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안정된 주거비는 건강하지 못한 이들에게 더욱 절실하다

355회 조회됨

 

두레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우리가 살아가는 집은 ‘주거 공간’이 아니라 ‘투기 상품’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어떤 지역 집값이 몇 달 만에 몇 배나 뛰었다는 뉴스들은 알뜰한 저축에 빚을 더해도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남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뿐이다. 그동안 어느 정부든 부동산 대책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았고 이번 정부에서도 주택 공급 확대와 시장 규제를 어우르는 야심찬 계획이 속속 발표되었다 (관련기사: 6.17 종합부동산대책, 이번에는 ‘풍선효과’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값 불안정을 호소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다시 커졌고 (관련기사: 여론조사 ‘행정수도 이전해도 수도권 집값 불안정’ 55%), 주먹구구식 정책이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투기 패러다임에서 피해를 보거나 소외되는 이들은 결국 취약계층이다. 멀리까지 찾아보지 않아도 인간다운 주거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은 이웃에서 쉽게 마주친다. 사회초년생의 월급은 치솟는 전월세 부담을 따라갈 수 없을 뿐더러,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을 구한다 한들 안정된 직장이 아닌 이상 대출을 받기도 쉽지 않다. 저소득층은 소득에 대비해 높은 주거비를 부담하면서도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주거권 보장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다.

 

주거는 여러 경로를 통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주거환경이 좋지 않으면 수면의 질이 낮아지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도 큰 방해가 된다. 내 집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적 안정감을 느낀다는 연구도 있다 (서리풀연구통 “주거 불안, 건강 불평등 더 키운다”). 주거비 부담이 크면 의료서비스나 교육처럼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지고, 정신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거비 부담과 건강에 대한 최근 연구들은 단순하게 영향을 살펴보는 것을 넘어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누구에게 더 크게, 어떤 기전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둔다.

호주 애들레이드대학교 연구팀이 최근 국제 학술지 [도시들 (Cities)]에 발표한 논문은 주거비 부담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에 하나의 근거를 더한다. 주거비 부담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높은 주거비 부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논문 바로가기: 정신건강과 주거비 부담의 새로운 근거: 분위점 회귀분석).

 

연구진은 호주의 15세 이상 20,906명을 대상으로 수집된 2001년부터 2016년까지의 패널자료를 이용해, 주거비 부담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먼저 소득 하위 40%의 사람들 중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사용하는 경우를 ‘주거비 부담 집단’으로 정의했다. 양질의 주거를 위해 자발적으로 주거비를 많이 지출하는 고소득층과 달리, 이들 저소득 집단은 소득 대비 주거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결과변수로는 감정상태, 심리적 스트레스 등을 종합하여 0~100점 척도의 정신요약점수(MCS: Mental Component Summary)를 사용했다. 그리고 분석대상의 정신건강 수준을 분위별로 나누어 패널회귀분석을 실시했다.

 

분석결과 주거비 부담이 없었다가 발생했을 때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고(회귀계수 B=-0.809), 2년 이상 연속적으로 주거비 부담을 경험했을 때 그 영향력이 증가했다(B=-1.084). 하지만 주거비 부담이 3년 이상 연속적으로 발생했을 때의 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정신건강 수준으로 연구대상자를 구분했을 때는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미 정신건강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은 주거비 부담이 발생했을 때 정신건강이 더 안 좋아졌고 (B: -1.839), 주거비 부담이 2~5년 연속적으로 발생했을 때에는 정신건강의 악화 정도가 훨씬 컸다 (5년 이상 주거비 부담 경험 시 B=-5.538). 이에 반해 정신건강이 원래 양호했던 이들은 주거비 부담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작았다. 즉, 전체 연구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주거비 부담과 건강의 관계가 정신건강 수준별로 집단을 나누었더니 나타난 것이다. 주거비 부담이 발생하기 전부터 정신건강이 좋지 않았던 이들은 한부모 가정, 실업자, 세입자, 장애 혹은 질환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은 빈곤, 차별, 실업 같은 정신건강 위험요인에 노출되었을 것이며, 주거비 부담이 증가함에 따라 앞으로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워져 염려, 우울, 두려움을 느낄 가능성이 커졌을 것이다.

 

경제위기가 지속되면 주거 안정성은 직격탄을 가장 먼저 맞을 수 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주거비 지원 신청이 급증했다는 다른 나라의 소식은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오늘 소개한 연구는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비는 정신건강까지 해치는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으며, 그 부정적 영향은 취약계층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논문의 필자들은 자원이 제한적이라면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는 선택적인 개입이라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책적 개입으로 그들의 정신건강을 향상시키고 전체 인구집단의 평균 건강수준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집’만큼 피부에 와 닿는 중요한 문제도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피부에 와 닿는 주거비 안정화 정책은 찾기 힘들어 보인다. 내 집 마련을 장려하고 투기를 규제하는 정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의 주거비를 부담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런 정책은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주거비 부담을 더 고통스럽게 감수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그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주거는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다. 지금과 앞으로의 주거비 안정화 정책은 우리의 건강, 그리고 미래 세대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 서지정보

Emma Baker, Ngoc Thien Anh Pham, Lyrian Daniel, Rebecca Bentley. New evidence on mental health and housing affordability in cities: A quantile regression approach. Cities 2020;96:102455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정기 후원을 하기 어려운 분들도 소액 결제로 일시 후원이 가능합니다.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