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결정들이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건강결정요인이 그러하듯이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도 다양한 수준에서 작용한다. 각자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부터 국가 수준을 넘어 국제적 수준까지, 삶의 결정요인들은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상호 결합하여 시민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특히, 국제 협약과 국가 간 협약,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다양한 정책결정, 선거 등은 사회 구성원들의 삶과 건강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런 맥락에서 6월 1일 지방선거는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이다. 사전선거는 이번 주 금요일(27일) 시작이니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공식 선거운동은 지난 목요일(19일)에야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앞으로 4년 간 일할 우리 지역 일꾼 후보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시민들은 곤혹스럽다.
지난 대선 주요 책임을 맡았던 이들이 경기도, 서울, 인천 등 수도권 출마를 위해 선거일 2달 전 ‘위장전입’을 완료한 4월 초, 이미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 연장전’으로 규정되어 버렸다. ‘지방선거의 중앙정치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대선과의 간격이 역대 가장 짧다는 이번 선거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하다.
언론도 책임을 저버렸다. ‘지방 없는 지방선거’이자, 양대 정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조 속에서 지역의제, 소수정당이나 정치신인에 관한 참신하고 성실한 보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시민들의 삶과 연관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지방선거의 의미를 사회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확산하겠다는 정부와 언론의 의지는 확인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주말 정부와 언론의 주파수는 곧바로 오산과 평택으로 향했다. 미국 대통령 방한의 첫 일정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방문이라는 점, 바이든 대통령이 ‘에어포스 원’에서 내려 ‘더 비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캐딜락 원’을 타고 이동했다는 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 일정에 동행하느라 자신의 ‘부당 합병’ 혐의에 대한 재판에 불출석했다는(법원이 이를 허가했다는) 점, 한미 정상의 숙박 장소와 정상회담 및 만찬 장소, 만찬에 초청된 한미 주요 그룹 총수들과 한국의 경제단체장들의 이름까지, 시민들은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그리고 두 나라의 자본 권력이 정상회담과 만찬장에서 또는 그 이후의 우리가 모르는 만남 속에서 내린 결정이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경제 안보’와 ‘기술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될 중요한 결정 앞에서, 시민들은 이들의 만찬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전예약을 일방적으로 취소당하기만 했을 뿐 그저 관객에 불과하다.
특히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IPEF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미 윤석열 정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IPEF 가입을 공식화했다.
그 이름도 생소한 IPEF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미국의 동맹국가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역내 경제협력 구상으로서 ‘디지털을 포함한 공정하고 탄력적인 무역’, ‘공급망 회복력’,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화’, ‘조세와 반부패’ 등과 관련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협상 주제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듯이 이는 디지털, 청정에너지, 탈탄소 산업과 연관된 산업 구조조정과 연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IPEF 구상에는 노동자 권리 보장을 포함한 노동환경 개선, 환경 보호 및 기후변화 대응 등 환경의 지속가능성 문제, 미국 농산물 관세 인하 및 농산물 시장 개방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는 바 이는 노동자, 농민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IPEF 가입을 급하게 결정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노동자 단체, 농민단체, 시민단체의 참여와 소통에 기반하여 이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 3월 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첫 ‘민관 TF 회의’를 개최한 이래 IPEF의 각 분야, 즉 디지털,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화, 공급망 회복력 분야 ‘민관 대책회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의 입장을 대표할 참석자는 단 한 명도 초대하지 않았다.
지방선거와 IPEF 가입, 직관적으로 연관성이 파악되지 않는 두 가지의 이벤트지만 그 결과는 시민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정 과정에 시민사회의 참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시민들의 삶은 국가와 자본의 결정에 순순히 종속되면 되는 것인가? 시민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세계는 국가와 자본의 식민지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한 마디로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의 주인이 되어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스스로 하는 것이다. 열악한 상황이지만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우리는 주장한다. 정치권력과 자본이 시민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자본이 시민들을 위해서 복무하는 지방권력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