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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체제에 맞서는 연대와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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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진지하게 말하고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뭐라고…’ 혹은 ‘나 먹고 살기도 힘든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많지 않으니 좀 더 관심 가지고 마음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거의 1년이 됐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군인들 중 약 2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는 1월 31일 현재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서 확인한 것만 해도 18,657명에 달하고, 실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발발하고 우크라이나 국민 3명 중 1명은 살던 곳을 떠났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은 기반 시설이 파괴된 탓에 정전과 단수에 시달린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처럼 주목받지 못하지만, 세계 각지의 분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고통이 있다. 결정적으로 이 고통은 권력과 집단의 적극적 결정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평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단지 도덕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 전쟁 당사국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삶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덧붙인다. 식량과 에너지 위기는 특히 세계 각국(특히 저소득 국가)의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과 서민들의 물질적 토대를 위협하고 있다.

 

 

조금 더 가까운 이야기를 해보자. 아직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최근 상황은 좋지 않다. 남북한이 서로에 대한 적대적 언사의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다. 이번 정부의 행태를 고려했을 때, 이것은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다. 그리고 단순히 남북 관계나 외교·안보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전쟁을 생산하는 체제, 달리 말하면 평화를 위협하는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순히 국가를 확장하려는 제국주의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베티 리어든이 경쟁적인 사회질서라고 정의하는 전쟁 체제를 가리킨다. 이는 인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하고, 권위주의적 원칙을 기반으로 하며, 강제적 힘에 의해 그 지위를 유지한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이 두드러진다. 내가 준비되지 않으면 적에게 공격당하거나 뒤처질 것이란 두려움이 적대감과 대결을 불러온다. 그러한 두려움을 가진 개인과 사회는 서로를 강화하고, 극단적으로는 폭력을 표방한다. 노골적으로 자원을 노리고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각자도생하고 경제적 이윤이 최우선인 사회 기풍에서는 전쟁이 수익 창출을 위한 호재로 여겨질지 모른다.

 

정치는 두려움과 적대감을 만드는 데 결정적이다. 정부는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교·안보를 활용할 동기가 강력하다. 특히 국내 정치에서 실패할 때,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외교·안보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지난 정부는 북한과 관계 개선을 업적으로 쌓고자 했지만, 지금 정부는 외부의 적을 만들고, 그로 인한 대결 구도를 통해서 내부를 통제하는 방식에 좀 더 익숙한 듯하다. 꼭 외교·안보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국내에서도 적을 발명하고, 두려움과 혐오, 배제를 조장하는 모습은 안타깝게도 낯설지 않다.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한 사회보장제도와 사회체제의 공공성을 축소하고 이를 갈등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일찍이 논평에서 강조한 바 있는 ‘평화문화’의 확산이다(지난 논평 바로가기).

 

‘평화마인드’는 한 요소일 뿐, 평화문화는 범위가 넓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몇 가지 핵심요소는 이런 것이다. 협력과 연대, 반핵, 민주주의, 군축, 양성평등, 경쟁의 완화, 예술의 사회적 가치, 윈-윈의 철학, 작은 소득 격차, 다양성과 관용, 정의, 환경 친화, 사회안전망, 사법 정의…(배리 레비와 빅터 사이델 엮음. <전쟁과 보건>.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 펴냄, 454쪽).

평화문화의 확산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만큼 통합적이고 구조적이며 또한 정치적이다. 모두의 책임과 의무,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타인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다. 현실정치가 아무리 시민들 간 선을 긋고 타인을 두려워하며 적대하게 만들려 해도, 더 넓은 ‘상생’과 ‘윈-윈’이라는 선택지를 포기할 수 없다. 노동자, 이주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노인, 청년, 사회적 참사 유가족 등 각기 고통 받는 시민들이 전쟁 체제에 맞서 협력과 연대를 넓힘으로써 평화문화를 학습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다. 또한 전쟁 체제와 이로 인한 고통이 일국에 국한되지 않는 만큼, 우리들의 연대와 협력 역시 국경의 제약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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