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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이동성 확보에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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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시민건강연구소 회원)

 

 

5월 2일, 장애인 권리 예산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던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추 후보자는 장애인 콜택시 등 교통약자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운영에 국가 보조금이 지원될 수 있도록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추 후보자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에서 요구했던 국고 지원 비율(서울 50%, 지방 70%)이나 예산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전장연은 즉각적으로 반발하였다(보도자료 바로가기). 기획재정부가 2023년에 반영될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실링(ceiling) 예산을 확정할 때까지 5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에서 오체투지 탑승을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무엇이 이렇게까지 이들을 절박하게 한 것일까? 지난 3월 <국제사회복지저널>에 서울에서 휠체어 이용자의 이동성과 삶의 만족도 사이의 연관성을 살펴본 연구가 실렸다(논문 바로가기☞ 휠체어 이용자의 이동성과 삶의 만족도: 서울의 휴대폰 데이터를 이용한 연구). 이 연구는 신체장애가 있는 휠체어 이용자의 삶의 질에 이동성이 중요한지 여부가 아니라, 이동성의 어떤 측면이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핵심적인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휠체어 이용자의 이동성은 (개인의) 장애 관련 특성 및 신체 조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이동 가능성 및 제약에 의해 결정된다. 즉 휠체어 이용자의 이동성은 환경 조건, 사회 시스템, 제도적 장치, 사람들의 태도 등으로 결정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 이동성이라는 용어는 ①공간적 이동성(spatial mobility)과 ②이동성 자본(mobility capital)*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공간적 이동성은 주당 평균 이동 횟수, 1일 이동 거리, 모티프(motif, 집에서 시작하여 집에서 끝나는 여행으로 정의되며, 방문 장소인 노드(node)와 노드 간 이동 경로인 에지(edge)를 포함)로 측정하였으며, 이것은 각각 이동 빈도, 이동 범위, 이동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동성 자본은 연구 참여자의 인지된 이동성 환경으로서 도로 상태, 편의시설 등 이동 환경에 대한 만족도로 측정하였다.

 

연구팀은 연구대상지로 선정된 서울특별시 성동구와 성북구 지역사회복지기관의 사회복지사와 함께 연구참여자를 선정하였다. 연구참여자의 휴대폰에 설치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분 단위로 GPS 위치 추적 데이터를 수집하였으며, 매일 진행되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연구참여자가 방문한 장소에 대한 인지된 이동성 환경을 조사하였다. 94명의 연구참여자로부터 900,957개의 데이터 포인트가 수집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분석에 포함된 연구참여자는 86명이었다.

 

분석 결과, 인지된 이동성 환경은 삶의 만족도와 유의한 연관성이 있었다. 이는 통행로의 질, 대중교통 이용의 어려움과 같은 이동 조건에 대한 인식이 연구참여자의 주관적인 웰빙을 설명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간적 이동성 중에서는 모티프만 삶의 만족도와 유의한 연관성을 보였다. 즉, 개인이 여러 장소를 방문하거나 장소 간 이동 경로 수가 많을수록 삶의 만족도는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주당 평균 이동 횟수와 1일 이동 거리는 삶의 만족도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 연구에서 놀라웠던 점은 주요 변수 간 상관분석 결과에서 장애의 중증도는 모티프와 유의한 연관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휠체어 이용자의 실제 이동성 패턴은 그들의 장애가 아니라 사회 참여 기회, 교통수단의 가용성과 같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휠체어 이용자의 이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그들의 삶의 질 향상에 필수적이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인의 맹공에도 전장연이 계속해서 출근길 시위와 삭발 투쟁을 이어나간 것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 단순히 이동(movement)의 편의만을 높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도 이동성은 사회참여와 사회통합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교육을 받거나,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참여는 모든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동시에 개인의 건강과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공중 보건 이슈이기도 하다. 장애인의 이동성 개선을 위해 우리가 함께 연대하고, 정부 당국에 정치적 책임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 서지 정보

 

-Lee, Y., Oh, S., Cha, J., Kim, K., Lee, SY., Kim, H. (2022). Mobility and life satisfaction among wheelchair users: A study using mobile phone data in Seoul, South Korea.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 Welfare, 1-14. (Early View)

 

– 이동성 자본이란 많은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따르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을 구속하는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자원 또는 능력을 의미한다(참고논문: 모빌리티스 개념의 주요 구성요소 및 측정변수 분석).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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