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228호 ‘건강한 건강 수다’>
글: 김유미 대학에서 예방의학을 가르쳐요.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법을 연구해요.
그림: 한승무 삼촌
길가의 주유소를 지나다가 ‘무연휘발유’라는 말을 본 적 있을 거야. 무연휘발유란 연이 없는 연료라는 말인데, 연이 바로 납이야. 납의 원소기호 ‘Pb’는 물을 전달하는 배관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해. 납은 흔하고, 무겁고, 안정되고, 가공하기 좋고 쓰임새가 많은 중금속이야. 그리고 위험해. 그리스·로마 신화 속 사랑의 신인 큐피드는 사랑에 빠지게 하는 황금 화살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을 혐오하게 하는 납 화살도 가지고 있었어. 지금도 많은 총알에 납이 쓰여. 납은 무거워서 무게 추로도 쓰는데, 낚시할 때 쓰는 봉돌이라는 낚시 추에도 들어가. 기술이 좋은 낚시꾼들은 부력을 맞추기 위해 납 봉돌을 깎아 무게를 맞추는데, 그야말로 납을 바로 강과 바다에 버리는 셈이야. 만약 강가나 바닷가의 낚시터에서 봉돌을 발견한다면 어른들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회수해야 해.
상수도 배관에서 납의 원소기호가 유래했을 만큼, 배관에는 아직도 납 성분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 2015년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시에서 수돗물을 마신 십만 명 이상 시민이 납에 노출된 사건이 있었어. 시의 재정을 아껴보겠다고 상수원을 급하게 바꾸었는데, 이 상수원이 공업용수로도 못 쓸 정도로 오염된 물이었던 데다가, 오염된 물이 상수도 배관의 코팅을 벗겨내서 납이 녹아나게 된 것이지. 시민들은 당장 쓰는 물이 냄새도 나고 고약하게 되어서 매우 걱정했는데, 아이들 피검사를 해보니 납 농도가 매우 증가한 거야. 부랴부랴 상수원을 다시 바꾸었지만 납 농도는 다시 낮아지지 않았다고 해.
1921년 자동차 엔진 성능을 높일 수 있도록 휘발유에 첨가하는 납 물질이 개발되어 유연휘발유가 불티나게 팔리게 되었어. 이렇게 휘발유에 첨가된 납이 배기가스로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음을 밝힌 과학자는 클레어 패터슨이야. 패터슨은 정확한 지구 나이를 재기 위한 연구를 하는 중에 우리 주변에 납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특히 휘발유에 납이 첨가된 시점 이후에 매우 높아진 것을 알아내게 되었지. 그 뒤 많은 연구를 통해 납이 임신 시 태아의 신경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아이들의 지능발달과 학업 성취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 증명되었어. 미국의 어떤 연구는 한 사람당 아이큐 2.6점을 낮춘 정도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기도 했어. 공기 중에 납을 뿜어내던 유연휘발유는 1986년 미국에서 금지되었고, 한국에서도 1993년 퇴출당했어.
우리가 매일 호흡하고 마시는 공기와 물은 너무나 크고 많아서 인간이 만든 작은 실수와 독 정도는 희석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할 수도 있어. 하지만 오히려 매일 마시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알기도 어렵고, 문제가 생기면 너무나 큰 여파가 남기도 해. 당장 적은 돈을 아껴보겠다는 성급한 결정으로 납이든 물을 마시게 된 플린트시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지. 그리고 유연휘발유를 퇴출해서 납으로 오염된 공기를 마실 위험이 줄어들게 된 것도 사람이 한 결정이야.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무엇이 문제를 바로잡는 결정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