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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건강권을 위한 글로벌 건강 운동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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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세계 각지의 건강 운동 활동가들은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하고, 건강불평등을 야기하는 기저의 시스템 및 사회적 결정 요인에 도전하고자 노력해오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건강 위기가 종식되지도 않은 채, 판데믹 대응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에 따른 복합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건강 운동의 글로벌 연대 강화는 더욱 절실한 시대적 요청이 되고 있다. 오늘 살펴볼 무솔리노 연구팀의 논문은, 보편적 건강권을 달성하기 위해 그간 이루어져 온 글로벌 시민사회 운동의 전략과 딜레마를 탐구함으로써, 시민사회 운동의 형성과 강화에 주는 교훈을 도출하고자 하였다(논문 바로보기 ☞ 글로벌 건강 활동가들이 모두의 건강을 위한 사회 운동 구축에 주는 교훈).

 

연구팀은 분석을 위해 2016년 1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민중건강운동(People’s Health Movement)의 활동가 15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민중건강운동은 2000년에 설립된 활동가 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로서, 1978년 알마아타 선언에서 채택된 “모든 사람에게 건강을(Health for All)”이라는 목표가 2000년 현재 달성에 실패하였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민중건강운동은 건강을 위한 투쟁은 곧 정치적 투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며,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글로벌 연대 운동을 펼쳐왔다. 연구 참여자들은 모두 민중건강운동의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에서 공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이들이다. 연구자들은 반구조화된 인터뷰를 통해 활동가들이 현재 관여하고 있는 정책 이슈, 활동 과정에서 배운 점 등을 물었고, 그 내용에 대하여 질적 분석을 수행하였다.

 

분석 결과, 그동안 민중건강운동 활동가들은 사회 운동의 개발, 역량 형성, 캠페인 및 정치적 거버넌스에의 참여, 지식 생산 및 확산에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몇 가지 딜레마에 직면했다.

 

첫째, 글로벌 건강 운동은 다른 부문의 사회 운동과 마찬가지로 한 가지의 정책 개혁에 집중할지, 혹은 건강 정책을 조건짓고 제약하는 보다 폭넓은 사회경제적이고 정치적인 구조로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시키는 노력에 집중할지 전략의 긴장을 경험하고 있다. 이에 민중건강운동은 건강 문제의 개인화‧정책화의 경향을 가속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춰왔다.

 

둘째, 민중건강운동은 시민사회 공간의 탈정치화에 도전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1990년대 이후 ‘제3섹터’ 혹은 ‘사회적 경제’ 등의 이름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NGO들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정부 및 국제기구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게 되었는데, 이러한 기관들은 정치적‧이념적 기반이 부재한 경우가 많다. 민중건강운동 활동가들은 건강 부문 NGO가 정치적 활동을 펼치기보다는 비즈니스 혹은 전문적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것 같다고 느꼈으며, 이러한 시민사회 환경의 변화가 자신들의 정치적 활동을 제약한다고 보았다. 활동가들은 이에 대응해 민중건강운동의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하거나,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입장과 상황을 조명하는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시민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확대‧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셋째, 지역과 글로벌 간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도전이 있다. 세계화 시대에 지역과 글로벌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활동가들은 지역과 글로벌에서의 균형 있는 활동을 강조하였고, 어느 한 쪽에만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경계하였다. 또한, 지역적이고 즉각적인 이슈에 관여할 때는, 이를 전체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하는 방식으로 다루고자 노력하였다.

 

코로나19 감염 및 백신 분배의 불평등, 국가 간 인구 수명 격차 증가와 같은 글로벌 수준의 문제들과 더불어, 여러 지역 사회에서 당면하고 있는 건강과 보건의료의 문제들 역시도 연원을 따져 보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글로벌 수준과 복잡하게 얽힌 구조적‧정치적 층위 속에 존재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편적 건강 증진을 위한 글로벌 연대의 강화는 더더욱 중요하다. 어떻게 연대하고 투쟁해야 할지에 대한 단초로서 지난 20년간 이어져온 민중건강운동의 사례를 통해 현재 글로벌 시민사회운동이 처한 고민과 도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논문을 살펴보는 의미가 있다. 시민사회 영역이 탈정치화되고 민주주의의 공간이 축소되는 가운데, 지역적이고 당면한 이슈들에 대응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글로벌 수준에서 구조적‧정치적인 관점을 가지고 세계 시민으로서 집단적 연대의 힘을 형성해나가려는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더 큰 변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서지사항

 

Musolino, C., Baum, F., Freeman, T., Labonté, R., Bodini, C., & Sanders, D. (2020). Global health activists’ lessons on building social movements for Health for All. International Journal for Equity in Health, 19(1), 1-1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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