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시정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서울 구룡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번 화재로 약 60채의 주택이 소실되었고, 6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구룡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집단 무허가촌’이라고도 불리는 구룡마을에는 가건물 형태의 주택이 밀집되어 있어서 화재 위험이 높다.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2009년부터 현재까지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화재 건 수만 해도 최소 16건이다(☞기사 바로가기).
화재에만 취약한 것은 아니다. 작년 여름에는 폭우로 인해 36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번 사고에서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긴 하지만 구룡마을에서 주거 재난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결코 ‘다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 타오른 불이 꺼지자 구룡마을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었다. 한 사회 내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집단들은 서로 다른 정도로 주목받으며, 서로 다른 정도로 말할 권리를 부여받는다.
빈곤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조문영은 누가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인가에 대해 규정하기를 넘어, 프레카리아트 내 위계에 주목하면서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프레카리아트는 ‘Proletariat(프롤레타리아트)’와 ‘precarious(불안정한)’이라는 형용사가 합쳐진 단어다. 이 단어는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노동 시장이 유연화되면서 발생한 노동 불안정과 삶의 불안정의 얽힘을 탐색할 때 주로 사용된다.
조문영은 청년들을 프레카리에트에 포함시키지만, 이 집단 내부에 위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정부의 여러 플랫폼이나, 언론의 칼럼을 통해 청년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의제화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청년은 교육자본과 문화자본을 갖춘 청년에 국한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들을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라고 명명한다.
오늘은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들이 또 다른 프레카리아트(빈민)들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안정성을 드러낸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 서울의 교육받은 청년과 도시 빈민). 문화인류학과 교수이기도 한 연구자는 2018년 <빈곤의 인류학> 수업에서 40여 명의 수강생들과 함께 한국의 반빈곤 활동가 10명을 심층 인터뷰하는 협동 프로젝트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프로젝트 연구는 한 학기라는 짧은 연구 기간을 고려하여, 빈민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방식 대신에 반빈곤 활동가를 인터뷰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이들이 곧 연구 대상이 된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들이다.
연구에 의하면 ‘말할 수 있는’ 청년 프레카리아트들에게 불안정성이란 공정성에 대한 위협이었다. 논골신용협동조합 이사장과 인터뷰에서 한 학생은 신용협동조합에서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 물었다. 이사장이 무임승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아해하자, 다른 학생이 무임승차의 뜻을 설명하며 ‘청년들이 무임승차 문제에 민감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프레카리아트 간의 마주침에서 발견되는 첫 번째 충돌이다. 연구자는 이 장면에서 피할 수 없는 경쟁과 자기계발을 체화해 온 청년들이 사회 내에서 자신들의 위치가 정당하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읽어낸다.
오랜 시간 체화된 감각의 흔적은 또 다른 장면에서도 발견되었다. 연구자의 강의에서 학생들은 자립을 빈곤 통치의 기술로 보는 연구들에 관심을 보였으나, 몇몇 학생들은 인터뷰를 위해 ‘활동가들은 홈리스의 자립을 어떻게 돕는가’라는 질문을 준비했다. 여전히 자립을 ‘공정한 보상’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달성해야 할 목표로 바라본 것이다.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들, 특히 여성 청년에게 있어 불안정성이란 여성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했다. 프로젝트 초반에 학생들이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에게 질문한 것 중에는 여성 활동가로서 겪는 어려움이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 다수였다. 이와 관련해 활동가는 젠더와 빈곤 사이의 교차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연구자는 빈민들이 잠재적 위협을 재현하는 정치에 취약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투 운동 이후 언론의 성범죄 보도가 사회적 시스템보다 개인 범죄자에 초점을 맞추어 가난한 남성들이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한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학생들의 관점이 확장되었고, 몇몇 학생은 빈곤 연구와 활동을 지속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교육자본과 문화자본을 갖춘 프레카리아트들이 자신의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다른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차별과 위계가 재생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문제적 현상은 빈민의 타자성을 전제하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빈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정의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작년에 출간된 연구자의 저서 『빈곤 과정』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연구자는 빈곤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빈곤의 외부인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금 사회는 노력을 공정의 기준으로 삼고서 빈민을 차별하고 빈곤을 혐오한다. 하지만 불안정한 노동과 삶의 조건 속에 힘겨워 하고 있는 우리 대부분 역시 빈곤의 과정 속에 있는 것 아닐까? 빈곤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새롭게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서로 돌보고 의존하는 대안적 사회를 만들어가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서지 정보
Cho, M. Y. (2022). The Precariat That Can Speak: The Politics of Encounters between the Educated Youth and the Urban Poor in Seoul. Current Anthropology, 63(5), 491-518.
조문영, 『빈곤 과정: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글항아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