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문

[고래가 그랬어: 건강한 건강 수다] 공단이 내 병원비를 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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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230호 ‘건강한 건강 수다’>

글: 정혜승 이모는 아플 걱정, 공부할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변호사예요.
그림: 오요우 삼촌

 

감기에 걸려서, 혹은 어딘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온 뒤 병원비 영수증을 본 일이 있나요? 영수증에 ‘본인부담금’과 ‘공단부담금’이라는 항목이 적혀있을 거예요. 본인부담금은 내가 낼 돈, 공단부담금은 공단이 낼 돈이라는 뜻이에요. 여기서 공단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말하고요. 그런데 내 병원비를 왜 공단에서 부담할까요?

 

거의 모든 나라에는 헌법이 있어요. 헌법은 그 나라를 어떻게 구성하고 시민들이 어떤 권리와 의무를 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내요. 한국의 헌법 제23조 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말해요. 여기서 ‘계약의 자유’가 나와요. 누군가 상대방에게 물건 또는 서비스를 거래할지 말지, 거래한다면 얼마에 할지 등을 각자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또 헌법 34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제3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해요. 인간답게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어도 주변 환경이 건강하지 않거나 아픈데 병원에 갈 돈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어떡해요? 그래서 국가는 시민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해야 하고,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을 보호해야 해요.

 

헌법 이야기가 길었죠? 공단이 여러분의 병원비를 부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의사나 병원 경영자들도 ‘계약의 자유’원칙에 따른다면 원하는 환자만 치료한다거나 병원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국가에는 사회보장 및 복지 증진에 노력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의사가 환자를 골라서 진료할 수 없어요. 또 병원비가 지나치게 비싸 치료를 못 받는 환자들이 없도록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만들었어요.

 

 

국민건강보험제도는 보험 재정에서 진료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해 주는 제도예요. 이를 위해 한국의 모든 성인은 적든 많든 보험료를 의무적으로 내요. 어떤 사람들은 “나는 아프지도 않고 건강한데 왜 평소에 보험료를 내야 하죠?”라고 말해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만약 원하는 사람만 보험료를 내도록 한다면 지금 당장 돈이 많거나 건강한 사람을 보험료를 내지 않아,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줄 돈이 없을거예요. 지금은 건강하고 돈이 많은 사람도 어느 순간 건강도 직업도 잃고 병원비를 낼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몰라요. 그래서 미리 보험금을 쌓아 놓아 다른 이들의 위험에 대비하고 나중에는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사회보험의 원리예요.

 

또 어떤 병원들은 “우리는 건강보험에서 비용을 안 받아도 되니까 치료하고 싶은 환자에게 마음대로 진료비를 받고 싶어요.”라고 해요. 만약 그렇게 병원 마음대로 운영하게 한다면, 좋은 진료를 해 환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병원은 비싸게 진료비를 책정해서 결국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만 갈 수 있게 될거예요. 그러면 모든 시민의 건강을 동등하게 보장하자는 건강보험제도의 취지가 흔들리잖아요.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병원의 자유가 어쩔 수 없이 제한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이렇게 헌법의 원리를 토대로 여러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조화롭게 고려해서 만들었어요. 앞으로 이 제도를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더라도, 헌법의 원칙을 생각하면서 시민 모두의 이익을 위해 해결해 나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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