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경제위기 이후 주거비 증가와 피할 수 있는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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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최근 발표된 2021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주거안전성은 여전히 불안정하다(기사 바로가기). 주택 구매를 위해 소득을 한 푼 안 쓰고 모아야 하는 기간이 늘어났고, 주택 구입을 위해 퇴직 연금을 중도인출한 인원도 증가했다. 끊어진 주거 사다리를 회복하겠다는 정부의 과감한 정책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주거영역에서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불평등은 해묵은 과제로 남아있다. 앞서 서리풀연구통에서 가구의 주거비 증가가 개인 수준의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연구를 소개한 바 있다(바로가기). 주거비는 가구 예산 지출 항목 중에서도 가장 크게 차지하는 항목으로 주거비의 증가는 필수재(의료, 교육 등) 지출을 감소시켜 삶의 질과 건강에 다양하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주거비와 건강의 관계가 인구집단의 수준에서는 어떠할까? 오늘 소개할 연구는 국제학술지 <역학과 지역사회 건강>에 최근 출판된 논문으로 2007-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주거비 상승이 인구집단의 사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논문 바로가기 ☞ 주거비 부담과 피할 수 있는 사망: 2000-2017년 사회 및 주거 정책에 대한 연구).

 

연구진은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경제위기 이후 국가 수준의 주거비 증가와 피할 수 있는 사망, 즉 적절한 사회적/의료적 중재가 있었다면 막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시기에 발생한 사망의 관계에 대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2009년 이후 주거비 상승은 피할 수 있는 사망률, 그중에서도 자살률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에서 관계가 있었다. 경제위기 이후 (1) 많은 사람들이 주택 소유를 포기하면서 되레 임차 시장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2) 실업률의 증가로 가계소득이 감소하면서 주거비 상승추세를 따라잡기 어려워지면서 주거비는 많은 가구들에게 부담 요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불안감과 좌절감을 촉발해 자살, 약물중독으로 인한 사망을 야기할 수 있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한 나라의 사망률은 거시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추론을 지지하는 결과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주거비와 사망률의 관계는 사회정책과 주거정책의 개입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추가분석에 따르면 연금과 실업급여에 대한 공공지출이 많거나, 임대료 상승 규제정책과 공공 주택을 가진 국가들에서 주거비-사망률의 관계가 감소하는 관계를 보였다. 주거정책과 사회정책이 소득에 비해 높은 주거비로 더 많은 고통을 받는 취약계층에게 직접 도움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사회적 불안감과 좌절감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사회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보건학에서 공공 부문의 사회복지지출과 사망률의 관계는 익히 알려진 바 있지만 그 관계가 (다른 정책에 비해 크게 연구되지 않은) 주거 정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 역시 연구 결과에서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의 가구소득대비 주거비 규모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낮은 편이나 대부분 가구의 큰 경제적 부담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고시원 화재참사와 반지하 수재 참사 등 집답지 못한 집이 삶을 삼키는 비극을 막기 위하여 시민사회는 69일간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저지를 위한 국회 앞 철야농성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은 선(善)이 아니다”라며, 2023년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올해 대비 5조원이 삭감된 채 국회를 통과했다(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 시민들의 안정된 삶과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토대인 주거정책에 국가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문의 메시지가 오늘날 한국사회에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서지정보

 

Park G, Grignon M, Young M, et alThe association between housing cost burden and avoidable mortality in wealthy countries: cross-national analysis of social and housing policies, 2000-2017. J Epidemiol Community Health Published Online First: 16 November 2022. doi: 10.1136/jech-2022-219545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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