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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믹스(social mix), 거주 형태의 혼합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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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사회적 혼합’ 또는 ‘계층 혼화’라는 뜻을 지닌 소셜믹스(social mix)는 보통 공동주택 단지 내에 분양 세대와 임대 세대를 함께 조성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빈부 격차는 치안, 교육, 교통, 근린생활시설 등 주거 환경의 격차로도 이어지는데 이러한 차이는 궁극적으로 사회 갈등을 야기한다. 소셜믹스는 다양한 사회 계층이 한 단지내에 거주함으로써 주거지 분리에 따른 사회 계층간 격차를 줄이고 사회통합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소셜믹스 정책이 도입된 지는 오래되었는데 사회주택 비중이 높은 네덜란드, 오스트리아는 소셜믹스의 성공사례로 대표되지만, 영국이나 프랑스는 오히려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어 실패한 사례로 보고된다.

 

한국의 경우 2003년 서울시에서 처음 소셜믹스 정책을 도입한 후 재개발 및 재건축 주택단지에 적용하고 있지만 처음 목적한 바를 충분히 달성하지는 못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 소셜믹스를 검색해보면 사회통합보다는 분양 거주민과 임대 거주민 사이의 차별과 배제, 갈등을 다룬 기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관련 기사). 혼합단지임에도 불구하고 노인정, 체육시설, 북카페, 주차 등 공용 편의시설 이용은 물론 심지어 단지 운영에 대한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분양, 임대에 따라 차별이 존재한다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갈등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쌍방향 의사소통이 필요하지만, 현행 공통주택관리법에는 혼합주택단지 관리 책임이 입주자대표회의(분양주택세대)와 임대사업자(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로 이원화되어 있다. 따라서 실거주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적으로 열세이고, 관리면적이 적은 임대주택 거주민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한 단지 내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 별로 적용되는 법이 다른 것도 문제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으나 관련 부처인 서울시와 국토부의 소극적인 태도 역시 비난을 피하긴 어렵다.

 

하지만 20년 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으며(관련기사), SH공사에서 공공주택 입주민의 생애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데이터를 공개함에 따라 앞으로 연구를 통해 정책이 개선되리라 기대한다(관련기사). 오늘 소개할 논문은 국제학술지 <환경연구와 공중보건>에 실린 서울시 공공임대주택 거주민들이 경험하는 차별의 영향에 대해 분석한 전희정교수팀의 연구이다(논문 바로가기 ☞ 공공임대주택 거주민에 대한 차별이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 : 소셜믹스와 독립형 공공임대주택 비교 연구).

 

연구진은 2017년 서울시 공공임대주택 패널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소셜믹스, 즉 혼합주택단지와 독립형 공공임대주택단지 거주민을 대상으로 차별이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과 커뮤니티 기반활동의 조절 효과를 비교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독립형 공공임대주택단지 거주민에 비해 혼합주택단지 거주민이 임대주택에 거주하며 경험한 차별이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결과는 공공임대주택 거주민의 차별 경험과 스트레스 간의 높은 상관성을 고려하였을 때 분양 세대와 임대 세대를 함께 조성한 소셜믹스 정책이 사회적 배제 문제를 해결하고, 임대세대 거주민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앞으로 단지 외관이나 내부 구조로 분양 세대와 임대 세대를 구분 짓지 않고, 네덜란드처럼 중산층까지 소셜믹스에 유입시킨다면 긍정적인 효과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연구진은 지역사회 기반활동이 차별 경험과 스트레스의 관계에 어떤 조절효과를 주는지 확인한 결과, 주민조직 및 모임(노인회, 임차인대표회의 등)에 참여하는 것은 영향이 없었으나 커뮤니티 시설(경로당, 운동시설 등)을 이용하는 것은 독립형 공공임대주택 거주민의 차별 경험과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한국의 경우 독립형 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이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여기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방안으로 입주민의 요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커뮤니티 시설의 질을 높이고, 커뮤니티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사회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은 정부와 민간 모두의 참여가 필요한 영역이다. 당장의 주거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공공임대주택과 관련된 물리적 환경 문제와 사회적 차별은 또 다른 건강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러므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양적인 확대와 함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당연히 관련 법률의 개선도 동반되어야 한다. 올해 초 서울시는 공공주택 개선방안을 담은 ‘주거복지 강화 4대 핵심과제’를 발표하였다(보도자료). 여기에는 ‘완전한 소셜믹스 실현’과 ‘공공주택 품질 개선’이 포함되어 있다. 소셜믹스가 단순한 거주 형태의 혼합을 넘어서 공동체적 연대를 구축하는 삶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 서지사항

Jun, H. J., & Han, S. (2020). The effect of discrimination on stress among public housing residents: A comparative study between social-mix and independent public housing complexes.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17(18), 1–16. https://doi.org/10.3390/ijerph1718678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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