, 보증인 요구 문제 등이 있었다. 임신 및 출산에 의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때의 어려움은 일터에 임신 사실을 알릴 수 없어 자진 퇴사(회사가 임신사실을 알게 될 경우 퇴사 종용)하거나 산전 검사 및 분만 등의 목적으로 의료기관 방문 시 의료진과의 소통에서 어려움, 미등록 이주민 여성의 비싼 출산 비용, 출산 이후 육아 정보 부재의 문제들이 도출되었다.

 

연구진은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이주민 여성의 미충족 의료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제안으로 이주민 대상 의료서비스를 주로 제공하고 있는 공공의료기관의 확충, 공공의료기관의 산부인과 기능 강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공공의료기관이 이주민 전담 인력을 충원하고, 이주민의 건강문제 상담을 포함하여 이주민 지원단체나 이주민 당사자 단체 등 외부기관과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도 제안했다. 또한, 이주민 여성의 임신 및 출산 전반에 관한 시·도의 전담 부서 지정으로 지자체의 책무성을 강화할 것과 언어 장벽 해소를 위한 통·번역 서비스 확대 수행 및 의료 전반적인 내용이 포함된 정보 공간을 개설할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이주민 긴급 의료비 예산 확대, 국제 수가 적용 대상의 재검토와 이주민 건강문제에 관한 추이를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지원 방안이 모색될 수 있도록 정기적인 건강실태조사 수행도 제안했다.

 

소개한 연구는 부산·경남지역 이주민 여성이 건강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배경에는 이주민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한국의 건강보장제도와 취약한 지역사회 공공의료의 현실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부산경남 이외의 지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주민 여성의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구조요인에 개입하는 것은 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가 차별과 불평등이 없는 보편적 의료보장을 누리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 서지정보

 

김혜원 외(2022). 부산 · 경남 이주민 여성의 건강권 강화방안 모색연구 – 보건의료서비스 이용과정의 미충족 의료 사례 중심. 경상남도공공보건의료지원단, 부산광역시공공보건의료지원단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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