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문

[고래가 그랬어: 건강한 건강 수다] CCTV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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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231호 ‘건강한 건강 수다’>

 

글: 전수경 일하는 사람,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림: 오요우 삼촌

 

이모는 2022년 11~12월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20대 여성 노동자들을 여럿 만났어. 비정규직은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지 않고 1~2년 계약을 하고 일하거나, 빵집·카페·편의점·햄버거 가게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걸 말해. 이들과 이야기하면서, CCTV나 스마트폰으로 감시나 감독을 당하며 일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해.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서 일하는 20대 노동자는 아침에 문을 여는 일부터, 손님이 오면 주문받고, 계산하고 아이스크림을 퍼주고, 가게의 냉장고와 냉동고를 청소하는 일을 혼자 했어. 알바를 1년 동안 했지만 사장을 볼 수는 없었어. 가게 사장은 CCTV로 녹화된 화면을 보면서 노동자에게 ‘아이스크림 풀 때 너무 느려요’ ‘청소하는 시간을 줄이세요’ 같은 지시를 카톡으로  했대. 점심시간이 따로 없어서 창고에서 밥을 먹다가 손님이 오면 주문을 받아야 했어. 그런데 CCTV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아니까 잠시라도 맘을 놓고 쉴 수가 없는 거야. 너무 힘들 때도 ‘잠깐 기대 서 있어도 될까?’ 스스로 조심하게 되고,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고 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1년을 일한 뒤 다리·어깨·손목에 병이 났어.

 

애견센터에서 일하는 애견훈련사도 만났어. 낮에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 강아지가 힘들 수 있으니까 애견센터에 반려견을 맡기거든. 애견훈련사가 강아지를 돌보며 강아지에게 필요한 훈련도 해. 유치원과 비슷해. 강아지들은 밥도 먹어야 하고, 간식도 먹고, 산책하고, 낮잠도 자야 하니까. 강아지마다 성격도 다르고, 개성이 있어서 서로 싸울 수도 있어. 이모가 만난 애견훈련사는 혼자서 7마리의 강아지를 돌봤어. 강아지들이 다치거나 아프면 안 되기 때문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대. 점심시간에도 강아지들을 지켜보면서 밥을 먹어야 했어. 제일 힘든 건 카톡으로 강아지의 하루를 기록해서 보내는 거야. 강아지를 맡긴 주인들은 궁금하니까 수시로 강아지 소식을 물어 와. 혼자서 7마리 강아지를 돌보면서 강아지 사진·영상을 7명의 주인에게 각각 보내고, 질문에 답을 해줘. 애견센터 홍보를 위해 인스타그램에도 날마다 강아지 영상을 올려야 했지. 애견센터의 사장은 직접 나오지 않아도 카톡과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훈련사가 일을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1년을 애견센터에서 일한 훈련사는 몸도 마음도 아프게 되었어.

 

우리가 가는 편의점·빵집·카페 같은 곳에서도 그 자리에 없는 가게 주인이 아르바이트 언니 오빠들이 일하는 모습을 CCTV로 지켜보는 경우가 많아.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은 정신적으로도 긴장되고 불쾌한 일이야. 휴식시간을 제대로 쓸 수 없으니 신체적으로도 피로가 쌓여. 스마트폰으로 사진·영상을 보내면서 일을 하는 것도 감시당하면서 일을 하는 것과 같아.

 

팔다리를 쭈욱 펴서 긴장한 몸의 근육을 풀어주고 10분이라도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볼 수 있다면,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때만이라도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혼자 쉴 수 있다면, 몸도 마음도 덜 아플 수 있다는 걸 알았어. 동무들이 지켜보는 눈이 없는 곳, 스마트폰 없는 곳에서 하루 5분이라도 긴장을 풀 수 있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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