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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논평

과학기술에 대한 태도, 그 끈질긴 성장주의

  문재인 정부의 인사가 계속 불안하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과학기술 분야 인사는 ‘참사’라고 부를 만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기업인을 임명하고 황우석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인사를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해 사고를 낸 것이 얼마 전이다.   이번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지명자가 창조과학이니 역사관이니 하면서 말썽이다. 인사청문회까지 갈 수 있을지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인사는 이미 개인 차원을 떠났다.   인사권자가 과학기술, 과학기술 정책, 과학기술 정책의 정책결정과 책임자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 민낯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두 번 그런 것이면 우연이나 실수라고 하지만, 계속해서 그것도 한 분야에서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면 뭔가 원인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과학기술 분야 인사에 ‘헛발질’을 계속하는 이유는 <경향신문>이 상세하게 분석했다(기사 바로가기). 기자는 참여 정부 시절 과학기술 정책을 잘 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 과학기술을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의 도구로 보는 박정희 시대 과학기술관의 답습,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세 가지 이유로 꼽았다.       인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분석에 대해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인사인들 우연이나 실수라고 주장할 만한 일이 왜 없겠는가? 누가 추천을 했다, 인사 검증에 어떤 부분이 빠졌다, 우리도 잘 몰랐다, 사람들이 오해한 것이다,…잘못된 결정은 많은 우연, 오판, 실수가 겹쳐서 나타난다.   그렇다고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가령 우연이거나 개인의 실수라 하더라도 체계(시스템) 수준에서 그것은 ‘무작위’가 아니다. 어떤 경향성은 맥락과 구조가 영향을 미쳐서 나타나는, 원인이 있는 결과이다.

서리풀 논평

누리과정은 시작일 뿐이다

  기어코 사달이 났다. 중앙 정부가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교육 공통프로그램) 예산을 시도 교육청에 미루면서 보육 대란이 현실이 되었다. 어떤 시도는 아예 예산이 없고, 그나마 나은 데라고 해야 일부를 마련했을 뿐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가?   대통령과 예산 당국은 당장 태도를 바꿔야 한다. 누가 봐도 중앙 정부의 억지에서 출발한 사태다. 국가사업(누리과정)에서 사업만 넘기고 예산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란 이야기인가. 교육 교부금을 이전했느니, 지방재정법 규정이 어떻다느니, 이런 말을 옮기고 논박하는 것도 부끄럽다. 2012년 이후 같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만 봐도 해답은 명백하다. 여당은 교육청과 교육감이 정치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것은 정부, 여당이 받아야 할 몫이다. 제대로 논리를 갖추지 않은 채 노골적으로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보면, 기꺼이 비싼 비용을 치르며 감수하겠다는 태도 아닌가. 누리과정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첫째, 복지를 완전히(!) 재정 문제로 바꿔 놓았다. 누리과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면서 결과적으로 (모든) 복지는 ‘돈 먹는 하마’,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공적으로 연대하는 사회적 협동이자 실천으로서의 보육과 교육은 없다. 돈이 드는 개인 서비스일 뿐이다. 그 돈을 누가 내는지만 중요하니, 복지는 돈이요 곧 부담이다! 정부와 예산 당국은 누리과정 논란이 복지재정의 산 교육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복지를, 그리고 복지 확대를 밀어붙이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똑똑하게 보라.” 설마 이럴까 싶지만, 끝장까지 몰고 가서 생생한 교훈을 원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둘째, 복지 영역 사이의 경쟁과 갈등을 노골적으로 유도한다. 정부와

서리풀 논평

국사 교과서만 문제가 아니다

  “집권 초부터 신·구파의 파쟁을 일으켜 국민의 성원과 기대를 어겼다. 그리고, 국민 가운데 분별 없는 자유를 주장하여 가지각색의 자기 주장을 요구하는…사태가 벌어졌고, 심지어 데모대가 국회 의사당을 점령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민주당 정부는 이와 같이 사회 질서를 유지할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1977년 발행 <고교국사>. 227쪽)   앞뒤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어느 맥락에서 이런 글이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제목은 ‘5월 혁명’, 가장 큰 제목은 ‘민족 중흥의 새 전기’라는 대목에 들어 있다. 누가 봐도 군사 쿠데타와 10월 유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내용이다. 지금 4, 50대 이상의 세대는 이렇게 배웠고, 기억한다. 정권이 달라진 다음에, 그리고 나이가 들고 새로 배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하겠지만, 지금이라도 그때 배움의 영향이 없다고 하지 못한다. 알게 모르게 세상을 보는 눈에 영향을 미쳤고, 그것은 오래간다. 이런 교과서를 만든 사람의 직계 후예와 후배, 그리고 교과서 내용에 포함될 자들이 힘을 합쳐 ‘올바른’ 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니. 비극이면서 동시에 한편의 소극(笑劇)이다. 여러 반대가 있으니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둘러싼 시비는 이 정도로 그친다.   우리는 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에서 이중의 과제를 발견한다. 미리 말하지만, 교과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전체의 문제다. 한편으로는 역사와 역사 해석의 문제가 직접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통교육’의 가치와 의미, 목표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교육체계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교육을 통해 어떤 사람을 기르려 하는가?” 질문은 국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특히 사회나 정치, 경제와 관련된 교과목이 지향하는