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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집’은 피할 수 있는 ‘사회적 가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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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최근 난방비가 크게 올랐다. 난방에 필요한 천연가스의 가격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급등하여 가스요금이 인상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미국, 영국, 독일 등 국가는 2022년 대비 가스요금이 2~4배 상승했지만 한국의 가스요금은 이들 국가 대비 23%에서 60% 수준이라고 설명하며 취약계층 에너지바우처 지원 금액과 가스요금 할인율의 확대 계획을 밝혔다(☞관련기사 바로가기: 대통령실, ‘난방비 폭등’에 “에너지바우처 2배 인상”). 

 

난방이 되지 않는 집은 높은 사망률과 질병 발생률과 연관되어 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호흡기, 순환기, 근골격계 질환이 악화될 수 있다. 겨울철에 발생하는 초과 사망의 상당수는 한파와 관련이 있으며, 이를 막아주지 못하는 집에 거주하는 것이 사망의 이유로 지목된다. 질병관리청에서 시행한 <제1차 기후보건영향평가> 결과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평균 약 200명이 저체온증, 동상과 같은 한랭질환으로 인해 사망하고, 약 800명이 입원한 것으로 나타났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즉, 난방비는 사회적 문제이면서 건강문제기도 하다. 최근 이와 관련하여 새로운 분석과 의미 있는 논의를 제시한 연구 논문이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실려 소개한다(☞논문 바로가기: 추운 집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영국 가계 종단 조사자료 분석). 

 

일군의 학자들은 추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사회적 위해(social harm)’에 노출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추운 집’이란 날씨, 건축물의 품질, 그리고 입주한 사람의 지불능력이 합쳐져 발생하는 현상이다. 한파에 노출되는 상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예방가능하다. 그런데도 예방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소득, 단열이 안 되는 집, 그리고 높은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무작위로 발생하지 않는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차별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추운 집에서 사는 현실에 무관심하거나 이를 용인할 때 피해자는 늘어나게 된다. 즉,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을 용인하는 풍조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바로 ‘가해’ 주체라고 볼 수 있다.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람만이 피해자는 아니다. 일례로 단열이 잘 되지 않는 집에 거주하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월세를 지불하고 비효율적인 난방비를 이중으로 지출하다가, 단열에 관한 집의 수리를 요청했는데 집주인의 냉소를 사거나 계약 갱신을 거절당하는 경우도 피해자로 볼 수 있다.

 

연구진은 추운 집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추위를 겪는 것 그 자체나 난방비 지불과 관련된 스트레스, 주거환경에서 얻는 안정감과 통제력 상실, 사회적인 고립 경험과 수면의 어려움 등이 모두 정신건강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또 추운 집으로 인한 영향은 생리적으로 체온 조절 능력이 약한 노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돌봄과 양육을 수행하기 위해 집에 오래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서 더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연구진은 성인 연령층 전반을 포괄할 수 있는 영국 가계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어떤 사람들이 추운 집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는지, 추운 집에 입주하기 전후에 정신건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여성과 1인 가구, 한부모 가정, 만성질환자, 세입자인 사람들이 추운 집에 사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사회인구학적 요인, 주거의 세부적 요인, 재정적 요인을 따로 고려하더라도 추운 집에 입주할 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경험할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 해악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연구진은 사람들이 따뜻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면 이러한 고통과 함께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집을 제공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대응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의료와 복지를 포함한) 유무형의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또 최근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인해 투입되는 자원이 많아졌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추운 집에서 살아서 생기는 건강 위험의 중요한 특징은 사람들이 해결책을 알고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 기저질환, 주거 적합성, 난방의 지불가능성과 접근성, 소득, 연령 등이 모두 복잡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추운 집이 건강에 미치는 순수한 영향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이 적절한 난방이 되는 집에 살 수 있게 하는 조치는 직관적이며 기대효과가 확실하다.

 

연구진은 추위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불평등한 위험 노출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를 향해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정부는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지원하되, 저소득층에게 불필요하게 문턱이 높은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지원 규모의 상한선을 해제하거나 충분히 인상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에너지 산업에 대한 탈규제(deregulation) 방침을 재고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동시에 건축 시장이 더 높은 수준의 에너지 효율 등 건축 품질 표준을 적용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 증가로 얻는 이득이 없는 소유주로서는 관련 설비에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고, 그 결과 세입자들이 에너지 비효율의 비용을 전적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연구진은 이러한 조치들이 시행되지 않는다면 추운 집은 피할 수 있는 사회적 위해로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처럼 문제의 원인과 개입할 수단이 모두 명확한 문제는 흔하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사회적 가해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서지 정보

Clair, A., & Baker, E. (2022). Cold homes and mental health harm: Evidence from the UK Household Longitudinal Study. Social Science & Medicine, 314, 115461.

김효은 등. (2022). 제1차 기후보건영향평가 주요 결과. 주간 건강과 질병. 제15권 제21호, 1463-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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