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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은 어떻게 고통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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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의 갈등은 자본주의 사회의 내재적 특성이다.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은 말 그대로 일하는 시간이지만, 자본가는 자신이 구매한 상품으로의 노동력을 소비하는 시간이다. 더욱 중요하게 자본가에게 이 시간은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토대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각각 노동시간 늘리기와 줄이기에 있고, 이를 둘러싼 계급투쟁은 따라서 필연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시간 노동을 지지하는 정부의 ‘노동개혁’안은 분명하고 “과감한” 계급정치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노동시간은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매개한다. 당연하게도 노동시간을 둘러싼 힘 역시 노동보다는 그 반대편에서 더욱 크다. 자본의 힘이 드러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절대적인 노동시간 늘리기. 야근이나 주말 또는 공휴일 근무를 요구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첫 번째 기제는 법으로 정해진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초과근무 12시간보다 더 길게 일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라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안과, 그러겠다고 응답한 정부의 노동시장 개편안의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둘째, 노동 강도 높이기. 시간당 생산량을 늘리는 경우를 의미한다. 시간당 최대한 많은 건수를 배달해야 하는 택배 노동 구조를 떠올려도 좋다. 셋째, 시간당 노동력 가치 절감하기. 최저임금(최저임금의 기본 단위 역시 시간이다) 수준의 낮은 기본급을 주거나, 비전형적인 고용 계약을 통해 4대 보험 등의 복리후생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경우다.

 

 

살펴보았듯이 자본의 힘은 이윤으로만 결과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고통으로 결과한다. 노동시간 연장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 그리고 높은 업무강도는 과로사, 우울, 수면장애, 심장질환, 암 등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회생활이 단절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장시간 노동과 강도 높은 일이 허용되는 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은 없다.

 

이 시간은 또 어떤 시간인가? 바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시간이다. 예컨대 자본주의적 시간 체제는 마찬가지로 젠더 이데올로기를 기반 삼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이다. 하루 24시간은 크게 일하는 시간과 이외 생활하는 시간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생활시간은 줄어든다. 시간 배치는 남성의 시간과 생애주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따라서 오랜 기간 ‘돌봄’은 노동시간이 아니라 생활시간에 배치되었다. 이윤은 돌봄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래서 생활시간 단축이 부담스럽지 않은 남성 노동자를 통해 생산되고, 그 결과 남성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사회의 특권을 더 많이 가지게 된다. 아빠 보상(premium)과 엄마 처벌(penalty)이라고 이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따로 있을 정도니 그 보편성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 노동, 시간제 노동 등 유연한 노동의 규모가 커지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기제는 노동자 삶에 더욱 치명적이다. 고용 형태가 다양한 만큼 이들의 노동시간은 좀 더 복잡하다.

 

예컨대 이들 가운데 일부는 노동시간이 곧바로 임금을 결정한다. 임금에 시간 외 다른 함수는 없다. 고용 안정과 권리는 좀처럼 보장되기 어렵고, 권한을 주장하기도 어렵다. 주어진 선택지는 일을 더 할지 말지뿐이다. 따라서 먹고 살기 위한 이들의 길고 모순된 노동은 자발적이되, 자발적이지 않다. 매일을 ‘바짝’ 일해야 살아지는 이들에게 장시간 노동할 권리, 그리고 노사 자율 합의라는 명분은 정말이지 터무니없다.

 

시간이 더 이상 노동의 기본 단위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시간이 아닌 ‘건수’를 단위로 일하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여전히 이들 노동의 주요 구성요소다. 자유로운 계약, 자유로운 시간 사용, 그렇지만 높은 임금 보상이라는 광고가 허위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실질적 노동시간은 더욱 길어졌으며, 많은 경우 예측 불가능한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노동과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권은 더욱 낮아졌다. 자본이 교묘하게 펼쳐둔 자기 착취 그물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까?

 

앞서 논의한 모든 문제가 집약된 곳이 있다. 바로 보건의료 노동시장이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노동 규제가 그나마 법적으로 마련되어 있지만, 보건업은 이마저 특례업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들의 장시간 노동은 예사다. 코로나 대유행에서만 일어나는 예외가 아니다.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는 ‘공짜 노동시간’도 잘 알려져 있다. 응급, 환자 안전 등 여러 특수적 상황으로 인해 돌발적으로 업무에 복귀를 요구받는 경우도 많다. 보건의료 노동자는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가?

 

보건의료 노동자의 높은 업무강도 역시 넘어갈 수 없다. 예컨대 의사와 간호사 1인 당 돌보아야 하는 환자 수가 많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로 인한 높은 업무강도는 장시간 노동으로 또다시 이어진다. 파견 또는 용역의 형태로 병원과 고용 관계를 맺는 청소노동자, 시설관리 노동자의 노동 가치 절하는 전형적이다. 더욱이 하루 24시간 일하는 간병노동자와 요양보호사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열악하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은 좋은 건강 돌봄의 핵심이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노동할 수 있는 시간은 의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들에게 고통으로 결과하는 노동시간의 배경에는 민간중심의 보건의료체계, 자본주의적 의료 생산, 의료와 돌봄의 분리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한다는 점에서 그 대안은 노동시장 규제를 넘어 보건의료 생산 체계의 민주적 공공성 강화를 상상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본이 아닌 노동의 시간을 상상하는 용기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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