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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논평

가난 때문에 죽지 않게

이 글을 쓰는 시각까지 의사파업은 취소되지 않았다. 아는지 모르는지 ‘단호한’ 정부 당국은 의사들의 약을 올리는 데에만 몰두해 있다. 무엇을 ‘성공’으로 보든 파업이 성공하긴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도 ‘단호한’ 결과를 보기는 어려울 같다.   의사파업은 이번 주도 주제로 삼을 만한 문제지만, 이쯤 해 두자.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만큼, 아니 더 중요한 문제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서다. 가난한 이들의 연달은 죽음, 다른 말로는 ‘사회적 타살’을 기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수많은 메이저 언론에 비슷한 소리를 보탤 생각은 아니다. 다만 가난한 이들이 죽음으로 호소한 절박함을 그들이 독점하게 할 수 없다. 겹치고 되풀이하는 것이라 해도, 근본에서 다시 되새겨야 한다.   우선 급한 것이 많다.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더 이상 불행한 일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 말은 어떻게 가져다 붙여도 상관하지 않을 참이다. 특별조사든 긴급구호든 또는 서울형 부산형 제도든, 어떤 미봉책이라도(‘봉’할 수만 있다면) 시행이 급하다.   지방선거 출마용이라도 괜찮다. 책임을 소홀하게 했다는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꼭꼭 숨어 있던 취약계층을 ‘발굴’한다는 황당한 궤변도 당장은 시비를 걸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면 참을 만하다.   시늉만 하다 슬그머니 그칠까 걱정이다. 그러니, 모두가 입 모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제도를 고쳐야 한다. 부양의무자, 근로능력, 최저생계비 등이 줄줄이 걸려 있는, 참 허술한 기초생활보장제도부터 고치라. 이 정도면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참에 장기적인

서리풀 논평

위험한 편 가르기 – 정상과 비정상

  박근혜 정부가 본격적으로 ‘정상화’를 앞장세울 기세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3대 추진전략 가운데 하나라니 몰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김빠지게 할 의도는 아니지만, 우선 이 말은 해야 하겠다. 어떻게 시작했든 이제 정상화 담론은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이가 아닌 대통령이 이처럼 강조했으니, 한국적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까 짐작하고도 남는다. 모르긴 해도, ‘정상화’란 이름이 붙은 온갖 추진계획과 위원회, 운동을 보게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건강보험공단은 벌써 ‘건강보험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는 길은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 저기 귀걸이 코걸이 식이 될 공산이 크다. 새 정부가 하는 일로 치면 시작은 평범했다. 모두 알다시피, 80개의 정상화 과제를 뽑아서 발표한 것이 지난 12월이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명분도 괜찮다. “사회 곳곳에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찾아보고 이를 정상화하는 작업을 본격 추진”한다는 것이다. 1차 정상화 과제로 공공부문과 민생에 초점을 맞춘 10대 분야, 핵심과제 48개와 단기과제 32개를 선정했다고 한다. 까짓것 숫자야 좀 많으면 어떤가, 내용이 괜찮으면 봐줄 만하다. 좀 수상한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누구라도 시비 삼기 어렵다. 국민의 눈높이와 체감, 발본색원과 같은 목표도 굳이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벌써 과거사가 되었다. 벌써부터 진화와 변신을 거듭하고 있으니 처음에 정상화가 무엇을 뜻했는지 묻는 것은 이미 부질없다. 게다가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한 기자회견에서도 힘주어 강조했으니 이제 새롭게 ‘생명력’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 실무

서리풀 논평

부정부패를 막으려면

*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강제 절전은 뜨거운 여름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냉방은커녕 조명까지 끄고 일하는 공기관 직원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한편의 소극이었다. 더위도 더위지만, 다른 대책 없이 몇 년 째 절전만 내세우는 정부라니.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를 둘러싼 비리가 짜증을 보태는 데에 크게 한 몫을 했다. 말마따나 무슨 양파 껍질 까기도 아니고 파면 팔수록 그동안 숨겨진 실상이 참 볼만하다. 이제 지난 정부의 권력 핵심까지 얽혀 있다니, 해도 너무 한다 싶다. 어디 원전만 그런가, 4대강 사업도 꼭 같다. 그 사이에 모든 국민이 경험으로 갈고 닦은(?) 상식의 범위 안에 있다. 대형 국책 사업에 뒤따르는 부정과 비리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또 다른 예를 찾는 것도 쉽다. 지난 정부가 자원 외교에 2조를 낭비했다는 보도 같은 것. 용감하게 미리 예상하자면, 머잖아 부정과 협잡을 수사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래저래 보통 사람들은 마음 공부나 더 해야 하지 않을까. 현 정부가 예정하고 있다는 후반기의 ‘고강도 사정’을 응원할 생각은 없다. 원전과 4대강 사업, 자원외교가 다 마찬가지지만, 큰 비리와 부정은 꼭 그 다음 정부에서야 드러난다. 반대는 더구나 아니지만, 흔쾌하게 칭찬하기도 어렵다. 검찰과 경찰, 국세청과 감사원이 모두 한 통속이다. 약속이나 한 듯 뒤늦게 ‘비리 척결’에 나선다. 권력기관이 생명을 부지하는 타고난 기술이라는 비아냥거림을 어찌 가볍게 들을 수 있을까. 뉴스거리가 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덩치 큰 부패는 이처럼 현실 정치다. 관심이 달라서 그렇지 거창한

서리풀 논평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어야

2010년 현재 빈곤층은 340만 명에 이른다. 최근 국무총리실이 발표한 2010년 빈곤실태 조사결과가 그렇다. 이 숫자마저 실제보다 적게 잡힌 것이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에 속하는 이른바 차상위 계층을 포함하면 빈곤층 규모는 570만 명으로 늘어난다. 열 사람에 하나 꼴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그래서 가난은 아직도 아주 가까운 문제다.    <소득 5분위 배율과 상대빈곤율 추이 (자료원: KOSIS) >   현실은 상대적 빈곤이니 절대적 빈곤이니 하는 개념 구분을 무색하게 한다. 건강과 의료 문제만 해도 그렇다. 만성질환자가 있는 가구비율은 전체 가구가 22.4%인 반면, 기초수급 가구는 63.8% 차상위 가구는 58.3%로 비빈곤 가구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의료비가 부담된다는 가구 비율도 마찬가지다. 전체 가구는 33.1%였으나, 기초수급 가구는 45.5%, 차상위 가구는 52.7%가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비수급 빈곤층은 11.8%가 치료를 중도에 포기한 경험이 있었고, 포기한 이유 중 90.9%가 치료비 부담 때문이었다(한국일보 6월 5일자).    사실 이런 조사결과는 놀랍거나 예상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했다는 자화자찬이 이어졌지만, 가난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한 단면임을 누구나 안다. 어느 정도 건강보장제도가 갖추어졌다지만, 중산층에게도 의료비는 부담스럽다.      익숙한 가난에 대응하는 방식 역시 낯익다. 2012년 제2차 사회보장심의위원회에서 확인된 핵심 전략은 변함없이 대상을 분리하고 개인화한다는 것이다. 다만, 빈곤층을 다시 나눠 차상위와 기초수급자를 대비시키는 것이 좀 달라졌다. 더 ‘세분화’했다고나 할까.    분리와 개인화는 우리 사회 기득권층이 가난을 이해하는 방식과 맞물려 있다. 아니나 다를까, 빈곤층 소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