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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정부의 국정과제를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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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이면 차기 정부가 출범한다. 대통령 취임식을 일주일 앞둔 지난 5월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는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이하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물론 이후 상황에 따라 세부 내용들은 다소 달라질 수 있겠지만,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이념을 담은 첫 공식 문건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국정과제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한 마디로 비관적이다. 우리는 지난 논평을 통해 예비대통령에게 절박한 시대적 과제인 불평등 문제에 대한 대안을 요구했지만(바로가기), 그 어디에서도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극도로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마치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또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듯이 말이다. ‘불평등’이라는 표현이 딱 한번 등장하는데, 그것도 여섯 가지 국정목표 가운데 유일하게 국정과제가 하나도 제시되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에서다. 저소득층의 생계 안정과 위기대응 지원 강화, 이주민 인권보호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 정책의 되새김이며 무엇보다 불평등의 복잡성과 근원에 대한 통찰이 없다.

 

이처럼 차기 정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완벽한 무관심은 그 자체로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국정과제는 집권세력의 신념과 의지, 욕망이 반영된 결과이면서 동시에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거친 산물이기도 하다. 정부 출범을 앞두고 가급적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만한 과제라면 슬그머니 제외하거나, 반대로 꼭 하고 싶지는 않더라도 여론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과제라면 매력적으로 포장해서 내놓는 법이다.

 

국정과제에 수사적(rhetoric) 차원에서조차 ‘불평등’이 누락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불평등 문제를 국가의제로 삼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내포된 것으로 읽어야 한다. “국가경쟁력 회복”과 “선진국 도약”을 “시대적 소명”이라고 공언하는 마당에 불평등 문제가 철저히 외면당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불평등에 대한 무관심은 국가의 책무성을 약화시키면서 사회 전 영역에서의 영리화, 시장화를 강화·추동하는 신자유주의적 국정 운영기조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징후는 보건의료 분야의 국정과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언제 어디서든 모든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과 같이 아무런 ‘의미값’도 없는, 공허한 구호를 벗겨내고 나면 건강과 보건의료를 더욱 영리화, 상업화하려는, 숨어있는 ‘열망’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필수·공공의료 강화”(국정과제 66번)의 구체적 정책수단 중 하나로 제시된 “공공정책수가”가 바로 그러한 예이다.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하는 모든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공공병원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시장화된 현재 의료시스템을 감안하면 사실상 민간의료기관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역할을 수행하느라 상당한 손실이 누적된 상태에서 “공공정책수가”를 구실로 정부의 재정지원이 소극적으로 이뤄진다면 공공병원들은 이전보다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이오·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의 육성(국정과제 25번)이다. 이는 보건의료를 영리화, 상업화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건강을 철저히 상품화하려는 기획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바이오·디지털 헬스는 차세대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각광받으며 대규모 R&D 예산 지원과 전폭적인 투자가 이뤄져 왔다. 대개 정권이 교체되면 으레 이전 정부의 기조와 차별화를 꾀하는 편이지만, 적어도 바이오·디지털 헬스 산업에 있어서만큼 아무런 단절도 찾아보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던 ‘건강정보 고속도로 시스템’ 구축 방안을 국정과제로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이는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제약산업과 의료기기산업 등의 이해관계가 국정운영기조에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또한, 통상 ‘보수’정권은 영리화를, ‘진보’정권은 공공성을 추구한다는 이분법적 도식의 오류를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건강과 보건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고자 하는 ‘체제적 경향성’의 존재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는 이번 정권교체가 바이오·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그동안 꾸준히 진행되고 있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바이오·디지털 헬스 산업의 육성은 ‘예방적 건강관리 강화’(국정과제 67번)에 제시된 ICT 기술기반의 ‘스마트 건강관리’나 ‘비대면진료 제도화’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의료취약지 등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핵심동기에는 상업화를 통한 수익창출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디지털 헬스기술 자체에 반대하지 않지만, 현실에서 이것이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개발되고 배분되는 한, 기존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될 위험성이 클 것으로 판단하며 우려를 표한다(논평 바로가기).

 

국정과제를 통해 도출된 비관적 전망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확한 진단과 통찰의 토대 위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화’에 나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공공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신자유주의적 해법이 틀렸다는 생생한 ‘근거’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슬픔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진행 중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시장 확대, 불평등 심화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라는 토대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공중보건위기를 거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공공성의 가치와 공공보건의료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상황도 우리가 가진 저항의 동력이다. 자본과 시장은 그 구조적 본질상 건강과 생명, 평등과 공공성을 유지·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더욱 확연하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자.

 

아울러 우리가 가진 건강에 대한 욕망과 결핍감을 끊임없이 부추기며 자본축적의 도구로 삼으려는 바이오·디지털 헬스 산업의 실체를 드러내고 ‘개인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의 건강정보가 철저히 상품화됐을 때 벌어질 결과가 나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하게끔 만드는 ‘개인화’다. 나아가 이러한 산업화의 흐름이 사회를 더욱 원자화하며 불평등을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사회적 상상력’을 키우고 확산시키고 조직화하자.

 

이러한 전략적 실천은 결국 우리 모두 함께 건강과 삶을 공유하려는 ‘해방적’ 욕망을 투쟁의 동력으로 길러내는 과정이고, 바로 여기가 우리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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