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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지역주민의 통합적 건강돌봄을 위해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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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경(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역소멸이 충격적인 단어가 된 것도 예전인 듯, 이제는 소멸고위험지역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흔한 시대가 되었다. 인구가 감소하는 농어촌 지역은 주요 생활인프라가 점차 취약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아무리 교통망이 개선되더라도 다수의 농촌주민은 대도시나 거점도시보다는 거주하는 읍면 중심의 기초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주민의 일상적 활동무대로서 근거리 농촌생활권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뜻이다(보고서 바로가기).

 

일상적인 보건의료와 돌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구밀도가 낮을수록, 이동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인구가 많을수록, 알아서 찾아와 이용할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보건의료와 돌봄체계에서 더 많은 이들이 누락되고 틈새에서 길을 잃는다. 요즘엔 지역사회 통합돌봄 서비스를 비롯해 여러 제공자와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지만 서비스 사이를 연결해주는 체계(결국은 사람이다!)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의료취약지역의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보건진료소는 과거에 비해 오히려 기능이 점차 축소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체 보건진료소의 약 1/10은 전담공무원이 공백인 상태에서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인력 차출로 인해 운영상황은 더욱 취약해졌을 것으로 파악된다(관련기사).

 

한국과 똑같지는 않지만 이미 많은 국가들이 도서지역이 밀집한 곳, 넓은 대지에 적은 수의 사람들이 흩어져 살아가는 교외 지역에서 어떻게 주민들의 필요에 맞추어 건강과 사회복지 서비스를 포함한 통합적 케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다양한 시스템을 추진해나가고 있다. 최근 국제학술지 <BMC 보건서비스연구>에는 캐나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통합적 보건의료 프로그램 사례에 관한 연구가 실렸다(논문 바로가기 통합적이고 수용적이며 반응적인 보건의료체계 구축하기: 캐나다 온타리오 지역사회 구급의료의 교훈).

 

2006년 온타리오주는 관할지역의 지역사회기반 재택 돌봄 서비스를 조정하기 위해 지역 건강 통합 네트워크(LHINs, Local Health Integration Networks)를 설치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2018년 온타리오 건강팀(OHTs, Ontario Health Teams)이라는 새로운 체계로 대체되었다. 이 조직은 관할지역 내 일차의료, 병원,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를 포함하는 여러 제공자들의 자치적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약 20여년 사이에 지역주민들의 보건의료와 돌봄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온타리오 구급요원에 의한 새로운 서비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응급대응과 이송의 역할을 넘어 다양한 보건의료 직역들과 팀을 이루어 예방, 지역사회기반 만성질환 케어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를 ‘지역사회 구급요원(Community Paramedic)’ 이라고 통칭하게 되었다.

 

이에 반응하여 온타리오 정부도 2014년부터는 관련된 예산을 구성하고 지침을 개정하기 시작했다. 실제 온타리오에서 진행중인 지역사회 구급요원 프로그램에는 재택 만성질환 관리가 필요한 노인을 대상으로 한 팀(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케어, 지역사회 이동진료소와 위험환경 개선프로그램, 긴급 케어등이 있고, 정신건강과 위기대응팀(구급요원, 간호사, 사회복지사, 경찰관 등), 완화의료팀, 공중보건 교육과 백신접종팀, 방문 필요사정 및 체계 안내팀, 전환기 관리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주민의 필요에 따라 자생한 프로그램과 이에 반응하는 지방정부라는 맥락은 보건의료체계가 지역사회의 필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풍부한 맥락을 탐색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연구는 반구조화된 인터뷰를 통해 온타리오의 통합 구급요원 케어 모델에 관련된 26명의 사람들(구급요원, 의사, 간호사, 작업/물리치료사)에게 이 모델의 동력, 가능요인과 방해요인을 묻고 질적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세 개의 테마를 도출해냈다.

 

첫 번째로, 이들은 지역의 필요에 민첩하게 반응해야 하는 한편, 체계 수준에서는 경직된 구조·규제·기준·재정 사이의 긴장관계에 대응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필요에 발맞추어 빠르게 도입된 자체 프로그램이 적절했다는 의견과, 다른 한편으로는 거점 병원을 중심으로 한 표준화로 질을 담보하고 평가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존했다.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고 관료체계는 느리며, 혁신을 제안했을 때 위험 회피적인 정부부처에 대한 불신도 발견되었다. 일부 참여자들은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기 위해 규제를 우회하는 접근을 창의적으로 개발해내기도 했다. ‘지역사회 구급요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두 번째로, 전문적 역할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역할을 유연하게 정의하는 것이 강조되었다. 변화에 대한 확신을 가진 핵심적인 리더가 존재했으며 이들은 구급요원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추진했다. 또한 구급요원의 전문성 기저에는 응급하고 모호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빈 곳을 채우고” “필요한 것을 하는” 행동중심의 문화가 있고, 이것이 통합돌봄에도 기여할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설명했다. 구급요원들 중에서 이러한 역할을 거부하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나, 새로운 역할의 개발이 더 넓은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직업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세 번째로, 프로그램 실행에서 예상하지 못한 영향을 미친 사회적 맥락이 언급되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기존 시스템의 실패와 새로운 수요가 발생했기 때문에 내내 규제에 막혀있던 프로그램들이 통과되는 일이 발생했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온타리오 건강팀의 지역 운영위원회와 같은 기존의 관계와 협업 인프라가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이 통과되거나 지연되는 일도 지역사회 구급요원 프로그램의 성공과 실패에 관여한 요인으로 언급되었다.

 

한국의 맥락과 다른 부분이 많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기는 어렵겠지만, 지역주민의 필요에 부응하여 기존에 주어진 역할의 경계를 넓혀나가고 다양한 직역 간 협력과 소통을 통해 체계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저자들은 이 연구가 다룬 사례로부터 지역의 필요에 대응하기 위한 실험적 노력의 필요성과 동시에 이를 지원하고 적절한 방향과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제도화의 역할이 함께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특히 지역보건의료 거버넌스 차원의 적용점으로 지역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충분히 권한을 지닌 지역 리더들과 신뢰를 구축할 것, 지역의 보건인력에 기능적 유연함을 부여할 것, 계속해서 일어나는 지역의 실험적 노력들을 위한 가이드와 법적 허용 범위를 개발하고 전략적으로 표준화를 준비하며 시스템 간 일정정도의 다름을 용인하는 것이 필요함을 제안하였다. 이는 지역 분권화의 바람직한 방향과도 매우 유사하다. 주민들의 필요로부터 지역의 서비스 제공자들이 움직였고 이어서 지역정부가 부응한 흐름은 중앙집중적이고 수직적인 지역보건의료체계에 익숙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지정보

 

Allana, A., Kuluski, K., Tavares, W., & Pinto, A. D. (2022). Building integrated, adaptive and responsive healthcare systems–lessons from paramedicine in Ontario, Canada. BMC Health Services Research, 22(1), 1-16.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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