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경(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이번 주 시민건강논평은 정부의 방침에서 드러나는 민영화의 흐름과 맞물리는 보건의료 영역의 민영화를 우려한 바 있다(바로가기). 공공서비스의 시장화는 필연적으로 민영화와 연결되는데, 시장화는 부분적으로는 공공지출을 줄이고 중앙집중식 공공서비스 제공 주체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대신 민간영역이 진출하여 이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년 동안 많은 유럽국가의 사회정책 영역에서 영향력을 가져온 접근방식이기도 하다.
공공기관 혁신이나 지방의료원의 대학병원 위탁같은 정책의 추진은 한편으로는 큰 흐름에서 시장화의 내용을 담는 동시에 비효율적으로 중앙집중화된 공공서비스의 분권화라는 틀을 동반하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지역분권은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나눔으로써 지역의 역량을 강화하여 지역불평등을 완화하며 지역 특수적 맥락과 지역주민의 필요에 맞추어 정책결정과 서비스 제공을 할 수 있다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얼핏 보면 전혀 다른 명분과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분권화와 시장화는 유럽과 남미 국가들의 흐름이 보여주듯이 교묘하게 연결되어 종종 시장화 개혁을 정당화하는 원칙으로서 분권화가 제시되기도 한다. 오늘은 복잡해 보이는 공공서비스의 분권화와 시장화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영국 리즈대학교 찰스 움니 교수팀의 연구를 소개한다(논문 바로가기: 신자유주의적 공공서비스의 시장화와 지역 계획, 프랑스 병원의 사례).
연구진은 프랑스의 병원 정책을 조사하기 위하여 주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학자, 노조 간부, 공공병원 관리자, 민간병원 대리인, 정책결정자, 활동가를 포함한 25명에게 반구조화된 인터뷰를 수행하고 수집한 자료에 대해 질적분석을 실시하였다.
프랑스의 병원 시스템은 이차세계대전 이후 민간부문이 상대적으로 크게 형성되었으며 공공과 민간영역 사이의 노동 시장 분리로 인해 직접 경쟁은 적은 편이었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 공공행정은 느리고 불균등하게 분권화 과정을 거쳐왔다. 프랑스 병원 체계의 변화가 이 연구의 사례로 꼽힌 이유는 지역화의 흐름과 동시에 병원 재정과 관련해서는 빠르게 시장화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병원 예산은 총액예산제가 기본이었으나 사르코지 대통령 이후 포괄수가제(이하 DRG)가 강력하게 실시되었다. 이는 환자 순환을 늘려야 예산이 늘어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기업병원’과 ‘소비자로서의 환자’ 담론의 가속화와 더불어 시장화의 촉진 기제로 작동했다. 여기에 민간주체도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논리가 더해지며, 시장화는 공적 예산의 감축과 함께 민간영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지역 주 정부는 이러한 과정에 밀접하고도 모호한 형태로 관여했는데, 이와 관련된 부처가 바로 2009년 병원개혁법의 통과로 2010년 기존의 지방병원청을 포함한 7개의 지방보건행정 관련 기관들이 통폐합되며 창설된 지방보건청(Agences Regionales de Santé, 이하 ARS)이다. 지방보건청은 전국 26개 지역에 설치되어 크게 공공보건 업무와 지역의 의료공급 규제의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지역보건의료계획을 기획하고 지역의 의료기관 설립이나 병상규모 조정과 관련하여 허가와 계약의 정책수단을 활용하며 공급을 규제하는 권한을 지닌다(김대중, 2012).
인터뷰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지역의 기획 역량을 늘리는 방향을 긍정하고 그 필요를 주장하기는 했지만, 저자들은 중앙과 지역의 긴장관계, 분권화와 시장화 사이의 관계에서 세 가지로 요약되는 현상이 동반됨을 파악했다.
첫째, 예산 삭감에 대한 중앙의 압력은 지역의 정책결정 역량을 약화시키고 지방보건청(ARS)이 지역에서 민영화 집행자의 역할을 맡게 했다. 본래 ARS의 설치는 개념적으로는 단지 하위조직 관리자의 권한이 증가하는 형태의 행정분권만을 의미하기보다는 지역의 정책결정 권한을 이양하는, 보다 실질적인 형태의 정치적 분권과 더 유사하며 재정분권이 동반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뷰 결과 주요 정보 제공자들은 ARS가 정치적 분권보다는 행정 분권에 더 가까웠으며, 실질적인 분권적 기획 역할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기보다는 중앙부처에 종속된 탈집중 방식의 운영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내렸다. ARS의 이사는 중앙에 의해 임면되지만 빠르게 이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들은 지역 상황에 따라 중앙의 지침을 적용시키는 역할을 했다. 특히 공공병원의 통합, 폐쇄, 공공 공급 감소에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형 개인병원의 출현 촉진과 같이 중앙이 주도하는 예산 제한의 최전선 집행자 기능을 수행했다. 저자들은 이러한 약점이 중앙에서 주도하는 시장적 접근에 의해 악화된다고 주장한다.
둘째, 시장화는 지역의 기획역량을 약화시키는 중앙집권적 압력을 발생시켰다. T2A(프랑스 병원의 예산결정수단인 DRG 시스템을 이르는 표현)는 지역 내부의 우선순위나 자체 인센티브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고 중앙에서 주도하는 형태다. 예컨대, 인터뷰에 따르면 ARS가 다른 병원과의 협력을 통한 조정을 요청했을 때에도 T2A 시스템에서는 수익성을 위해 병원 간 책임 전가와 환자 떠넘기기를 촉진한다고 평가했다. 이와 같이 중앙에서 부과하는 점점 더 긴축적인 시장 체계는 지역 필요에 기초하는 주도적인 역량을 악화시킨다.
마지막 현상은 지역의 기획주체와 민간부문 간에 갈등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ARS 이사들은 중앙의 지역 대표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공공부문의 긴축에 반대하는 지역 시위에서 주된 비판을 받기도 하고, 반대로 민간 부문 행위자들(이들은 건전한 재정의 지지자로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공공재정의 긴축을 옹호하는 정치적 목소리를 강화한다)로부터 시장화의 주요 걸림돌로 인식되는 양쪽의 부담을 지고 있다. 지역 행위자들은 통상 중앙에 비해 지역사회의 압력에 더 취약하므로 이와 같은 지역 내 역학을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보건의료 영역에서는 고령화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건강서비스와 지속적이고 조정된 지역 통합돌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코로나19 판데믹 같은 상황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신속한 전달체계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공공서비스의 분권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소개한 연구의 결과처럼 공공서비스의 분권화는 그 자체로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으며 중앙과 지역, 공공과 민간 행위자 사이의 복잡한 역동을 사이에 두고 움직여나간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매우 중앙 집중적 구조로서 진정한 의미의 분권화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최근 보건의료정책에서 나타나는 권역과 지역 책임의료기관 지정이나 전담조직의 신설, 지역별 각종 지원단 신설과 지청의 설치, 보건 관련 지역계획 수립의 확대와 같은 흐름 속에서 프랑스 병원의 사례는 분권화, 민영화, 시장화와 관련해 더 날카로운 시선을 가져야 할 긴장감을 준다.
* 서지정보
-Umney, C., & Coderre-LaPalme, G. (2021). Marketisation and regional planning in neoliberal public services: Evidence from French hospitals. Capital & Class, 03098168211054798.
-김대중(2012). 프랑스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와 시사점. 보건복지 이슈 앤 포커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